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럴 때가’

소나기 같은 그 날 이후, 정말 그럴 때가 많아졌다.

by Carry

‘정말 그럴 때가’

이어령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를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소나기 같은 준비되지 않은 비를 맞고 난 뒤의 제 삶은

정말 ‘그럴 때’가 많아졌습니다.

어디를 가나 ‘벽’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만 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하기도 했고,
혼자 눈물을 훔치고
씩씩한 척 사람들 앞에서
사회적 페르소나가 성숙한 정상적 기능하는 사람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마음과 다르게
밝게 아무 일 없이 웃어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냥 그래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냥 그래야만 했었습니다.


괜찮냐’, ‘밥은 먹었냐’는 별 말 아닌 말들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체할 것 같은 울컥함의 큰 덩어리들을
온전히 삼켜야 하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서럽고 노엽고, 결국은 ‘혼자’ 버티고 해내야 할 상황에 외롭고 지칠 때가 많아졌었습니다.
혼자라서 사람이 그립고 외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조차도 조직조차도 그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어
절망했고 공허하고 쓰라리고 너무나 아팠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쳐봐야 계란만 깨져나간다는 사실 또한
조직과 세상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제가 잘 알고 있던 진정한 ‘현실’이었습니다.

대신에 저는 제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리고 아픈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
화장으로 어두움을 감추고,
조커처럼 피에로처럼 더 밝게 웃고 다녔습니다.

보여지는 그 모습 그 자체로 밝은 줄로만 아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전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체험하며,
어떻게 한 사람의 미래가 통째로 사라지는 그런 상황에서
웃고 다닌다고 제가 겪은 그 모든 것이 견딜 수 있는 ‘괜찮은 일’ 인줄로만 아는 사람들의 반응이
의아하고 서글펐습니다.


웃고다니면, 제 마음도 웃는 줄 아는 ‘심리와 정신’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랬었기에 더 고통스럽고, 더 외롭고 힘들었었습니다.

인간이 선(善)하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만난
'일기예보에도 없던 어느날의 소나기'를 통해 만난 '세상과 현실' 은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하지도, 선하지도 녹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선(善)’을 조각 내어 붙일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 조각들은 붙이는 것조차 불가하게
공중의 파편으로 흩날려지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악(惡)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계란으로 바위를 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故 이어령 선생님의 글 속에서

바위를 치는 계란도, 그 바위를 깰 대상이 아닌 것을 알게 되면,

그 바위는 더 고귀한 생명으로 덮을 수 있는
이끼’가 될 수 있다는'상생(相生)' 의 더 큰 마음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 과정 모두를 잘 이겨내면 '이끼' 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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