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2편
한 권의 책에는 황금 같은 문장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독후감을 정리하다 보면, 몇몇 문장들은 언급되지 못한 채 사라지곤 합니다. <독후감>을 통해 줄거리와 몇 가지 주제에 대해 다뤄보았다면, <책 속 문장> 시리즈에서는 빛나는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과 의미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문장들을 기록하고,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와 저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7p)
소설은 갑작스러운 체포와 소송으로 시작합니다. 느닷없이 낯선 남자들이 K의 집에 쳐들어오더니, K가 체포되었으며 소송에 참여해야 한다고 통보합니다.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것과 같이, <소송>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르는 소송에 얽히게 되는 혼란을 맞이하게 됩니다. 소설은 이 소송이 일어나게 된 이유나 배경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고, 소송이 발생하고 난 뒤 주인공이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그가 추구하는 문제 해결 행동에만 주목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카프카의 소설을 살펴보면, 이러한 '갑작스러운 비극'이 곧 '인간의 삶'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삶의 시작을 선택하지 않았고, 타당한 이유 없이 우리 자신으로 이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삶에는 어떠한 목적도 이유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저마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 그 삶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요제프 K가 소송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처럼, 모든 인간은 갑자기 주어진 삶에서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찾고,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는 숙명 속에서 살아갑니다.
■ 우린 그런 걸 말해 줄 처지가 못 되오. 당신 방으로 돌아가서 기다려요. 이미 소송에 돌입했으니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요. (8p) + 체포당한 이유와 이런 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군지도 전혀 알 수 없단 말인가? (13p)
K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큰 당황과 황당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 누구도 소송이나 재판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심지어 K의 잘못이 무엇인지, 누가 어떠한 죄목으로 그를 고발했는지, 그가 어떠한 부분을 소명해야 하는지 등 K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그 어떠한 정보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변론해서 결백을 밝혀내야 한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이뤄내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소설에 담긴 문제상황의 핵심입니다.
카프카가 주목하는 실존의 불안, 정체성의 문제는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K의 재판과 같습니다. 우리는 누가 이 세상을 만들었는지, 왜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수천 년에 걸쳐 고민했지만,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저마다의 해석을 '믿으며', 그에 맞는 삶의 방식을 택할 뿐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무엇이 '정답'인지 결코 알지 못한 채로 의문점이 가득한 죽음을 맞이할 운명입니다.
■ 피할 도리가 없었다. 일단 소송이 시작되었으니 거기에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25p)
이제 소송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는 상관없습니다. K는 감옥에 들어가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소송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벌레로 변해버린 상황에서도 출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소송>의 주인공 K 역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송 상황에서도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앞서 말한 작품들의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삶과 세상의 진짜 목적을 찾고, 의미를 고민하는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K는 이성을 바탕으로 답을 찾으려는 논리적인 인간, 삶의 타당한 이유를 고민하는 철학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프카를 비롯한 여러 실존주의자들이 이성에 대한 찬양을 비판하고, 인간 존재의 이유를 다르게 바라보았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이전의 기대와 달리, 20세기의 세상은 여러 차례의 전쟁과 이념 갈등, 사회 혼란이 지배했던 세상이었습니다. 우리는 K의 노력을 통해 이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지만, 최후의 순간 그가 패배하는 모습을 통해 카프카가 이러한 삶의 모습에 대해 비판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 이 여자는 지금 내게 자기 몸을 바칠 참이야. 이곳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과 다름없이 이 여자도 타락했어. 때문에 낯선 남자가 오면 그게 누구든 간에 눈이 아름다우니 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거야. (38p)
소설에서 묘사되는 법원은 공정이나 정의로움, 이성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이기심과 추악함, 성욕이 지배하는 듯 보입니다. 법원은 예상하기 힘든 낡은 건물 속 한 공간에 존재하고, 그곳에서 만난 여자는 금방이라도 몸을 바칠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K에게 소송을 제기하고,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법원이 추악함과 일차적 감정으로 가득한 곳으로 그려지는 것은 인간의 실존이 가지는 문제의식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처럼, K를 우리 인간으로, 법원을 세상으로 대입해 봅시다. 세상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우리들은 이성적이고 타당한 답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추악하고 감정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입니다. 심지어 소송 대상을 헷갈리고, 허술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지나치게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K가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자신을 변호하려고 해도, 그들은 K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그들의 생각만을 강요합니다.
