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해보는 마음으로

by 박정미


“무료 오페라 훌륭한 공연이 있어 소개합니다.”


약 3주 전, 단톡방에 안내가 하나 올라왔다. 안동에 사는 지인의 글이었다. 8월 6일 저녁 7시 30분, 안동예술의전당에서 ‘이육사 창작 오페라’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전화번호를 하나 남기면서 문자를 보내면 무료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평소 문화 공연을 자주 즐기는 편이 아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지만, 해당 날짜에 공연 안내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공식 공연이라면 공지가 있어야 할 텐데. 톡으로 지인에게 홈페이지에는 아직 공지가 없어요라고 보냈더니, 원래 좀 늦게 뜨는 편이라며 그냥 문자를 보내면 된다고 했다.


망설이다가 결국 문자로 티켓 3장을 신청했다. 나, 원정이 엄마, 은해 엄마, 이렇게 셋이 보러 가려고 했다. 일단 표부터 받아두고 같이 가자고 제안할 생각이었다.




티켓 신청 문자를 보낸지 얼마되지 않아 ‘3매 예약 완료. 당일 현장에서 수령 가능합니다’ 라는 답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공연 날짜가 가까워졌다. 원정이 엄마와 은해엄마 셋이 있는 단톡방에 공연 이야기를 꺼냈다. 원정이 엄마는 시간이 된다고 했지만, 은해엄마는 일이 있어 못 간다고 했다. 그러자 원정이엄마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같이 갈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공연을 보러 가지 않을 핑계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혼자 가긴 좀 그렇지 않나?’ ‘공연을 두 시간을 한다고 하는데 7시 30분 공연이면 9시 30분에 끝나고, 복잡한 주차장을 빠져나오면 집에 도착하는 건 10시 30분 아니면 거의 11시쯤 되겠네.’ ‘비가 억수같이 오고 있는데, 또 그렇게 쏟아지면 어쩌지?’


어제 오후 6시쯤 출발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갈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안 가자니 소개해준 사람에게 미안하고, 가자니 날씨와 시간, 그리고 혼자라는 상황이 자꾸 마음을 잡아끌었다. 고민하고 있는데 공연을 알려준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나도 가기가 꺼려지네.”




그 순간, 마침 창밖의 비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지금 출발하면 비가 좀 덜오니까 괜찮겠다싶었다. 우리는 가기로 했다. 그분은 직장이 있는 상운에서, 나는 영주에서 출발했다. 예정 시간보다 거의 두 시간 빨리 안동예술의전당에 도착했다. 비는 여전히 조금씩 오고 있었지만, 심하게 쏟아지진 않았다. 그래도 조심조심 운전해서 도착했다.


거의 다 왔을 무렵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쯤이에요?”


“예술의전당 앞이에요. 주차하면 되겠죠?”


“응, 나 지금 여기 있어. 초록색 원피스 입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주차장을 살피다 보니, 멀리서 손을 흔드는 초록 원피스를 입은 선생님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 옆에 차를 대고 우리는 함께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공연까지는 시간이 남아 ‘이육사 전시관’에 먼저 들렀다. 그의 삶과 작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공연 시간이 되어 예매창구에서 이름을 말하고 티켓을 받았다. 선생님은 원래 다른 분들과 함께 오기로 했지만, 다들 비가 온다고 포기했다고 했다. 로비에서 또 다른 선생님을 기다렸다. 그분은 중학생 딸과 함께 오기로 했는데, 비 때문에 못 올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던 중, 저 멀리서 그 모녀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비가 와도 올 사람은 왔다.


연극이나 뮤지컬은 봤었지만 오페라는 처음이었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막이 올랐다. 노래, 대사, 춤이 어우러진 1부 공연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피곤이 몰려와 졸음을 참기 어려웠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꺾이고, 눈이 감겼다. 민망한 마음에 손으로 손을 꼬집었다.


1부가 끝날 무렵, 갈등이 시작됐다. ‘쉬는 시간이 있다던데, 이쯤에서 그냥 집에 갈까?’ ‘2부도 보면 너무 늦을 텐데…’ 화장실에 다녀오며 계속 고민했다. 너무 피곤했고, 돌아가는 길도 걱정됐다.


자리로 돌아와 “선생님, 저 그냥 갈까봐요.” 그러자 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끝까지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2부 공연이 시작됐다. 놀라울 정도로 몰입감이 컸다. 배우들의 열연과 음악, 무대 연출이 한데 어우러져 마음이 벅차올랐다. 졸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공연이 모두 끝났을 때, 밖은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무사히 공연을 끝까지 보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안 갔더라면, 혹은 중간에 돌아갔다면 두고두고 아쉬웠을 것이다. 잘왔다 싶었다.


삶에는 언제나 변수가 생긴다. 일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마다 포기하는 삶이라면, 결국 내 안에 남는 건 늘 아쉬움뿐이다. 무엇이든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끝까지 해보자. 계획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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