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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그리는 영화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종말을 그린 영화는 그야말로 영화 속 이야기로만 여겼는데, 이제는 곧 다가올 미래처럼 여겨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말을 그린 영화 3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가장 최근에 개봉한 '돈룩업'이고, 두번째는 '칠드런 오브맨', 세번째는 '설국열차'이다.
세편은 모두 종말을 그리고 있지만, 다른 세계관을 담고 있고, 또 다른 인문학적 테마를 담고 있다. 모두 아주 심오한 인문학적 테마를 담고 있으면서도 영화적으로도 완성도가 높고, 감독의 인장이 잘 묻어나있고, 무엇보다 영화적 테크닉이 훌륭한 영화여서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선 역시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문학적 테마이다. 대부분이 뛰어난 걸작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서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먼저, '돈룩업'은 혜성 충돌을 앞두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블랙코메디로 그리고 있는데, 감독의 개성있는 서사와 편집으로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웃기기도 하면서 또 황당하기도하고 온갖 감정이 혼합된 느낌이다. 영화는 혜성 충돌을 앞둔 인간의 모습을 중요하게 그린다. 과학자들이 지구 종말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정부도 언론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정부는 선거에서 이기는데에만 관심있고, 언론은 그것마저도 콘텐츠로 여기고 재미를 뽑아내는데에 관심있고, 심지어 IT기업은 지구를 위협하는 혜성에게서 돈이 될만한 요소를 찾고 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을 영화는 극단적으로 그린다. 이런 지점을 비판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블랙코메디라고 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스토리텔링이라 느껴진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역시 미디어의 모습이다. 과학자들이 게스트로 출연해서 혜성충돌을 이야기하는데, MC들은 그것을 장난으로 여기고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체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반응한다고 여긴다.
이 장면을 보면 가장 유명한 미디어저서인 '죽도록 즐기기'가 떠오른다. 닐 포스트먼은 미디어가 '오락'이 가장 중요한 담론이 되었음을 비판한다. 재미가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메시지도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지구 종말을 이야기하는데 미디어는 재미있기를 요청한다. 그런 딜레마를 너무 잘 그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참지 못한 제니퍼로렌스(박사수료생)은 분노해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우리 모두가 죽는다구요"를 외치는데, 잠이 든 시대를 깨우기 위한 선지자의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맨> 역시도 내가 너무 사랑하는 종말론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는 메시지보다 롱테이크라고 하는 기술적이 요소가 더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나는 그것보다 이 영화의 주제가 더 나를 사로잡았다.
이 영화는 세계각지가 폭동과 테러가 비일비재하고, 무정부상태에 더 이상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불임의 시대를 그리고 있다. 수개월째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임신을 하더라도 다 유산되는 것이다. 테러와 환경오염,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사람이 살기 어려운 시대를 그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계급적으로 가장 낮은 한 흑인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되고, 그래서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한 '인간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그리고 테오라고 하는 남자가 그녀의 출산이 잘 이루어지도록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실제로 점점 사람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진짜 곧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그 새로운 인류의 시작인 아이의 출산을 가장 낮은 계급의 흑인 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고,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이 잠시 싸움을 멈추고 경배의 눈빛과 몸짓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장면은 굉장히 신화적이고, 성서의 메시아가 태어나는 장면을 떠오르게 하면서 신성해진다.
돈가방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 갓난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며 싸우는 모습이 묘하면서도 겸허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영화는 202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벌써 2022년이니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지금 바이러스와 환경오염으로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완전히 질서가 무너진 세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영화에서 롱테이크 장면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중간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서의 롱테이크와 마지막에 테러의 한복판에서 아이를 데리고 피신하는 장면의 롱테이크는 굉징히 유명하다. 감독은 구지 롱테이크로 찍는 것에 대해 "시간에 대한 존중" "공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표현을 했다. 때로는 힘들게 세팅한 공간을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하게 되어 사실 비효율적일 수 있는데, 감독의 예술적 야심으로 탄생된 장면일 것이다.
세번째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이야기해야겠다. 이 영화는 만화원작이긴한데,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열차에 탑승해서 한없이 궤도를 돌고 있는 세상을 그리고 있는데, 열차 속 세계가 계급사회라는 것이 핵심이다.
꼬리칸에 탄 사람은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잠자리나 음식이나 그 모든 부분에서 인권은 무너졌고, 그저 동물처럼 생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오랫동안 준비한 혁명을 위해서 앞칸으로 전진하기를 시도한다.
커티스와 설계자인 남궁민수가 조력자로 함께하게 되면서 그들의 혁명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간다.
열차 속 계급 사회의 풍경은 인류의 최후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또 현재 우리 사회의 메타포이기도 하고, 또 역사 속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양한 레이어로 쌓여있는 구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다.
영화적으로도 꼬리칸은 거의 흑백영화에 가까운 컬러를 활용하고, 앞칸으로 갈 수록 다양한 컬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시각적으로 흥미롭다.
커티스와 남궁민수가 협업으로 앞칸으로 전진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다른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고 영화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커티스는 앞으로 가는 문을 열고자 했지만, 사실 남궁민수는 바깥으로 가는 문을 열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틈틈히 창밖을 관찰하고 눈이 녹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아마도 감독은 남궁민수가 바라본 비전과 결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가 영화처럼 극단적인 종말을 앞두고 있지는 않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나 환경오염, 폭력 사건 등으로 언제나 혼란스럽다. 이런 영화를 볼 때에면 미래가 궁금하기도 하면서도 지금 우리의 삶을 다시한번 반추하게 된다. 좀 더 경각심을 가지고 지금의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 속 종말의 풍경을 보면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이 제어장치 없이 극에 치달았을 때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인간성이 상실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추한 모습으로 가지 않도록 우리의 인간성을 잘 지키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