■ 이런 발작은 나도 처음이어서 상당히 당황스럽네요. 당신들 말마따나 이곳 공기가 나한테는 정말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부축해 주지 않으실래요? 좀 어지러워서요. 혼자 힘으로 일어서면 비틀거릴 것 같아요. (46p) + K는 완전히 그들에게 내맡겨져 있었다. 만약에 그들이 K를 놓아 버리면 마치 판자처럼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49p)
K는 당당한 태도로 법원에 찾아갔지만, 답답한 법원의 공기에 눌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결국, 최후의 순간에는 그들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법원을 탈출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세상에 저항하는 인간이 겪게 되는 비참한 고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법원에 들어가기 전 당당했던 모습과 달리, 법원의 공기와 시스템 불친절 등 어느 것 하나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과 불합리한 위치를 갖게 되고, 그것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별 인간으로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대결을 할 수 없고, 세상의 법칙에 완전히 내맡겨진 채 우리의 작은 반항만이 가능합니다.
■ 그러나 법률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피고나 변호인은 법원의 기록들, 특히 기소장의 경우에는 접할 수가 없다. 첫 청원서가 사안에 맞는 중요한 내용을 담느냐 못 담느냐는 결국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 변호사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되도록 변호사의 개입을 배제하고 피고가 모든 것을 직접 떠맡도록 하려는 것이다. (68p)
우리들은 세상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성현들의 말씀이나 철학자들의 깊은 생각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합니다. 저는 소설 속 "변호사조차 소송을 알지 못하고, 피고가 모든 것을 떠맡도록 한다"는 표현을 읽으며, 인류사에 존재하는 여러 자료와 고민조차도 우리에게 정확한 답을 내려줄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철학과 말씀, 종교들은 모두 세상이 직접 말하는 답이 아닌, 같은 인간이 저마다의 역할 속에서 내린 잠정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그들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더라도, 정확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는 그들의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는 하나의 '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피고가 모든 것을 떠맡아야 하는 것처럼, 개별 인간은 결국 자신의 삶에만 존재하는 배경과 문제 상황 속에서 저마다의 답을 찾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사실 매우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지식과 고민도 우리를 답으로 이끌어 주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저, 각자 마주한 소송에 뛰어들어서 저마다의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운명입니다.
■ 피고인들은 거의 누구나, 소송 과정에 돌입하기가 무섭게 뭔가 개선할 점을 생각하며 대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다.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그냥 만족하는 것이다. (71p)
결국 카프카가 제시하는 결론은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고통받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패배하고, 혼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기 때문에 어떠한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카프카를 이야기하면 따라오는 '실존의 불안'이나 '정체성의 혼란' 등의 문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답을 찾을 수 없고, 그렇기에 본래 추구하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적 한계를 나타냅니다. 카프카는 결국 이를 받아들이고 그저 주어진 삶 내부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처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 아직도 법원이 뭔지 잘 모르시나 보군요. (88p) + 당신은 아직 그곳 사람들을 제대로 모르는가 보군요. 아마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소송 과정에서는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자꾸만 입에 오르내린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101p) + 법원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소. (125p)
소설은 여러 번 반복해서 K가 법원이 어떠한 곳인지 모르고 있다고 질책합니다. 앞선 대입법을 이곳에도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K가 알고 있는 법과 법원은 언제나 공명정대하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에 의해 결과를 도출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성을 통해 그들을 이해시키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명백히 K가 가진 '세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어떠한 목적이 있다고 믿거나, 우리가 삶에서 이뤄내야 하는 숙명 같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상은 이성적인 시스템이며,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성되어 있다고 믿기도 합니다. 카프카는 <소송>을 통해 이러한 태도가 '분명히 잘못된 인식'이라고 꼬집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작동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며 세상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 이곳은 당신 말고는 아무도 입장을 허가받지 못했소. 왜냐하면 이 문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서 만들어졌으니까. 나도 이제 문을 닫아야겠군요. (126p)
문지기는 인간의 삶에 내재된 불합리한 운명을 의미합니다.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가 죽으면서 문을 닫는다는 표현에서 오직 남자의 인생에만 결부되어 있는 무언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는 모두가 법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그것이 법의 실체라고 믿습니다. 그는 세상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인간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문지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가 통과하는 것을 허용해주지 않습니다.
