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3편
주인공 K는 토지측량사의 직책을 맡게 되어 한 마을에 방문합니다. 자신을 고용한 성에 가고자 했던 K는 시간이 늦어 한 여관에 들르게 되고, 그곳에서 결코 성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경고를 듣게 됩니다. 멀리서 바라본 성은 몇 개의 낮은 건물이 붙어있는 볼품없는 건축물에 불과했고,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k는 성을 향해 출발합니다. 이때 갑자기 내린 눈으로 갇힐 위험에 처하게 되고, 주변에 보이는 집들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마을의 사람들은 K를 불쾌하게 여기고 그의 요청을 거부하며, 자신들은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묻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에게 '성'은 다가가선 안 되는 금기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듯 보입니다.
그를 돕기 위해 보냈다는 조수 2명을 만나게 되지만 전혀 믿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편지를 전달해 주려 온 심부름꾼을 더 신뢰하게 된 K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심부름꾼 바르나바스는 성에 있는 나리들의 편지를 전달하는 연결고리였고, 그를 통해 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K의 예상과 달리 심부름꾼은 성이 아니라 자신의 집으로 그를 안내하고, 이에 실망한 K는 집을 나와 마을의 주점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자신을 고용했다는 관리 클람을 보게 되고, 클람의 애인이라는 술집 직원 프리다와 마주합니다. K는 그녀를 통해 다시 한번 성을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녀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 K는 결혼을 약속합니다. 술집 주인은 그의 행동으로 인해 프리다가 은혜로운 운명을 잃어버렸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이면 지나친 행동을 자제하라고 경고합니다.
이후 K는 마을의 촌장을 찾아가 자신의 고용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촌장에 따르면, 사실 마을에 측량사는 필요하지 않으며, 그가 고용된 것은 순전히 행정적 오착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관청과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마을에 설치된 전화 역시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덧붙입니다. K는 관청의 어이없는 실수로 자신의 삶에 어려움이 생긴 것에 분노하고, 기필코 성에 찾아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겠다고 다짐합니다. 주점에 돌아와 만난 주점 주인은 자신이 20년 전 클람의 애인이었으며, 여전히 그에게 얽매여 있음을 설명합니다. 이는 성에 얽히게 된 이들은 결코 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여전히 성에 도전하려는 K를 비난하고, 성의 은혜를 받고 있던 프리다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한편, K는 촌장을 통해 마을의 학교 관리직을 맡을 것을 제안받습니다. K는 그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프리다와 살 곳이 없어 억지로 일을 맡습니다. 여전히 성에 가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k는 직접 클람을 만나고자 술집에 들렀고, 그의 썰매에 직접 들어가 숨기까지 하지만 끝내 그를 마주하는 데 실패합니다. 또한, 아무리 성의 관리들에게 조서를 작성해도 관리들은 그것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K는 성에 대해 알면 알수록, 클람이 자신과 먼 곳에 있으며,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에게 다다를 수 없음을 점차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바르나바스 역시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K가 성에 몰두할수록 프리다와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고, 조수에 대한 의견차이로 다툼을 벌입니다. K는 자신의 조수들이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하며, 오히려 그를 더 거슬리게 만들고 있기에 그들을 해고하고자 합니다. 프리다는 그들이 클람의 사람일 수 있다고 그를 설득하지만, K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성 사람이라는 브룬스비크라는 아이가 다가와 K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이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고, 둘은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합니다. 이를 본 프리다는 자신 역시 성의 가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관심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을 품게 되고, K에게 화를 냅니다. 또한, 그들은 심부름꾼 바르나바스에 대해서도 갈등을 겪습니다. 프리다는 바르나바스 가문과 떨어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심부름꾼이 자신을 성에 데려다 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K는 바르나바스 가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바르나바스의 집에 찾아 간 K는 그의 누이 아말리아와 올가를 만나게 되고, 첫째 아말리아는 K에게 바르나바스 가문이 미움받는 내막을 들려줍니다. 막내 아말리아는 성의 관리 소르티니에게 구애를 받았지만, 그를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성의 인물 소르티니가 앙심을 품게 될 것을 두려워한 마을의 모든 이들이 바르나바스 가문을 피하고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감히 성의 요구를 거절한 이들은 거대한 비극에 휩싸이게 됩니다. 가족은 직업을 잃었고, 타인의 모욕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명예를 되찾고, 가문을 일으키고자 갖가지 노력을 해봤지만, 모든 노력이 결국 실패했고, 바르나바스 가문은 가난과 차별 속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관청에는 공식적으로 제기된 문제나 불평이 없었고, 그들은 문제의 존재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르나바스 가족이 할 수 있는 대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프리다는 K의 무심함에 질려 그를 떠나 다시 술집에 취직했고, K가 항상 의심하던 조수와 관계를 맺습니다. K와 조수가 말싸움을 벌이던 그 순간, 바르나바스는 희열에 찬 모습으로 클람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외치며 들어옵니다. 그는 클람의 수석 비서 에어랑어를 만났으며, 그가 K와 면담하길 원하고 있음을 전달합니다. K는 클람을 만나기 위해 에어랑어에게 달려가고, 그의 조수는 그를 방해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에어랑어에게 달려갑니다.
