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나에게 일어난 몇 가지 에피소드에서 얻은 통찰
그거 아세요?
귤에 붙은 하얀 거 이름은 귤락입니다.
이 워딩을 보고 익숙한 음원이 귓전에 울렸다면, 요즘 유행하는 노래나 쇼츠, 릴스를 꽤나 보는 사람일 확률이 크다.
도파민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자극적인 영상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데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탐닉하게 된다.
얼마 전 있었던 일들을 반추하며 요즘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생각에 대한 나의 생각과 트렌드를 공유해보려 한다.
1.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
만 원짜리 현금을 천 원짜리와 5천 원짜리로 바꾸고 싶어서 가까운 편의점을 들렸다.
가격이 얼마 하지 않는 간식거리를 하나 고르고 잔돈을 거슬러 받았다.
그런데 계산대 옆에 놓인 와인들이 눈에 거슬렸다.
와인이 누워있는데 병의 입구가 땅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점원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저기.. 와인은 위를 보게 놔두셔야 할 것 같아요.”
그 점원은 티껍다는 듯 나를 한번 쓰윽 보더니
“네~ 사장님께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멋쩍었다. 괜히 내가 또 오지랖을.. 부렸구나 싶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이 점원은 이런 비슷한 류의 말을 얼마나 들었을까?
원래 그런 성격의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개저씨 정도로 취급하는 거였을까?
아니면 본인이 어쩌지 못하는 걸 내가 요구한 걸까?
아무튼 많은 생각이 스쳤다.
아마도 그 젊은 여성은 아르바이트생이었을 것이다.
단순 노무를 수행하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민원과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서비스 직종에 있으니
친절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무리였을까?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벗어난 부분에 대해
남이 이래라저래라 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내 일과 남 일을 구분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손님의 충고가 그렇게 기분이 나빴을까?
(물론 상대가 원하지 않았을 때 하는 충고는 꼰대의 갑질이라고 보는 요즘 시대의 눈높이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소위 요즘의 1인분 시대에 걸맞은 사고방식이다.
“굳이?” ”왜? “ “내가?” 이 세 가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세태인 셈이다.
내 것만 잘하면 되지라는 사고는 유아기에서 유년기까지
부모의 보호와 관리 아래 통제되어 자기 자신의 이익이
철저히 우선해야 하는 사고방식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 논제는 누군가의 행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논함이 아니다.
그저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대해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고 있어 더 멀리 더 넓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조금만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조금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사람은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하지만 그 배움은 일을 통한 배움이 있고, 교육을 통한 배움이 있는데
교육을 통한 배움은 책상머리에 앉아 이론을 배우고 머릿속에 어떤 메커니즘을 쌓는데 좋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닥친 상황에서 대응하는 유연성은 부족하며, 스스로 변화하며 실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을 통한 배움은 실전에서 체험하며 스스로 체득한 것들을 통해 종전보다 나아짐을 경험한다.
다만 다양한 분야에서 나아질 수 있기에는 한계가 있어 확장성은 부족하며, 자신이 경험한 세상에 갇혀버리기 쉽다.
그래서 교육을 통한 배움과 일을 통한 배움은 서로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배움으로 성장하고,
스스로 변화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것은 꺼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나를 둘러싼 백그라운드 환경, 시스템들이
바뀌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글을 직접 쓰거나,
이것저것 도전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귀해지고,
남 탓이나 시스템을 트집 잡고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대신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교묘한 방식으로 상식에 맞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어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도록 콘텐츠를 잘 만드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빨리 캐치하면,
어쩌면 성공을 빨리 할 수 있게 된 시대에 살고 있다.
2. 시골 펜션에서 있었던 일
장성한 자식이 둘이나 둔 노부부께서 운영하는 시골 펜션에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식사를 겸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펜션을 방문했던 날 묵었던 손님은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 1팀이 있었다.
평일이었고, 다른 가족은 아빠와 딸이 함께 여행을 온 것이었다.
마침 그 딸과 아이가 같은 학년이라 반가운 부분이 컸다.
사장님은 옆자리에서 식사를 했던 다른 가족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셨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냥 왜 엄마는 안 오셨나? 정도의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의 단순한 호기심 정도였을 것.
같은 아파트에 살더라도 서로 인사도 하지 않고,
옆집에 사는 사람과는 교류는커녕 알고 싶지도 않은 요즘이다.