문지기는 언제나 냉담한 존재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그에게 관심을 갖기도 하고, 그가 보여주는 노력에 반응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문지기의 다소 긍정적으로 보이는 태도는 우리가 삶의 진리에 가까워지는 '듯' 느끼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 수많은 고민과 철학과 토론을 통해 삶과 세상의 목적을 점점 더 이해하는 듯하는 과정 말입니다. 사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철학과 종교의 설명을 믿고, 지금과 같은 방향을 지속한다면 진리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결국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이러한 진보는 우리의 착각이며, 실체에 다가가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 모든 것을 다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오.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지. (129p)
소설에서 중요한 딱 하나의 문장을 뽑으라면, 저는 세상의 필연성에 대해 다룬 이 문장을 꼽고 싶습니다. '필연성'이란, 특정한 법칙이나 규범 따위에 불가피하게 제약받고 있는 성질이며, 어떠한 일이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요소나 성질을 의미합니다.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의 이해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가 납득하지 못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삶의 불합리함을 느끼는 동시에 주어진 삶의 목적을 고민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세상이 무의미한 곳이며, 그저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며,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기 용이한지, 이해하기에 얼마나 편한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세상의 법칙은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고, 우리는 작은 개인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세상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 법원은 당신한테 아무것도 원하지 않소. 당신이 오면 받아 주는 거고, 당신이 가면 가게 놔두는 거요. (130p)
법원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세상은 아무런 의도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법원은 아무런 의도 없이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떠나는 사람을 떠나보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인간이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지, 어떠한 고민과 행동을 이어가는지에 대해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개별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자신 역시 거대한 시스템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어떠한 상황도 환경도 우리를 도와주려는 운명은 없고, 그저 인과관계에 따른 결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 그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제대로 보여 주지 못했다. 당국이 하는 일을 빼앗지도 못했다. 그러니 이 마지막 과오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게 누구든 그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지막 힘을 주기를 거절한 자가 져야 하지 않을까? (134p)
K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허히 죽음을 맞이하고자 했으나, 최후의 순간 불현듯 억울함과 분노를 느낍니다. 아무리 실존의 불안과 비합리성을 인정하려고 해도, 인간으로서 태생적으로 가지는 욕구와 가치를 죽음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는 또 다른 한계입니다. 아무리 카프카를 비롯한 이들이 세상의 불합리성을 강조한다고 한들, 우리는 결코 세상과 인생에 대한 의미 탐색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숙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 "개 같다!" 그가 말했다. 치욕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았다. (134p)
결국 최후의 순간 K가 느낀 것은 불합리한 상황에서 끝끝내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패배감과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세상에 대한 불합리함입니다. 그가 내뱉은 '개 같다'는 표현은 그의 삶에 주어진 일을 납득하지 못한 그의 억울함을 의미합니다. 특히, 치욕이 그 감정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다는 표현에 대해 저는 단순 의미 강조를 넘어 더 암울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K가 느낀 분노의 감정은 그가 죽음으로서 사라지게 되지만, 그가 겪었던 치욕은 K를 넘어 다른 모든 인간의 마지막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즉, 세상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이 치욕스러운 패배는 K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죽는 순간에 겪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