법원 건물에 도착한 K는 우연히 프리다를 만나, 그녀와 대화를 나눕니다. 비록 그의 마음을 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프리다는 끝내 그에게 돌아오지 않고 조수와 함께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녀와의 대화가 끝나고 갑자기 복도가 조용해졌음을 느낀 K는, 에어랑어의 방을 찾으려 아무 방이나 두들기기 시작하고 또 다른 비서 뷔르켈의 방에 들어갑니다. 어쩌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일지 모르는 이 자리에서 K는 돌연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뒤 에어랑어의 부름으로 그를 만나게 되지만, K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프리다를 포기하라는 말만 할 뿐입니다. 그렇게 K는 자신에게 여전히 클람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 성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다시 주점으로 돌아간 K는 또 다른 직원인 페피와 대화를 하게 됩니다. 이때 페피는 사실 프리다가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의도적으로 K를 선택했던 것이라며 그녀를 비판합니다. K는 하녀들이 사소한 일을 가지고 전체를 멋대로 추론한다며 그녀들을 비난하고, 페피는 프리다에게 버림받은 자신들이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K는 이후 들어온 집주인과 말싸움 벌이고, *소설은 완성되지 못한 채 마무리됩니다*
소설 <성>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카프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손꼽히며, 정돈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나타나는 사건과 문장의 연속,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물의 범람, 결말이 나오지 않은 미완성 작품이라는 점 등 여러 요소가 얽히며, 작품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건은 단순하게 보이면서도 이질적이고, 끊임없이 불안정한 분위기가 이어지며 독자들을 괴롭힙니다.
비교적 상황 설정이 뚜렷했던 <소송>이나 <실종자>와 달리, <성>은 K가 어떠한 사람인지, 그가 도착한 마을은 어떤 곳인지, 그가 가려는 성은 어디에 존재하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이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외부 세계와 고립된 고대적 분위기의 폐쇄적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며, 독자는 K와 같은 시선에서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실상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 소설 속에서 객관적인 설명이란 존재하지 않고, K의 관점에 의해 재해석된 제한적 정보만이 우리들의 유일한 단서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과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성에 도달하려는 K의 분투와 끝내 패배한다는 뚜렷한 줄거리가 존재하고, 상징적으로 해석 가능한 인물들과 사건이 여럿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이번 독후감에서는 여러분이 보다 원활하게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이 작품에 대한 몇 가지 해석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1) 실존주의적 접근 :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운명에 저항하지만, 끝내 패배하는 인간
이전에 설명드렸던 카프카의 실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이 소설이 인간의 한계와 비극적인 운명을 그리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의 작품 <소송>은 이유도 실체도 알 수 없는 소송에 갑자기 휘말린 주인공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분투하지만 끝내 패배하는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 <성>은 <소송>과 유사한 맥락에서 비이성적이고 거대한 운명에 맞서지만 끝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성에 다가가기 위한 K의 끊임없는 노력이 끝내 실패하고, K가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로 변해가고 있음에 주목합니다. 카프카는 K가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마을에 남는 선택을 하는 결말을 구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끝내 운명을 극복할 수 없는 패배의 운명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실존주의자 알베르 카뮈와 장 폴 샤르트르는 이 책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겪는 현대인의 위기'를 그리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카프카의 작품 세계를 탐구했던 독문과 교수 빌헬름 엠리히는 더 나아가 '세상이 정해놓은 삶과 의식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노력과 성숙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K에게 있어 성에 도달하는 것은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이며, 그 외의 모든 일들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기에, K는 스스로를 규정했던 정체성이 깨어지는 과정을 겪어야만 합니다. 