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시린 밤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내딛으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까?
한 번의 용기로 모든 게 끝난다면,
나 더 이상 이렇게 안 살아도 되는데.
지독히도 어둡고, 외로운 밤이었다.
나 의식의 흐름이 여기까지 다다랐을 때는 무엇보다 바로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나 요즘 왜 이러지..' 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던 날들이었다.
포기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주저앉고 싶어졌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더 많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에 내 현실을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며칠째 정돈되지 못한 방,
시험기간 동안 널브러진 학원 책들과 옷가지들이 너무 익숙해졌고 가장 안락한 공간인 것만 같았다.
밖으로 본 세상은 어두웠고,
저 멀리 가로등만이 거리를 비추어주고 있었다.
'진짜 다 끝났으면 좋겠다... 쉬고 싶어.'
최근 한 달간 이 학원 저 학원 보강 다니느라 숨 가쁘게 달렸다. 토요일, 일요일 모두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냈다.
'이게 맞나.'
싶기도 했다.
'난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해야 하는 걸까'
시내버스에 몸을 맡긴 채 나는 학원가를 방랑하고 있었다.
주말이었지만, 밤낮 가릴 것 없이 학원가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평소에 같이 잘 안 놀던 친구여도 학원가를 바삐 걸어가다 보면 오다가다 마주친다.
나의 걸음과 너의 걸음이 향한 곳은
우리를 더 측은하게 만들었다.
책가방 무겁게 다니며 편의점의 간편 음식과 카페인에 의존하게끔 교묘히 설계된 우리들의 삶이 어쩌면 가장 안타까운 신세일지도 모른다.
학원가의 밤거리는 외롭지 않다.
사람들 퇴근시간에 맞추어 학원버스들이 울려대는 경적은 지친 우리들을 태워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학원 버스에서 내리자마다 공허하다.
휘황찬란한 학원 간판들로 북적대던 곳을 떠나 내린 집 앞 버스정류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조금 떨어진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
정말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은 하루였다.
매번 시험기간만 되면 이랬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몸의 중심이 안 잡혀 어지러웠던 적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서 한숨 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위로 올려다본 빔하늘은 그 화려한 불빛에 가려 별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늘 달은 보였다.
이상하게 시험기간만 되면 내 사진첩엔 매일매일의 달 사진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오늘은 없네.'
아쉬웠다.
내 일상에서 유일하게 변하는 게 달이었는데.
그래서 그냥 가로등이 달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달 대신, 바쁜 엄마 아빠 대신, 가로등이 나를 마중 나와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라고 물어봐주는,
'어디 속상하거나 아픈 데는 없고?'라고 물어봐주는.
"아파. 너무 아픈데,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내가 너무 속상했고 이것조차 자연스럽게 견디지 못하는 내가 하찮게 느껴졌다.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친구들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청춘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다 같이 외로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함께여서 견딜만한 그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