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이어진 용기에 대하여
얼마 전, 한 학생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연락해본다’는 말로 시작된 메시지였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내가 맡았던 1학년 학생이었다. 코로나가 처음 창궐하던 해였다. 3월에 아이들은 등교하지 못했고, 앞으로의 일정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한 달쯤 지나 아이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 들어왔을 때, 그 첫날의 공기는 아직도 선명하다. 쉬는 시간은 짧았고, 거리두기를 강조하느라 나는 예민해져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특별히 기억에 남을 활동이 있었던 한 해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아이를 비교적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차분했고, 눈빛이 똘망똘망한 아이였다. 내가 어떤 학생을 어떤 기준으로 기억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이였다. 더 고마웠던 건,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려둔 어린 시절 사진 덕분에 내 짐작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는 얼마 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초등학교의 첫 1년을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어쩌면 선생님 덕분에 1학년 때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언제나 멀리서 선생님이 행복하시길 빌게요.’
무엇보다 이 메시지는 답장을 기대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졸업이라는 시점에서, 마음속에 남아 있던 담임선생님에 대한 작은 정리와 감사였다. 성숙한 모습이었다.
나는 1학년 아이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다. 분명 부모님들과만 연락했을 텐데, 이 아이는 엄마에게 내 번호를 물어보고, 용기를 내 연락을 한 것 같았다. 나 역시 마음속에 감사한 선생님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선생님의 기억 속에 내가 있을까’라는 의문만 선명해져 마음에만 담아두었지, 연락을 해볼 용기를 내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문득 궁금했다. 이 차분했던 아이의 마음속에, 거의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던 1학년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어느 날 방과 후, 여자아이 둘이 교실로 다시 돌아왔다. 학교 앞 지킴이 어르신께서 자신들에게 소리를 질렀다며 놀라서 달려왔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겁을 먹은 상태였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교문 앞으로 갔다.
학교를 지켜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내가 아이와 함께 다가가자, 그분은 나를 이 아이의 엄마로 오해한 것 같았다. 내가 아이에게 “이 분 맞아?”라고 묻는 순간, 할아버지는 무작정 화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싸움에서 이기려면 선제적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는 듯이. 그 모습으로 보아, 아이에게 어떤 말과 목소리를 사용했을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당황스러웠고, 속상했고, 난처했다. 교감선생님과 상의했지만, 결국 내가 풀어야 할 일이었다. 며칠 뒤, 나는 다시 교문 앞으로 갔다. 돌에 기대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께 그날의 상황과 내 의도를 차분히 말씀드렸다. 시간이 지나며 마음이 누그러진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잘못과 어른으로서의 태도에 대해 나와 함께 나눌 수 있었고, 우리는 웃으며 그 일을 정리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분이었기에 가능한 마무리였다. 그래서 이 일은 내 마음속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이 아이 역시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던 순간, 놀라고 흔들렸던 선생님의 마음을 아이도 느꼈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그 장면을 ‘다행히 잘 끝났구나’ 하는 안도로 여겼다. 그런데 아이의 기억 속에 내가 흔적으로 남아 시간이 흘러 다시 나에게 이 장면을 되돌아보게 했을 때 나는 그때 용기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늘 그렇듯 용기는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난처했고, 고민했고, 다가갔고, 감사하게도 회복의 이야기로 남았다.
폴 리쾨르에게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내 안의 용기를 실감했고, 그것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또 다른 문을 열었다.
1학년 학생들과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 그 세계를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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