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3편
한 권의 책에는 황금 같은 문장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정리하다 보면, 몇몇 문장들은 언급되지 못한 채 사라지곤 합니다. <독후감>을 통해 줄거리와 몇 가지 주제에 대해 다뤄보았다면, <책 속 문장> 시리즈에서는 빛나는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과 의미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문장들을 기록하고,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와 저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나리는 성이 어떤 곳인지 모릅니다." 주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9p) + "측량사 양반, 무례한 말이지만 당신은 이곳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 사내가 말했다. (16p) + "우리 주인이 언제 성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절대 못 들어갑니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27p)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성'을 배경으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도 정작 그 성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곳에 닿을 수 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소설의 특징 탓에 성은 끝까지 미지의 공간으로 남게 되고,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K의 한계를 더욱 극명하게 부각하게 됩니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마을 사람들은 K가 결코 성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음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성에 도달하려는 K가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달해 주고, 동시에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우며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 대사들이 소설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면서, 성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임을 더욱 부각하고자 합니다.
■ K는 이 길이 결국에는 성으로 접어들 거라는 기대를 계속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기대를 갖고 있었기에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13p) + '내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어쩌다 이곳에 서 있는 거라면 약간 절망적인 경우가 되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K에게 떠올랐다. (18p)
하지만 소설의 첫 부분에서 묘사되는 K는 마을 사람들의 경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이 성에 있기에 기필코 그곳에 도달한다는 목적의식이 가득한 상황입니다. 이 글에 앞서 작성한 <성>의 독후감에 따르면, 이러한 K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K의 의지는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그립니다. 이미 정해진 듯 보이는 자신의 운명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려는 인간의 모습. 그것은 카프카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가진 인간으로서의 저항정신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결국 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결론지어지며, 운명에 굴복하고 마는 인간의 최후를 더욱 부각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는 K의 의지가 강할수록, 한계와 비극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K의 노력을 긍정하는 결말 해석에서는 이러한 K의 의지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그들의 해석에서 K는 성으로의 도달은 비록 실패했지만, 그 노력으로 인해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본래의 존재의식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목적과 가치를 통해 이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증명해 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K의 의지를 평가한다면, 그것은 한계에도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 싸운 그의 목적의식을 예찬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가지는 공포와 한계의식에 도전하고, 끝끝내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 '투쟁하는 인간'의 성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그는 되도록 성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마을 노동자로 살아가야만 성에서 무언가를 달성할 수 있었다. 아직 그를 불신하는 마음이 가득한 마을 사람들도, 가령 그가 친구는 아니더라도 마을의 주민이 되면 그에게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30p)
바르나바스가 가져온 관청의 편지는, K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나는 마을에 동화되어 노동자로 남는 것, 다른 하나는 이름뿐인 마을 노동자가 되어 끝까지 성으로의 도달을 추구하는 것. 이 선택지에서 K는 마을 노동자의 삶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행동 역시 K가 보여주었던 적극적인 문제 해결 태도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에서 오는 편지와 통지는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에 반해, 마을 사람들에 동화되어 미래를 바라보는 일은 그의 노력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K는 분명히 마을 사람들과 친해짐으로써 성으로의 진출을 엿보려는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을 무시하던 마을에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등 자신의 노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 그가 담 위에 올라간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당시 이러한 승리감은 많은 세월 동안 그를 지지해 준 것 같았는데, 이는 그리 어리석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36p)
소설은 성과 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 K에 대해서도 어떠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일체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직 마을에 도착한 이후 벌어지는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소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 속에서 유일하게 K의 과거를 묘사하고 있는 이 대목은 보다 중요하게 보아야 합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던 K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추억에 빠집니다. 그가 어릴 적 마을에는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공동묘지가 존재했습니다. 아이들은 높은 담을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에 담벼락에 도전했고, 오직 소수의 아이들만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K는 빈번한 실패에도 끝끝내 담을 정복했던 어린 날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년 시절에 얻었던 승리감은 오랜 세월동안 K의 정신과 신념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독자는 이를 통해 K가 가진 의지와 도전 의식을 엿보게 도고, 그가 성에 가려는 의지를 쉽게 굽히지 않을 인물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처럼 수많은 도전을 통해서 결국 승리하려는 열망에 가득 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소설은 과거 회상 장면을 통해 K가 어떤 두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하려는 강한 의지의 상징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으로의 도달이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K의 의지를 더욱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작품의 주제의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나는 그분들이 뜻하지 않게 낯선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들키기라도 한다면 나나 당신이나 다 끝장이란 말입니다.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인걸요 (40p)
성과 그 속의 관리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에 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일반 주민의 접근을 일체 차단한 채로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행동을 유지합니다. 그저 마을 사람들이 눈 앞에 띄었다는 이유만으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그들의 목소리는 절대 듣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이들의 태도를 관찰하면서, 세상이 가진 엄청난 배타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꾸준히 성(세상)에 질문하고 찾아가려고 하지만, 성의 관리(세상의 운영방식)들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운영 방식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그 어떤 요소도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배척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 "클람의 애인이라고. 그럼 당신은 내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군." (45p)
서사의 중심이 되는 '프리다와 K의 만남'은 성으로의 도달이라는 K의 맹목적인 목적의식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사건입니다. K가 연고도 없는 마을에 정착하여 그들과 가까워지려는 이유는 결국 마을 사람들이 본인보다 성에 더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특히 프리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녀가 성의 관리 클람의 애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이 소설을 읽으며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애정이나 사랑의 관계를 가져다댈 수 없습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성으로의 도달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자신을 이용하고 있음을 깨달은 프리다의 행동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클람과의 관계, 자신의 직업까지 포기한 프리다에게 여전히 애정보다는 목적 의식을 느끼는 K를 통해 그가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등장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돕니다.
