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좋아서 그래요, 그래

시간을 건너온 기억

by 하얀밤


“네가 오지 않으면 우리는 장례식에서나 보게 될 거야.”


근 15년 만에 만난 사촌언니의 말은 너무 강력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란 이유는 반박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를 따라 명절에 늘 큰집에 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스무살이 넘고 나서부터는 간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성인이 되면 이제 나는 가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 정말 모르겠다. 그렇게 발길을 끊었고. 가끔 큰집의 어른들이 우리집에 오셔서 몇가지 음식들을 주고 가셨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논문을 쓰고 있던 나는 명절 전날까지도 망설였다. 교수님께 보내드린다고 하는 날짜가 늦어져 매일같이 하루 4~5시간 논문을 쓰고 있을 때였다. 그렇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서부터 가야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큰집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여든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두팔을 벌리고 서계셨다. 내 이름을 부르셨다. 할아버지에게 안기면서 나는 흡사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큰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늘 내 이름을 부르며 날 안아주셨다. 이것이 할아버지가 나를 환대하는 방식이었다.

할아버지의 그 환대는 신기하게도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나의 시간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언니의 설득은 나에게 남은 시간을, 그리고 나의 지나간 시간까지 불러오는 사건이 되었다. 마치 ‘맡겨진 소녀’에서 자동차를 타고 떠난 킨셀라 아저씨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과 같았다.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 그 모습이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았다. 그 아이는 나였다. 나는 그런 공간이 있었고, 어떤 아이에게는 그런 곳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입학 전 아이들이 찬바닥에서 노는 것이 걸려 토끼가 그려진 예쁜 러그를 샀다. 인디언텐트라는 것도 처음 사봤다. 그 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노는 것도 재밌어보였다. 칠판엔 손글씨를 썼다. 아이들이 들어와서 우리 교실은 따뜻하다고 느꼈으면 했다.

올해 아이들을 만났다. 수줍은 미소와 한두개씩 빠진 이를 보며 ‘소중한 시절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에게서 어린시절의 나를 본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은 나와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의 내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 바로 교실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상처받은 마음이 어루만져지고, 그 시절의 마음이 이해받고 보호받았다는 기억이 아이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입학한 지 사흘째, 등갈비구이가 나왔다. 내 앞에 앉은 여자아이가 젓가락으로 등갈비를 집으려니 잘 안되었다.

“손으로 잡고 먹어도 돼.” 말하자 아이는 손으로 고기를 들고 야무지게 뜯기 시작했다. 주황색 양념이 입가에 묻었다.

옆자리 길동이는 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한 번 먹어봐” 작게 뜯어 주자 야금야금 먹었다.

“채원이 봐봐. 잘 먹지?”

길동이는 채원이를 잠시 보더니 말했다.

“사냥꾼 같아.”

그 순간 급식실이 동굴처럼 느껴졌다. 채원이는 마치 모닥불 앞에서 야무지게 고기를 뜯는 구석기인이었다. 나와 길동이는 동시에 깔깔깔 웃었다. 웃음소리가 닮아 있었다.

대각선에 앉은 민재가 웃는 나를 보더니 말을 걸었다.

“선생님!”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부르는 아이였다.

“민재야, 이제 밥 먹자.”

그러자 참을 수 없어서 그랬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학교가 좋아서 그래요, 그래~”

그 말이 막을 수도 없게 사랑스러웠다.

아니 사랑이었다.

나는 사랑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 안에 있던 사랑이 드러나는 자리에 함께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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