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를 읽고
《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를 5일에 걸쳐 읽었다. 이 책은 형식부터 독특하다. 세로로 길쭉한 판형, 목차 없이 곧바로 시작되는 본문, 따옴표 대신 꺾쇠를 사용한 문장, 그리고 각 글 앞에 등장하는 타로 카드와 그 의미 설명. 처음엔 어색했지만 곧 적응했고, 타로 카드가 주는 메시지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예전에 지인에게 타로를 봤을 때 좋은 카드만 나와 기뻤던 기억이 떠올랐다.
첫 글은 ‘열네 살, 한밤의 소통’. 캠핑 중 죽을 뻔한 경험이 담겼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마주한 작가는 그 순간 이후 매순간을 값지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어지는 ‘다섯 살 이야기꾼’에서는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어린 시절이 나온다.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씨앗은 아마 그때 심어졌을 것이다.
학창 시절 그는 이야기를 꾸며 친구들에게 들려주길 좋아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 열패감 속에서 한 권의 책에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책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절망에서 건져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이 평생 글을 쓰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 또한 어려운 시기에 한 편의 글로 마음을 다잡은 경험이 있다. 방과후 코디 계약직을 그만두려던 날, 블로그 글 한 편이 나를 붙잡았다. ‘다른 사람도 해내는데, 나라고 못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결국 계속 일할 수 있었다.
작가는 20대에 기자로 일했지만 정규직이 되지 못한 채 7년을 버텼다. 이 대목에서 지금 기자로 일하는 아들이 떠올랐다. 상황은 다르지만, 젊은 시절의 고민과 불안은 닮아 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책 이야기를 전하며, 베르베르처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랬다.
“나는 매일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에서 행복을 느꼈다. 삶이라는 카드 게임은 내가 지닌 강점과 약점이라는 조건 속에서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233쪽) 그는 부족하든 뛰어나든 작가로 살아가길 희망했다. 억지로가 아니라, 진정 좋아하기 때문에. 이 대목에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이 왔다. ‘나는 진정한 작가로 살고 싶은가? 글을 쓰며 행복한가?’ 아주 가끔 행복을 느낄 뿐, 아직 온전히 투신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즐겁게 쓴 글이어야 즐겁게 읽힌다.”(262쪽) 글에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전에 아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도, 내가 즐겁게 읽으면 아들도 기뻐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반응이 시큰둥했다. 숨길 수 없는 진심은 글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그러니 내가 먼저 즐거워야 한다.
그는 작가로서의 성실함을 강조한다. “작가라는 직업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한 방’보다 꾸준함이 중요하다.”(299쪽) 매년 10월 첫째 주 수요일에 새 책을 내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고, 오전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네 시간 이상 글쓰기를 지켰다. 김훈, 무라카미 하루키, 한강 등 많은 작가들도 비슷하게 하루의 시작을 글쓰기로 연다.
나 역시 글쓰기와 달리기, 글쓰기와 독서 중 무엇을 먼저 할지 고민했지만, 지금은 글쓰기를 하루의 중심에 두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 일을 최우선에 두고 성실하게 이어가야 한다.
“경험 자체를 즐길 것. 승리를 목적으로 하지 말 것.”(445쪽)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일에 통하는 말이다. 즐기다 보면 잘하게 되고, 어려움도 견딜 힘이 생긴다. 이 책을 읽으며 위대한 작품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과정과 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작가는 수많은 책을 쓰는 동안 개인사에서는 세 명의 여자와의 관계, 세 명의 아들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불행이 있었지만, 작가로서의 길에서는 흔들림이 없었다.
책을 덮으며 깨달았다. 작가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성실함과 치밀함이 위대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을. 실패하더라도 즐기며 계속 도전하는 것이 작가의 길이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