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 없던 어느 날의 소나기

그날의 일기예보는 분명 '맑음' 이었다.

by Carry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기는 이 발자국뒤에 따라오는 이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 서산대사 -


보이는 대로 보는 것,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 이 대체 무엇일까? 에 대해 많은 시간을 고민했었습니다.

최고 병원의 첨단 기계로도 쉽게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이라는 것은

숫자인 양적으로도 정확히 측정되기 어려운 아주 복잡하고도 미묘한 세계 같았습니다.


피에로조커가 입꼬리를 올렸다고, 그들이 웃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건 그저 그려진 웃음일 뿐,

그들의 마음속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모든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을 겪어오며,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안다고, 이해한다고, 조언한다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왜냐하면
감히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 사람의 신발'을

온전히 '그 사람' 이 되어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영어의 'under-stand'라는 단어처럼,
온전히 그 사람 아래에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을 지탱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삶을 뒤흔든 그 사건 이후 지금의 저는
함부로 누군가의 경험과 삶에 대하여 섣부른 판단과 어설픈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경험'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밥 한 끼를 먹자는 '밥 친구'들과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더 고마웠습니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고,
애써 사회적 페르소나를 쓰고 정상적인 기능하는 사람인 척 하느라

멍하니 앉아 있던 저를 데리고 “바람이나 좀 쐬자”며 끌고 나가

회사 앞 30초 거리에서 파는 추운날 따끈한 오뎅 국물이 저에겐 큰 위로였습니다.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콧물인지 눈물을 훌쩍이며,

함께 먹은 오뎅 국물의 추억이 현재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맑음’이라는 일기예보만 믿고 우산 없이 나선 날,
소나기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쏟아졌습니다.

그건 제 인생의 첫 번째 화살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그런 날이 찾아오는 법이지요.
예고 없이, 준비도 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는 상관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아야 할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제게 내린 그 소나기는
갑작스러운 우박처럼 차고, 아프고, 무서웠습니다.

동남 아시아에서나 보던, 갑작스럽게 내리는 '스콜' 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제게 소중했던 것들은,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모두 젖어버렸습니다.


동화나 영화에서

가끔 그런 큰 비 끝에 떠오르는 예쁜 일곱 빛깔 무지개는 찾지 못했습니다.


제 삶은 그 일로 ‘외상 후 스트레스(PTSD)’와 ‘우울증(MDD)’이란 낯선 이름들과 함께 해야 했습니다 .


밝고 유쾌해서 ‘백야(白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저에게
정반대인 극야(極夜)의 ‘우울(Depression)’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어였습니다.


故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저서 中
‘정말 그럴 때가’라는 시(時)처럼 정말 그럴 때가 잦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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