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다

by 박정미


글은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독자에게 닿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은 일기에 머물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되었을 때 책이 됩니다. 진정한 글쓰기는 자기 표현을 넘어 타인과 마음을 연결하는 일입니다.




처음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무렵이었습니다.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치유하는 글쓰기》였습니다.



책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쌓아온 상처와 억눌린 감정을 글로 써내려가며 치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자는 실제 사례들을 통해 글쓰기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말하지 못한 감정과 풀지 못한 고민을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그걸 글로 꺼내놓는다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 그쳤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은 점점 옅어졌고,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은 일상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마음은 늘 답답했지만, 그것을 글로 표현해야겠다는 용기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바로 지금 제가 글을 배우고 있는 이은대 작가님이었습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인생의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섰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힘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글은 단순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돕는 일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이유가 오로지 나를 위한 치유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배우고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글은 나의 마음을 푸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인생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나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글쓰기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책을 쓰기 전까지는 이런 관점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쓰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쓰려니 한 문장도 써지지 않았습니다. 방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누군가를 위해 쓴다는 관점이 자리 잡은 후부터는 달라졌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을 쓴다는 건, 글을 읽는 사람을 돕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렇게 제 첫 번째 책 《50대, 달리기를 할 줄이야》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책은 달리기를 통해 제가 느낀 변화와 깨달음을 담은 이야기였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저는 다시 삶의 활력을 되찾았고, 그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내가 이런 일을 했다가 아니라, 나처럼 지쳐 있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책을 쓰기 전, 저는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자녀를 다 키우고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수년째 하고 있는 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늘 지쳐 있었고, 마음도 몸도 무거워 보였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제가 달리기를 통해 다시 살아 있음을 느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초고를 쓸 때, 마치 그녀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나 역시 한때는 무기력하고 삶의 의미를 잃은 시기를 지나왔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글을 쓰며 그녀가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용기를 얻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책이 나온 뒤 제 딸이 제게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엄마, 일기를 써 놓은 것 같아요.” 그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사실 그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 중심의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제 글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 경험은 제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진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진심이 전달되려면 독자를 향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문장은 내가 아니라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한 문장을 기준으로 글이 달라졌습니다.



두 번째 책을 쓸 때는 좀 더 명확하게 독자를 정했습니다. 여러 일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끝맺지 못한 경험을 중심으로 썼습니다. 달리기를 통해 꾸준함을 배웠고, 그 꾸준함이 인생의 방향을 바꾼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힘이 결국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습니다. 이번에도 완벽한 글을 쓴 건 아니었지만, 독자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만은 분명했습니다. 글은 점점 나로부터 벗어나 타인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글쓰기를 자기 성찰의 도구이자 타인을 위한 다리로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한 글을 썼다면, 다음 단계는 타인을 위한 글을 써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의 글을 읽는 독자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글쓴이의 부족함이고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독자를 생각하면 글이 달라집니다. 문장은 자연스럽게 친절해지고, 설명은 구체적이 되며, 감정은 절제되면서도 진심이 깊어집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문장에 스며듭니다. 결국 그 마음이 글을 완성시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초보든 숙련자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도 독자, 둘째도 독자입니다. 좋은 글이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입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글은 혼자 쓰지만, 읽히는 순간 함께가 됩니다. 독자를 향한 마음이 있을 때 글은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타인을 위한 글쓰기로의 전환, 그 지점에서 비로소 진정한 작가의 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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