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달리기 훈련이 있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함께 달리는 연습이 있지만, 이 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하프거리 21km를 5분 40초 페이스로 맞춰 달리는 훈련이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무섬쪽 승평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 대회라면 그다지 어려운 페이스가 아닐지 몰라도 훈련에서 이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출발도 하기 전에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살짝 올라왔습니다.
긴장 되는 마음을 달래려고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출발 시간은 오전 9시였지만 8시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트랙을 2km 가볍게 돌았습니다. 이미 운동장에 나와 있는 다른 동호회 팀이 보였고, 아는 얼굴들이 있어 인사를 나누며 여유롭게 몸을 풀었습니다. 준비 운동을 마칠 즈음, 우리 팀도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훈련부장님이 준비해온 물과 이온음료로 목을 살짝 축이면서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단체사진을 찍고 출발 신호가 주어졌습니다. 훈련부장님이 이날 페이스메이커를 맡아 주셨고, 저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세 명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무조건 바짝 따라오셔야 합니다. 뒤처지면 안됩니다.” 그 말에 마음이 더 바짝 조여 들었습니다.
처음 10km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분명 저에게는 조금 빠른 페이스였지만 무리를 따라가니 오히려 든든하고 힘이 났습니다. 강변을 따라 삼삼오오 발걸음을 맞추며 달렸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에서 통증이 올라오며, 머릿속에 ‘조금 속도를 늦출까?’ 하는 유혹이 스멀스멀 기어올랐습니다. 그러다 바로 떠올렸습니다. 속도를 늦추는 순간, 무리에서 곧바로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버텨야 한다고.
중간 급수대를 지나며 물을 마실 때는 잠깐 멈춰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종이컵을 내려놓는 순간 다시 출발 신호가 떨어졌습니다. 쉬었다고 다리가 조금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앞사람의 발을 보며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간격이 벌어지면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무조건 따라붙었습니다. 한 걸음이라도 더.
마침내 16km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이 구간은 제게 언제나 위기입니다.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 지점. 처음 하프마라톤에 출전했을 때도 혼자 달리며 16km에서 멈춰 섰던 기억이 났습니다. 서울에서 혼자였고, 아무도 저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잠깐 서서 다리를 풀고 마음을 겨우 다잡고 다시 달렸습니다. 결국 완주했고, 그게 큰 자신감이 되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도 해냈잖아.’ 이 생각으으로 부정적인 마음을 밀어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앞사람만 바라보고 발을 더 뗐습니다.
골인지점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십 번은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1km는 이를 악물고, 머릿속 생각이 뚝 끊어질 정도로 모든 힘을 쥐어 짜서 달렸습니다. 그렇게 21km를 평균 페이스 5분 40초로 완주했습니다.
도착 후 가민워치 기록을 확인하는 순간,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구간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일정하게 페이스를 유지했고, 마지막 1km는 가장 빠르게 달렸습니다. 이상적인 달리기 연습이였습니다. 물론 페이스메이커 덕분이었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제 다리로 끝까지 뛰어낸 결과였습니다. 스스로를 믿고 버텼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거지요.
그런데 이런 경험은 달리기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책을 쓰는 과정도 비슷했습니다. 책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첫 번째 책을 쓸 때도 그랬습니다. 두 번째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쓰기 싫고, 왜 쓰는지 모르겠고, 이걸 쓴다고 무슨 이득이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마음만 앞서고 현실은 따라오지 않는 시간들이 계속됐습니다. 계획은 세웠지만 하루도 못 버티고 포기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 실패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걸까요. 다시 책을 쓰기로 했을 때는 이번만큼은 무조건 완성하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그래도 고비는 늘 찾아옵니다.
‘이렇게 쓰는 게 맞나?’ ‘너무 못 쓰는 건 아닐까?’ ‘이 글을 누가 읽어줄까?’
갈수록 생각은 복잡해지고, 손은 멈추려 합니다. 그런 순간마다 저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하기로 한 것은 하자. 잘 쓰든 못 쓰든 일단 써보자.’
어느 날, 인터넷 서점에서 제 첫 책에 달린 평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중언부언 생초보의 글이라는 게 티가 너무 난다.” 짧고 단호한 악평. 순간 기분이 상했지요. 시간이 지나 생각했습니다. 아마 맞는 말일 거라고. 초보였고, 지금도 더 배워야 하는 단계니까요. 어차피 처음부터 잘 쓰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책을 쓰기로 한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글을 통해 내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쓰기로 했습니다. 비웃음이 있어도, 비판이 있어도, 나를 믿고 한 문장 한 문장 적어나갔습니다.
초고를 완성하고, 퇴고하고, 투고에에 결국 출간까지 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달리기와 책쓰기는 비슷합니다. 결국은 나를 믿는 싸움이라는 것. 내 안에 올라오는 수많은 부정적인 목소리를 이겨내는 과정이라는 것.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조용히 밀어내고, 오늘 한 줄 더 쓰는 사람. 발이 무거워도 한 걸음 더 내딛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완주합니다. 누가 뭐라 하든,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믿어준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책쓰기의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닙니다. 내 안입니다. 의심, 두려움, 비교, 평가. 이 모든 것을 넘어설 때 우리는 변화합니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과정에는 결국 한 사람이 자신을 이기며 성장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와 싸우는 일입니다. 내가 나를 믿고, 하루를 성실하게 쌓아 나간다면 원하는 목표에 반드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달리든, 글을 쓰든, 어떤 도전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을 믿는 사람만이 원하는 미래에 도착합니다.
책쓰기란 결국, 나를 믿는 여정입니다. 달리기가 내게 가르쳐준 소중한 깨달음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