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자
"밥 먹자!"
나물 반찬 피해서
후다닥, 화장실로.
뜨끈뜨끈 비데 위에 앉으면
엉덩이부터 기분이 좋아져.
"숙제 다 했니?"
영어숙제를 피해서
살금살금, 화장실로.
잔소리 뚝 끊긴 고요한 그곳에서
책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해.
엄마 친구들이 놀러 온 날,
옆집 민준이 칭찬 소리에
몸이 베베 꼬이기 시작한다.
얼른 화장실로.
"야! 너 좀 그만 와!"
깜짝이야, 변기가 입을 열었어.
"나도 좀 쉬자, 내 허리 부러지겠다!"
변기까지 화를 낸다.
세상에, 이제 어디로 도망가지?
이불속으로 숨을까?
----------------------------------
[엄마의 일기]
위기의 순간마다 화장실로 숨어드는 너.
한번 들어갔다 하면 도통 깜깜무소식이다.
집에서 가장 마음 편한 요새가 변기 위라니, 웃음이 나다가도 걱정이 앞선다.
안 그래도 변비 때문에 고생하는 녀석이
화장실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니 엄마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아들아, 그만 집중하고 이제 좀 나와주면 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