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등등하던 추위가 한풀 꺾이고, 이른 봄이 시작될 것만 같은 맑은 날이었다. 날씨만큼 기분이 들뜨니 수목원 나들이를 결심했다. 사람들은 역시 기가 막히게 날씨를 눈치채고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주인을 따라 나온 강아지들도 이리저리 뛰노는 모양새가 여간 신난 게 아니었다.
그 활기찬 풍경 사이로 유유히 흙냄새를 맡으며, 마치 그들만의 세상인 듯 걸어가는 작고 하얀 강아지와 할아버지가 보였다. 반려견을 품에 안고 가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그 하얀 털북숭이는 구부정한 할아버지의 앞길을 안내하듯 앞서 걸었다. 나란히 걷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참 다정한 걸음이었다.
우리 아빠에게도 그런 단짝이 있었다. 친구네 집에서 입양한, 갓 태어난 몰티즈였다. 귀여운 생명체의 등장은 무거웠던 집안 공기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특히 외로웠던 아빠의 일상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고들었다. 전기세조차 아까워 형광등도 잘 켜지 않던 집에서, 하얀 강아지는 그 자체로 빛이었다. 녀석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어색했던 침묵 사이사이에는 올망졸망한 대화들이 끼어들었다.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것은 기본이었고, 소변은 꼭 화장실에서 해결할 정도로 영특했다. 무엇보다 출가한 딸들은 멀리 있고, 엄마는 간병 일로 며칠씩 집을 비웠기에 홀로 집을 지키던 아빠에게 이보다 좋은 친구는 없었다. 밥도, 잠도, 심심한 뒷산 산책도 늘 함께였다. 심지어 오토바이 바구니에 올라타 나들이를 즐기는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니 누군가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면 녀석은 호위무사처럼 뾰족한 이를 드러냈다. 전무후무한 찰떡궁합 베프였다.
문제는 이 귀여운 생명체의 이름이었다. 이래저래 하나로 뭉치지 못했던 우리 가족은 반려견 이름조차 통일해주지 못했다. 아빠는 ‘땡칠이’, 엄마는 ‘몽실이’, 막내는 자기 이름을 따서 ‘은땡이’라고 불렀다. 나는 아빠를 따라 ‘땡칠이’라 불렀다. 십 년 넘게 함께 살았으면서 이름 하나 통일해주지 못한 게 지금도 못내 마음에 남는다. 그래도 아빠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컸으니, 녀석은 ‘땡칠이’라는 이름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을 것이다. 아빠는 자신이 줄 수 있는 온 마음을 다해 땡칠이에게 애정을 쏟았다. 다만 마당에서 개를 키우던 옛 방식 그대로라 위생이나 안전사고에는 무관심했다. 결국 목욕과 미용, 병원 치료는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만을 누르며 적당한 무관심과 책임감 섞인 돌봄으로 녀석을 대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와 산책하러 나갔던 땡칠이가 집 앞에서 차 사고를 당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해하던 그 일이, 결국 벌어졌다. 서울에서 내려가는 내내 땡칠이의 죽음이 아빠 탓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위험한 곳을 데리고 다니고, 사람이 먹는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주던 고집이 결국 이 사태를 부른 것만 같았다.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이 아빠의 착각이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품었다.
집에 도착하니 땡칠이는 폭신한 제 침대 위에 평화롭게 누워 있었다. 숨이 이미 멎어있었다. 동생들과 나는 그저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였을 아빠를 보았다. 아빠는 땡칠이도, 우리도 보지 못한 채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아빠의 눈물이, 제대로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새는 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무거운 침묵을 깬 건 언제나처럼 ‘엄마’였다. 그녀답게 냉정하리만큼 침착하게 녀석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돌봐야 할 가족들에 반려견까지, 엄마의 삶도 참 고단했을 것이다.
집에서 키우던 동물이 문 앞에서 죽으면 집안의 액운을 가져간다는 속설이 있다. 공교롭게도 땡칠이가 떠난 해, 유산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내게 귀한 아이가 찾아왔고 동생은 어렵게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땡칠이는 그렇게 제 몫의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떠났다.
사랑하는 땡칠이를 보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우리 가족은 왜 이름 하나 통일하지 못했을까. 언젠가 다시 만나면 어떤 이름을 불러줘야 녀석이 뒤돌아볼까. 그저 이름일 뿐이지만, 땡칠이가 세상에 들렀다 간 흔적이 흩어진 기분이다. 땡칠이는 우리 가족의 깨진 틈을 메워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