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글쓰기 여정

by 박정미


글쓰기는 혼자 하는 행위입니다. 책상 앞에 앉으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건 나 자신뿐이지요. 오롯이 나의 생각, 감정, 기억을 꺼내야 하니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 고요가 좋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로워집니다. 외로움이 오래 지속되면 방향을 잃기 쉽고, 중도에 멈추게 되기도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듭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결국 글쓰기는 혼자만의 싸움이라 한계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래 쓰고 싶다면,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합니다. 함께할 때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에 다녀온 봉화 송이마라톤 대회는 그런 깨달음을 주었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하프 코스였는데, 출발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단순히 보슬비가 아니라, 쏟아지는 비였습니다. 비에 젖은 도로 위를 달린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출발 전에는 ‘오늘은 기록은 포기하자. 완주만 하자.’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예상보다 좋은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돌아보니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달렸기 덕분이었습니다. 출발 후 얼마 되지 않아 빨간 풍선을 단 페이스메이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풍선에는 ‘2시간’이라고 적혀 있었고, 주위에 몇몇 러너들이 함께 달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따라갈 생각이 없었지만, 비를 맞으며 뛰는 중 우연히 그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비에 젖은 도로 위를 여러 명이 발을 맞추어 달렸습니다. 초반에 말이 없던 페이스메이커가 이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페인트 칠한 곳은 미끄러우니까 피해서 뛰세요.” “앞에 언덕 있습니다. 보폭은 짧게, 시선은 앞사람 허리에 두세요.”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이상하게도 힘이 덜 들었습니다. 급수대가 가까워지자 “물 마실 분은 미리 오른쪽으로 이동하세요.” 하고 안내해주었고, 파워젤 먹는 것까지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우리 모두가 자연스럽게 리듬을 맞추며 뛰었습니다.






비는 여전히 쏟아졌지만, 함께 달리는 발소리와 호흡이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조금 힘이 빠질 때면 옆을 보았습니다. 함께 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에도 마주쳤던 얼굴도 보였습니다. 서로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며, 다시 페이스를 유지했습니다. 비에 젖은 운동화가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결국 끝까지 페이스메이커를 놓치지 않고, 이전보다 좋은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많은 대회를 나갔지만, 이렇게 끝까지 누군가와 호흡을 맞춰 완주한 것은 처음입입니다. 대부분은 혼자 뛰다 중간에 지치고, 페이스메이커를 놓치기 일쑤였지요.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함께 달리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 선택이 좋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여럿이 함께할 때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생깁니다. 동호회에서 장거리 훈련을 할 때에도 그랬습니다. 혼자서는 포기할 거리도, 함께라면 끝까지 완주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그 사실을 온몸으로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 써보려 할 때는 늘 벽에 부딪혔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혼자 글을 써보려 했지만, 며칠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 길이 맞나’, ‘내 글은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의심이 쌓였고, 글쓰기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들의 오프라인 모임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저자 사인회 겸 예비 작가들의 모임이였습니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가려고 마음먹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참가했습니다.



모임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초고도 못 썼어요.” “저는 기초 과제도 제출 못했어요.”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이 아직 글을 다 완성하지 못했거나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제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을 잡을 수 있었지요.



시간이 지나 저는 열 명의 공동저자와 함께 《그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혼자였다면 절대 끝내지 못했을 일입니다. 함께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서로의 원고를 읽고 피드백하며, 원고가 늦어질 때는 격려하고, 잘 쓴 글에는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글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함께 쓰며 책임감이 생겼고, 그 책임감이 추진력이 되어 결국 책을 완성할 수 있었지요.






그 책이 출간된 이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지지하며 각자의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새 책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글쓰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성장을 보며 자극 받습니다. 글쓰기도 달리기처럼 혼자 하는 일이지만, 그 길에는 늘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의 힘은 재능보다 지속성에서 나옵니다. 그 지속성은 함께하는 구조에서 만들어집니다. 혼자 쓰면 잠시 멈춰도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함께 쓰면, 멈출 수 없습니다.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고, 나도 누군가의 글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동력이 됩니다.



‘혼자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 속에 진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살아갈수록 느낍니다.


주변의 글쓰기 모임이나 강좌에 참여해보세요.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다 보면, 글쓰기가 더 이상 고독한 싸움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건 나만의 문제인가?’ 했던 고민들이 사실은 모두가 겪는 과정임을 알게 될 겁니다. 서로 교류하면서 우리는 성장합니다.



오프라인이 어렵다면 온라인도 좋습니다. 온라인에서도 다양한 글쓰기 모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함께하려는 마음’입니다. 오프라인이 되었든 온라인이 되었든 마음을 열어야 길도 보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글을 통해 연결된, 함께 걷는 여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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