■ 그러나 세상의 저항이란 만만치 않고, 목표가 커질수록 저항도 더 커지는 법이지. (46p)
이 대사는 K가 프리다를 설득하기 위해 꺼낸 말이지만, 동시에 K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말이기도 합니다. K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프리다에게 더 나은 삶을 이루고, 저마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더 많은 어려움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이 대사가 K가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던지는 다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담을 넘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에 도달하는 일은 힘들고 거대한 일입니다. 특히 이방인으로서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성은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사람들을 배척하는 상황은 그의 도전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K는 마을에 도달한 이후 매 순간 성의 차가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를 깨달은 그가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에 굴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는 동안 줄곧 K는 길을 헤매고 있거나, 또는 자기보다 앞서 아직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먼 타향에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너무 낯설어 숨 막혀 죽을 지경이면서도 그곳의 어처구니없는 유혹에 빠져 계속 가면서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51p)
이 문장이 소설의 무거우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여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카프카의 또 다른 작품 <소송>에서는 '공간의 공기'를 통해 공간의 중압감과 주인공이 해결할 수 없는 분명한 세계의 한계를 표현합니다. 어떠한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숨이 막히고, 본인의 의지를 잃어버리게 되는 모습.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요제프 K가 법원의 사람들에게 부축을 간절히 애원하게 된 것은 모두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한 짓으로 표현됩니다.
이전 작에서 무거운 공기가 '법원의 부조리함'을 상징한다면,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공기는 다소 아름다운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주인공 K가 성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기대감과 목적의식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표현에 적힌 대로, K는 스스로가 성의 유혹에 빠져 정처 없이 헤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성이 가진 긍정적 느낌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매 순간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K의 삶에서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성으로 향하는 길뿐입니다.
■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은 이방인이고 불필요한 사람이며 어딜 가나 방해가 되는 사람이에요. (59p) + 이러한 무지는 단번에 고쳐질 일이 아니고, 어쩌면 영영 고쳐지지 않을지도 몰라요. (..) 어딜 가든 당신은 이곳에서 가장 무지한 사람임을 잊지 마시고 부디 조심하셔야 해요. (65p)
카프카를 비롯한 수많은 실존주의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부조리한 곳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불합리한 숙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성에 대한 여정만큼이나 많이 부각되는 요소가 '이방인으로서 존재하는 K'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방인인 K에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니 그저 마을의 규칙에 따르라'라고 지시합니다. 어떠한 연고도 이해도 없는 새로운 마을에 도착한 K는 분명히 이 세상 속에 내던져진 우리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세상에는 이미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고(성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 그것에 순응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마을 사람들).
K의 의지는 결론에서 2가지 방향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새롭게 던져지는 이들이 기존의 규칙과 한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갈 것이라는 기대감. 또 하나는, 의지 가득하게 세상에 맞서는 이들이 파괴되는 절대적인 세상의 한계. 앞서 K가 세상에 도전하는 강한 의지의 표상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보편적이지 않은 그의 목적의식과 도전을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물론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지한 자가 더욱 과감하게 나아간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난 무지와 그로 인해 빚어질 좋지 않은 결과마저도 힘이 남아 있는 한 잠시나마 참고 견디려고 합니다. (66p)
소설의 초반부 K가 지닌 비범함과 의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무지와 맹목적인 추구는 파멸의 지름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의지를 실현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자, 기존에 존재하는 관습과 한계를 깨뜨리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존주의자로서 카프카는 분명한 운명의 한계가 비합리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글의 초반부 K의 행적이 꽤나 영웅적으로 그려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K의 성격을 묘사하거나, 결론의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 그를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전 <성> 독후감에서는 K의 강한 의지가 그에게 또 다른 삶의 목적을 부여했다는 긍정적 결말로의 해석을 설명했습니다. 비록 성으로의 도달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강한 목적의식은 새로운 결말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글의 초반부를 다시 보면, K의 의지는 결코 헛된 바람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의 어린 시절의 성공과 신념을 강조하고, 어떠한 경로로던 목적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의 집념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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