경애하는 경순 씨
행복한 기억은 다양한 빛을 품고 있다. 유년 시절 살았던 집 중에 가장 햇살이 오랫동안 머물던 집이 있었다. 작은 정원에는 큰 감나무가 있었고 상추와 부추, 고추를 심은 작은 밭도 있었다. 부유한 친구네 집에서나 볼 수 있던 지하 창고가 있었고 낮은 계단을 오르면 투명한 꽃무늬 유리 현관이 나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수가 놓인 소파가 보이고 왼쪽으로 베란다와 연결된 큰 유리문이, 맞은편에는 목재 책장이 있었다. 빛이 잘 들어 낮이면 거실 바닥이 눈부실 만큼 환했고 밤이 되면 유리창 틈으로 스며든 달빛이 바닥을 은은하게 비추는, 누가 봐도 포근한 거실이었다. 안쪽에는 처음 사용하는 실내 화장실과 욕조가 있었고, 우리 방과 안방, 주방까지 방이 세 개나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던 공간은 소파 뒤에 놓인 커다란 책장이었다. 그녀가 만든 오징어 폐백 작품들과 빼곡하게 꽂혀 있었던 고등학교 검정고시 문제집, 그리고 한자로 쓰인 사전 같은 책들. 마당 있는 번듯한 집으로 이사 온 그녀는 가난으로 포기해야 했던 공부도 다시 시작했고, 폐백 장식이라는 우아한 취미 생활도 이어갔다. 모든 것이 고르게 반짝이던 안정된 시간이었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녀는 나긋한 말투와 우리의 짓궂은 행동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다정한 엄마였다. 빨간 장미가 그려진 치마를 즐겨 입었고 분홍 스웨터가 무척 잘 어울리는, 파릇하고 여유 넘쳤던 그녀의 빛나는 시절이었다.
우리가 주로 시간을 보냈던 안방에는 온기가 넘쳐흘렀다. 큰마음먹고 마련한 열자 장롱과 백만 원이 넘는 삼익 피아노. 아마도 그녀의 인생에서 제일 큰 사치가 아니었을까. 화목을 상징하는 부부의 여행 사진도 걸려 있었다. 남편과 처음으로 태안으로 부부 동반 여행을 떠났을 때 찍은 사진. 갯벌이 펼쳐진 곳에서 조개를 캐다 말고 호미를 들고 부부가 마주 보며 웃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수많은 사진에 낀 유일한 부부 사진이었다.
그녀는 그 사진을 말할 때마다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하필 그 사진이 아빠가 건강했던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행 다녀오고 얼마 후,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그녀의 삶은 사다리에서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치달았다. 제일 먼저 오징어 폐백 같은 취미 생활을 끊고 고등학교 입학의 꿈도 내팽개쳤다.
- 그때 그 여행을 안 갔더라면 네 아빠가 안 아팠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치료를 더 일찍 받았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거야.
그녀는 시름 하나 없이 밝게 웃는 자신의 사진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말을 남겼다. 누구에게나 곱씹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녀에게는 남편이 쓰러지기 전 함께 갔던 부부 동반 여행이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남편의 병을 미리 눈치채고 치료받았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서른셋, 그녀가 당황하고 멈춰 있는 사이 세상은 그녀를 더 극한으로 몰고 갔다. 한동안 아내도 알아보지 못하는 남자를 간호하고 틈틈이 우리를 챙겨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즈음 아빠의 소식을 들은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 아저씨가 아프다고, 힘들겠네...
걱정하는 투로 시작해 위로의 전화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집주인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 애기 엄마, 아무래도 이 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소문 돌아 좋을 것도 없고...
전세금은 빼 줄 테니까, 나가 줄 수 있지~
엄동설한에 어디로 나가라는 말이었는지, 제안도 아니고 협박에 가까운 부탁 전화였다. 그렇게 집주인은 환하고 따뜻했던 집에서 우리 가족이 얼룩이라도 되는 양 쫓아냈다. 그대로 있다간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었으니 그녀는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생계 수단을 찾아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겨울은 한없이 길어졌다. 따스한 집에서 쫓겨난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빛이 들어오는 거실을 보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나의 집'을 떠올리라고 하면 그 집이었다. 숨바꼭질할 때 숨을 곳이 가장 많은 곳이었으니까. 넓은 옥상에서 뛰다가 지하 창고로 몰래 들어가 숨을 수도 있었고, 시골에서 보내준 채소나 자전거 등을 보관하던 작은 공간도 있었다. 거실은 운동장만큼 넓었고, 무엇보다 그녀는 교양 있고 친절했다. 내가 살았던 집 중 가장 이상적인 집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즐거운 나의 집’은 어디였을까? 설마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소소한 사치를 즐겼던 그곳이었을까. 아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매몰차게 쫓겨났던 그 집을 기억하고 싶을 리 없다. 행복과 불행은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실과 바늘처럼 붙어 있다. 행복할수록 불행의 크기도 커진다. 덕분에 그 환했던 기억은 낯선 불행이 함부로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아 주고 견디게 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집을 떠올리는 동안 한 여인이 눈에 밟힌다. 즐거운 집에 살았던 젊은 날의 그녀도 남들처럼 살고 싶었던 한 명의 젊은 여인이었으리라.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