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그녀는 항상 급하다. 새벽마다 장바구니를 끌고 장을 보러 나선다. 뜨거운 햇살을 피하려고 하얀 팔토시와 챙 넓은 모자, 양산까지 빈틈없이 챙긴다. 오른손에는 양산, 왼손에는 장바구니를. 그렇게 억척스레 삶을 살아내겠다는 책임감과 피부를 지키고 싶은 의지까지 양손에 움켜쥐고 집 밖을 나선다. 그녀의 외출 준비 소리가 알람처럼 들려오면, 나는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설 때가 있다. 또, 왜소한 몸으로 발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야위어 보인다고 말한다.
스물다섯 살 무렵, 교환원으로 일하던 그녀의 목소리에 반해 쫓아다니 남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랑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아기가 생기는 바람에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원래 그녀의 꿈은 다정한 남자의 청혼을 받고 결혼한 뒤, 친정과 시댁 식구들까지 살뜰히 챙기는 현모양처 였다. 하지만 인생 속도위반 딱지 뗀 뒤부터 삶은 상상해 본 적없던 차가운 현실이 되었다. 첫째를 낳은 지 얼마 후, 시댁에서 유일한 그녀의 편이었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시어머니는 남편이 떠난 이유가 마치 그녀 때문인 듯, 그녀에게 서슬 퍼런 말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시집살이가 힘든 게 당연하지 싶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시절, 그렇게 딸 셋을 낳고 아들 하나 낳지 못한 대역 죄인으로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생활비보다 더 큰 돈을 시어머니에게 드지만, 다섯 식구 아웅다웅 간신히 입에 풀칠은 하니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 마저도 욕심이다. 그녀가 서른셋이 되던 해 겨울,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당장 생계가 끊긴 상황에서 아이들은 어미 새를 바라보듯, 그녀만 보면 징징거렸고, 쓰러진 남편은 병상에 누워, 누군가의 도움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곳조차 없었다. 가끔 형편이 나은 친구들은 딸들을 입양 보내보라며 조심스레 권하기도 했다. 딸들과 떨어질 수 없는 깊은 모정도 있었겠지만, 현실적으로 입양 제안을 고민할 겨를조차 없었다. 낮에는 병원에서 남편을 돌보고 오후에는 잠시 집에와 세딸을 챙기고 다시 새벽에 병원으로 향했다. 간병인 없었던 시절이라 돌봐줄 손이 부족해 오롯이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하는 시간이었다. 끼니도 거르고 잠도 못자는 건 일상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그녀를 재촉했다. 남편이 퇴원한 뒤에는 방 한 칸 딸린 작은 가게를 마련해 생계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 뒤,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고민 끝에 만화 가게로 업종을 바꿨지만,
이번엔 2층에 PC방이 생겼다. 세상은 절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사랑해”라는 말 대신, “내 소원은 너희를 뻥튀기 기계에 넣고 ‘뻥’ 튀기는 거야”라는 공포에 가까운 농담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이번에는 오히려 그녀가 시간을 재촉해야 했다.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진 세 딸이 차례로 대학에 들어갈 시기가 온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등록금과의 전쟁이 시작되었. 이때부터 가게를 접고 환자들을 돌보는 간병인 일을 시작했다. 낮과 밤이 뒤바고 잠까지 포기하며 일했다. 병원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뒤, 가끔 집에 들러 집안을 챙기고 남은 시간은 모두 병원에서 보냈다. 그렇게 쉴 틈 없이 일해서 세 딸의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20년 후. 잠을 줄여 가며 일해 온 탓인지, 그녀의 몸에 쌓인 고단함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너무 말라서 힘들어 보인다고 말한다. 이상했다. 내 눈에 그녀는 항상 강인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딸이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스무 밤을 병원에서 꼬박 지새웠음에도, 엉덩이 한 번 바닥에 붙이지 않고 새벽 시장에 나선다. 그런 모습을 보면 다시 한번 그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깨닫는다. 동시에 그 강인함은 내게 버거움이 됐다. 이렇게 애쓰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가난을 걱정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생각을 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해 등록금을 내야 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지만, 머리 좋은 친구들처럼 고액 과외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단 복잡한 마음 접어두고 아직도 장바구니를 끌고 새벽시장을 나서는 그녀를 따라나선다. 부지런히 발품 팔아 신선한 재료를 골라 오고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면 기분이 좋다고 한다. 그녀의 시그니처 메뉴는 콩나물무침과 꽃게탕이다. 한때 해물탕 식당에서 배운 비법으로 우려낸 그녀만의 특별 요리다. 무엇보다 그녀는 내가 꽃게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친 그녀는 곧바로 점심 준비를 시작한다. 식구들이 나가서 사 먹자고 만류해 봐도, 집이 편하다며 부엌을 떠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나면 과일을 내오고,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그녀를 재촉하기라도 하는 듯 좀처럼 앉는 법이 없다. 난 그런 그녀가 불편하다.
어린 시절 우리가 그녀에게 짐이었다면, 이제 그녀의 고단함이 우리의 짐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그렇게 무리하며 움직이는 모습이 싫었고, ‘그녀는 원래 강한 사람’이라고 믿으 불편한 마음을 합리화했다. 장바구니를 끄는 왜소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정말 그녀는 강한 사람일까? 어떤 고난도 헤쳐 나갈 것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왔지만, 꽃게탕을 먹는 큰딸의 반응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그녀에게서 빈틈이 보일 때마다, 묻어두었던 시간이 새어 나왔다.
그 틈 사이로 보이지 않았던 속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