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경순 씨
어김없이 돌아오는 매달 말일. 어릴 때는 몰랐다. 어른의 마음이 말일마다 맑았다가도 흐려진다는 걸. 프리랜서인 나는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들어오는 직장인의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매달 빠져나가는 학원비를 정산하는 날이 곧 말일이라는 걸 알았다. 나 역시 말일은 두려워졌다. 다행히 아이가 하나뿐이라 예체능 학원도 보낼 수 있었지만 한 명이 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이 곁에 있고 싶어 상근 하는 일은 관두고, 재택 가능한 외주 일만 해왔지만
그런데도 아이에게 늘 미안한 감정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아픈 남편을 돌보며 연년생 딸 셋을 책임져야 했던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빠가 쓰러지고 생계를 짊어지게 된 그녀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선택한 첫 번째 수단이 방 한 칸 딸린 조그만 슈퍼였단다. 훗날 기억하기론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던 그녀와 달리, 우리는 철없이 행복했던 것 같다. 슈퍼 집 딸로 유행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누구보다 먼저 맛볼 수 있었으니 좋을 수밖에.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우리 슈퍼에는 사람들이 찾는 인기 과자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과자 위로 수북하게 쌓인 먼지를 보고 나서야 현실을 알았다. 그러니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다고 잔소리 듣듯 들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초·중학생 자녀를 먹이기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
손님이 많았던 맞은편 슈퍼를 따라 가맥집으로 운영해 보기도 하고 잠재 고객을 위해 열정적으로 과자 시식에도 도전했다. 그렇게 혼자 아등바등하던 시절, 나는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느라 그녀의 표정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어떤 결의로 그 시간을 건너고 있었는지,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장사했을 때를 기억하느냐고.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국수’가 기억난다고 말했다.
-엄마 우리 국수 먹으면 안 돼요?
그 시절 우린 밥보다 국수를 좋아했다. 몇 주 내내 국수만 먹던 때가 있었다. 비빔국수, 잔치국수, 콩나물국수, 김치국수… 국수의 종류를 돌려가며 먹는 날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문 앞에서 안채 마당으로 이어지는 길목, 가스레인지 위에는 늘 멸치 육수 냄새가 피어올랐다. 당시에는 그저 소면이 남아서 국수를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국수는 ‘쌀을 살 돈이 없다는 증거’였다.
-너희가 웃으면서 국수 외칠 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속상했지.
해맑은 얼굴로 국수를 외치던 아이들 앞에서, 쌀이 없어 국수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시절, 가족에게 따뜻한 쌀밥 한 끼라도 먹이고 싶어 용기를 내 부자 친구에게 손을 벌렸다고 했다. 30만 원을 빌리기 위해, 그토록 단단했던 자존심을 내려놓았던 순간.
-바로 갚겠다고 했는데도 친구가 빌려주면 못 받을 것 같아서 안 빌려주더라고...
그 말이 어찌나 분하고 속상하든지. 그 뒤로 이를 더 악물고 살았어.
그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얼굴을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슈퍼를 하던 시절을 물었을 때, 국수와 가난, 그리고 30만 원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늘 당당하고 똑 부러졌던 소녀의 자존심이 무너지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거절한 친구의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조금 더 근사한 핑계로 돌려서 말해줬다면 이렇게까지 상처받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 그녀는 땅거미가 내려앉은 세상에서 홀로 깊은 수렁에 빠져있었다. 그 당시 한 방에서 먹고 생활했는데, 우린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느라 서로에 대해 모르고 살았다.
그때의 나는 가족 일에는 도통 관심 없었다. 방학이면 문밖을 나오지 않고 모든 끼니를 거부한 채 방 안에서 멍하니 있었다. 방 안으로 가출한 나를 보고 그녀도 속 터졌을 것이다. 그래도 아침마다 반찬통에 먹을 것들을 따로 담아 챙겨주었다. 하지만 나는 밥을 먹는 것도, TV를 보는 것도, 자는 것도,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이 근거 없는 게으른 반항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결국 난 집안의 골칫덩어리이자 그녀의 가장 큰 해결 과제 됐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다정했던 순간이 없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나에게 ‘국수’는 그녀의 애정이었다. 쌀밥을 찾으면 어떻게 하나 마음 졸이면서도 우리가 국수를 정말 좋아해 줘서 고마웠다는 그녀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 마음은 가족을 굶기지 않겠다는 가장의 책임감이었다.
그녀는 세 딸을 키워내고 살림을 전부 도맡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유난한 첫째 딸의 마음까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었을까. 자식을 낳아보니 알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식을 보면서 왜 그녀는 늘 한숨만 쉬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너희를 보면 힘이 난다.”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지만, 그녀에겐 힘이 날 겨를도, 기대 쉴 공간도 없었다. 그 시절 그녀는 세상과 싸우느라 한없이 외로웠을 것 같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로, 행복이 뭔지, 슬픔이 뭔 지조차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살았을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녀의 옆에 앉아 하소연을 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