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드디어 내가 해방되는 날이야.
그녀가 그렇게 크게 웃는 걸 본 적이 있었던가. 마치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 환하게 터진 웃음이었다. 그 모습이 기쁘면서도 어쩐지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만들었다.
겨울의 초입이었지만 하늘은 맑았다. 월드컵 경기가 열렸던 역사적인 경기장은 주말마다 커플들이 ‘역사’를 쌓는 공간이자, 하루에도 열 팀 이상이 식을 올리는 시장통이 되었다.
미용실과 스튜디오, 드레스 숍이 다 한 곳이라 신랑 신부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하객들은 소란 속에서 지인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그 안에서 나 역시, 힘들게 찾아온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바쁜 신부 중 한 명이었다.
남편과 나는 같은 동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먼저 서울로 올라와 일을 시작했고, 몇 년 뒤 남편도 직장을 얻어 올라왔다. 스물아홉과 서른, 돌이켜보면 참 어린 나이였다. 양가 부모님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기에 결혼은 서둘러 진행되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의 월급은 고스란히 카드값으로 사라졌고, 모아둔 돈은 형편없었다. 카드 돌려 막기로 예식장 예약금을 치렀고, 신혼여행도 빚을 지며 준비했다. 설렘보다 불안이 더 큰 결혼 준비였다. 결혼을 준비하며 처음 맞닥뜨린 단어들, ‘스드메’, ‘신혼집’, ‘전세’는 우리에게 별과 달처럼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반짝이는 것들이었다. 결국 월세 오피스텔을 신혼집으로 정하고는, 그녀에게 큰 거짓말을 덧붙였다.
시댁에서 전세 자금을 대줬어.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분명한 건, 흔한 ‘엄마와 딸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고 기대기보다는, 각자의 상처를 숨기고 감추는 데 익숙한 사이였다. 그 거짓말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였는지, 아니면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거짓말은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능력 있는 시댁의 도움을 고마워하며 만족했지만, 그 기쁨이 나에겐 가시처럼 박혔다. 하루빨리 거짓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렇게 마음이 곪아갈 즈음, 엄마가 내뱉은 말은 뜻밖이었다.
오늘이 드디어 내가 해방되는 날이야.
해방이라니. 쇼생크 탈출 같은 극적인 장면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였다. 얼마 전 둘째 딸을 눈물로 보냈던 그녀는, 첫째 딸인 나를 보낼 때는 한여름 수박을 먹는 것처럼 시원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해방을 얻었고 나는 훼방을 당했다.
내 마음이 그렇게 가시 돋쳐있을 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빠와 마주쳤다. 술주정인지, 평소보다 긴 하소연을 늘어놓는 아빠를 붙잡고 씨름하는 사이, 서울로 돌아가는 차를 찾지 못했다는 친구들의 다급한 전화가 쏟아졌다.
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아빠는 왜 안 챙겨?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와 동생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그녀는 서울에 혼자 있는 내가 걱정돼서 ‘해방’이라 표현했을지 모르지만, 거짓말에 갇힌 내게는 그 어떤 말도 기분 좋게 들리지 않았다. 분명한 건, 그 거짓말이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해방되던 날, 나는 도리어 그 길 한가운데 갇혔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형편도 나아졌고, 거짓말의 공소시효도 끝났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답답하고 아리다.
그리고 언젠간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줄 수 있을 때를 기다린다. 그때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