그야말로 철저히 개인적인 삶의 집합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는 이웃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부모 자식 친가 처가 등 확장된 가족개념에서도
철저히 개인적인 삶의 원칙이 적용되도록 사람들은 점점 더 개인화되어가고 있다.
부모는 부모의 삶이 있고,
시댁과 처가댁의 삶이 따로 있고,
부부도 각자의 삶이 있고,
나는 나의 삶이 중요하다고 믿는 시대이다.
(마치 이것이 분리되지 않으면 불행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옛날사람 취급을 하기 일쑤다.)
자식에게도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어
서로 간에 사랑과 정이라는 개념보다는
서로 간에 권리 의무를 주장하는 관계에 가까운 사람들도 지켜보게 된다.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의 장점은 “우리”라는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고,
농경사회에서 출발한 “함께의 문화”였다.
개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단체의 삶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적인 삶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회사나 단체에 속해지면, 적응이 힘든 것이다.
나만 챙기고 나만 위하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타인을 챙겨야 하고 타인을 배려해야 하고 다 같이 함께해야 하는
단체에서 살려고 하니 얼마나 힘겹겠는가!
직장이 고된 이유는 수만가지겠지만,
따지고 보면 ‘1’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철저히 개인주의의 입장에서 따져보면
득 보다 실이 많다는 결론일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지금 노년층에서
최고의 알바로 꼽히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의뢰인인 직장인의 앞에서 ‘상사욕을 들어주는 알바’이다.
실없이 웃음이 나는 이야기지만,
그저 웃고 있기에는 참 서글픈 이야기다.
그전에는 상사욕을 하면 대신 들어주던 친구도 사라지고,
가족도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참 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주의라서 편하겠지만, 그 부작용은 외로움인 것이다.
3. 릴스를 보다가 생각난 일
최근 유행하는 트렌드 알고리즘에 이끌려 음식과 관련된
아무 영상이나 계속 보고 있다 보니 우연히 얻어지는 통찰이 있었다.
일단 요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 특히 빵에 있어서의 특징은
바로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먹고 싶은 부분인 속만 남긴 것”에다가
“생크림이 손과 입에 잔뜩 묻을 정도로 “ 들어가고,
”좋아하는 과일을 다 씹지도 못하지만, 풍성하게 “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맛있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부분은 “사람들의 욕구, 욕망, 욕심”으로 대변되는
부분들을 해소해 줘야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것이다.
적당한. 건강한, 딱 그만큼의, 필요한 만큼의.
이런 단어들은 요즘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과하고, 풍족하고, 넘쳐흘러야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시대가 되었다.
이른바 풍요의 시대가 된 것이다.
물가가 아무리 치솟아도
내가 해야 할 과소비는 반드시 해야 하고,
가볍게 간단히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더 저렴하게 구매하고 싶지만,
비싸고 더 멋진 것들을 위한 소비는
더 비싸지더라도 구매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풍토가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요즘에는 이런 것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요식업계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일어나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가격이 저렴한 무한리필 고깃집이 늘어나고 있고,
정과 인심으로 손님을 손님으로 대접했던 식당들은 문을 닫는다.
있어 보이고 비싼 음식을 파는 파인다이닝 식당들은
인테리어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본전을 뽑아내기 바쁘다.
요샛말로 진상 손놈(손님이 아니라 놈이라는 의미이다.)도
저렴한 물품이나 음식을 판매하는 곳에 많지 비싸고 좋은 식당에서는
그 출현빈도가 덜하다는 이야기는 통설에 가깝다.
사람들은 더 편하고 간편하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원하고 있고,
약간의 불편을 감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는 당신이 ”하고 싶지 않았던 그것“은 없애거나 대신해 주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이 더 풍요롭게” 해준 뒤
“그에 맞는 비싼 비용“을 청구하면 되는 것이다.
그 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직장상사의 눈치를 보며
힘들고 어려게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게 싫으면 스스로 장사를 해서
남의 돈을 받아내야 하는데 뭐가 더 쉬울지는 개인의 판단인 것이다.
이러니 매주 로또를 사는 사람들이 늘 수밖에..
이 글을 통해 요즘 시대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 또한 위에서 말한 삶을 살고 있으며, 이를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삶의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변화해 나가려 한다면 좀 더 달라진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사이트를
누군가에게는 분노를 안겨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 말로 대답하자면,
그건 그쪽 취향이신 거고, 아니면 그냥 지나가세요.
라고 AI가 답해줄 것 같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뀔 수 없고,
변화의 상수는 늘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니
그 어떤 계기가 이 글이라면 이 글을 쓴 시간이 의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