이는 카프카가 생각한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인간이 갖는 한계와 정확히 일치하고, 이전에 그가 보여주었던 작품 세계의 철학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K는 소설 내내 마을의 비이성적인 전통과 관습을 반박하고 깨뜨리려는 합리주의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결코 마을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반박하고자 합니다. 또한, 자신을 대하는 마을의 부당한 태도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려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신>이나 <소송>의 주인공이 운명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자 했던 것처럼 이 소설의 K 역시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합니다. 운명에 대해 투쟁을 벌이지만 패배하는 실존주의적 이야기 구조는 카프카 작품의 핵심이며, 그렇기에 이 소설 역시 실존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종교적 접근 : 인간은 신과 은총의 세계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카프카와 절친했던 작가 막스 브로트는 이 소설이 신과 절대자의 은총을 향해 나아가려는 인간에 대한 종교적 소설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카프카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을 바탕으로, 이 소설이 유대교의 교리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설명합니다. 유대교의 대표적인 신성은 '심판'과 '은총' 두 가지인데, 심판은 <소송>에서, 은총은 <성>에서 다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브로트에 따르면, 성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초월적 존재의 상징이고, K가 성에 가고자 하는 모습은 신의 은총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실제 카프카의 종교관, 세계관을 들여다보면, 그는 지상과 천상의 세계가 완전히 분절되어 있고, 둘을 잇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신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영역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곳에 절대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비극적 한계는 K가 끝내 성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결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카프카는 우리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은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현대적인 입장 중에는 종교적 해석에 반대하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성을 권위를 가진 절대적인 존재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속적이고 탈종교적인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이성적인 권위와 종교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K는 성에 도달하는 것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고, 그 과정에서 있을 부조리함을 참아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이라는 가상의 존재에 자신의 영적 믿음을 투영하고, 스스로를 굴복시키려는 종교의 부조리함을 상징합니다.
즉, 전통적인 종교적 관점에서는 성을 신의 세계와 신의 은총으로 상징하고,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와 삶에서의 또 다른 노력을 강조합니다. 이에 반해 현대적 입장에서는 성이 오히려 사람들을 현혹하고 무지하게 만드는 존재로서 작용하며, K와 같이 성에 도달한다는 맹목적 목표만을 추구하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3) 전기적 접근 : 아버지의 억압, 사회의 차별 속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카프카의 삶
현실의 어려움에 저항하고, 끝까지 성에 도달하고자 분투하는 K의 모습은 사실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삶 자체라는 전기적 해석 역시 설득력 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카프카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삶의 모든 공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왔고, 자신의 정체성을 끝내 이룩해내지 못했습니다. 강압적인 아버지의 요구로 인해 글을 쓰고자 했던 자신의 꿈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고, 유대계 체코인이라는 자신의 핏줄로 인해 언제나 사회적 차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지만, 끝내 이방인으로서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소설 속 성의 단호함에 주목하며, 성을 가부장적 권위의 상징으로 해석했습니다. 성은 모든 마을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고 장학하고 있음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도전을 일체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면서도 도전할 수 없는 강력한 권위는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물론, 아버지들의 부패한 세계(사회적 지배층)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카프카는 일생 내내 자신보다 강한 권력에 짓눌렸고, 자신이 추구했던 정체성을 온전히 세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접근법은 작가 카프카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합니다.
또한, 카프카가 유대계 체코인으로서 사회적인 차별을 받았던 어려움으로도 해석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K가 그토록 성에 가고자 했던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의 고용에 대해 성에게 인정받고, 토지 측량사로서의 일을 수행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마을에 오게 된 이유이자, 소설의 배경 속에서 그가 마을에 존재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K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성으로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배타적인 유럽 주류 사회의 차별 속에서 사회의 인정을 추구했던 유대 민족의 숙명과 일치합니다. 이에 따라, 전기적 접근의 해석에서는 정체성을 향한 K의 노력은 곧 차별 속에서도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던 카프카의 삶을 투영한다고 보았습니다.
(4) 사회학적 접근 : 거대 권력의 행태와 그들에게 복종하는 구성원을 비판하는 작품
벤야민이 언급한 '아버지들의 부패한 세계'는 곧 사회에 존재하는 가부장적인 지배체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소설 속 성의 가지는 권위와 절대성은 당대 사회에 존재했던 절대 권력 기구를 상징하고 있으며, 카프카는 이 작품을 통해 절대 권력의 비합리성을 지적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그의 소설 <소송>에서는 법원이라는 상위 조직이 절대적인 특권을 활용해 주인공의 삶을 파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성이라는 권력 기구는 K의 삶을 결정하고 있고, 그는 권력 기구에 의해 점차 파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이 작품이 20세기 전체주의 체제에 나타난 절대적 권력기구와 그들의 통치 행태를 서술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는 특히 성이 가지는 자의적인 권력과 국가체제의 과도한 관료화, 그들에게 무조건 적으로 복종하는 마을 구성원의 행태를 꼬집습니다. 카프카가 활동했던 당시 유럽 사회의 한 축은 스탈린, 파시즘 등의 전체주의 권력에 있었습니다. 작품이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전체주의 권력을 비판했고, 개별 사회 구성원은 거대 권력에 승리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5) 정신분석학적 접근 : 성은 각자의 욕망과 불안이 투영되는 심리적 상징물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을 개인의 욕구 표출과 부조화에서 오는 갈등에서 비롯된다고 해석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소설 속의 성이 객관적 실체로 존재한다기보다는, 각 인물의 주체적인 욕망과 갈등을 투영하는 상징물이라고 해석합니다. 실제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성의 모습은 보는 시간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그때의 심리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이 저마다의 정신 상태가 드러나는 심리적 상징물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편, 성을 오히려 K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접근 역시 존재합니다. K는 성에 가겠다는 일념을 품게 되면서부터, 마을 사람들의 차별이나 프리다와의 갈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성에 대한 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부차적인 일에 불과했기에, 마을의 차별과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일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선에서 본다면 성은 K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원인임과 동시에 그가 겪는 다른 문제들을 헤쳐나가는 동력이 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6) 긍정적 결말 해석을 제안하는 입장 : K의 노력은 또 다른 성과로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K의 노력을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다른 방향의 해석을 제시합니다. 소설 속 K의 가장 큰 특징은 최후에 순간에 다다르기 전까지 자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인간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끝내 굴복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도전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실존주의가 주장하는 바는 '세상이 인간에게 정해놓은 정체성과 목적은 없으니, 인간이 스스로 그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K는 비록 성에 도달하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의 노력과 소기의 성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그를 주목하고, 그를 필요로 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이방인으로서 차별을 받아왔던 K가 점차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변신>의 그레고리 잠자, <소송>의 요제프 K가 죽음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것과는 분명히 대비되는 결말입니다. K는 마을에 남아 학교 관리 업무를 맡을 수 있고, 프리다 혹은 페피와의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본래 목적한 모습은 아니지만, 이전의 삶과는 분명히 다른 긍정적인 요소가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5가지의 해석이 성의 의미와 존재 가치 자체에 대해 다루었거나, 성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비극에 주목했다면, 이러한 접근에서는 K의 끊임없는 노력과 그로 인해 얻은 성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전 작품에서 그려졌던 카프카의 실존주의가 인간 존재의 한계에만 주목한 것에 그쳤던 반면, 삶에서의 노력을 긍정한다는 소설의 주제 의식은 카프카의 철학을 더 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