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장은 '백지'여야 맞들 때 낫다

유실물들: 연애, '백지장은 백지여야 맞든다'

by Carry

2022년 11월 11일의 글


이 험난한 시간 속에서
나에게 '유실물' 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연애' 였다.


어느 순간,
나는 연애를 삶에서 놓아버렸다.

그건 단순히 마음이 식어서도,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나 혼자도 이 먹먹하고,
버거운 고통의 시간너무 힘겹고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픈 마음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연인이라면, 더더욱.


돌이켜보면
나는 늘 나그네 같은 사람을 좋아했다.
그들은 바람처럼 다가왔다
어느 순간 예고없이 스르르 날아가버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나의 밝은 모습을 보고 좋아했고,

혹여나 내가 슬프거나 울컥한 진실 된 마음이 잠시라도 보이면,
감정적으로 차단하고 회피했다.


그래서였을까.
늘 나의 연애는, ‘내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되는 일’이었다.
익숙한 패턴처럼,
마음을 줄 때는 조심스럽게.

그들은 어차피 언제든 날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이젠 나도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맞추고,
흔들리는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나의 자리에서, 나의 속도로,'나의 중심'을 붙잡고 싶었다.


이건 방어기제이자 생존본능이었다.


인생의 접시는 ‘갑자기’ 깨진다.
예고도 없이, 준비도 없이.
내겐 그런 순간이 이미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새로운 관계는 더 이상 반갑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나는 그들 스스로가 떠나가길 바라며,

일부러 나의 상처를 고백하곤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우울증(MDD), 그리고 그 원인.

그건 누가 봐도 무거운 이야기였고,
때로는 감정적 부담이었겠지만

나는 그것이 테스트도, 자폭도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연애에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상처받을 여유'도, '회복할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의 백지는

이미 여러 무거운 일들로 빼곡하게 적혀있는
더 이상 백지가 아니었으며, 그 종이는 눈물에 젖어 너무 무거웠다.


'백지장은 백지여야 맞들면 낫다'고 했는데
내 종이는 함께 들자고 말하기에도 미안한 무게였다.

나 혼자도 들고 있기 버겁고 힘겹고 조심스러운데,
함께들다 찢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려면,
그 사람도 나처럼
‘이미 여러 번 출발선에서 뛰어본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연애의 시작이라는 '모든 것이 좋아보이는 그 감정'과 시점에서는

맨 마음으로 용감하게 또 다시
상대방의 무게까지 짊어진 채 출발선을 뛰게 될 테니까.

그 무게를 상대방에도 함께 지게 할 수는 없었다.

나 조차 이 모든 과정이 벅차고 힘겨웠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여유가 그때의 나에겐 없었다.

어쩌면 2025년 지금도 마찬가지 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요즘의 나는 언제든, 어떻게 사라져버리고 싶은 순간이

더욱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의 백지는 이미 너무 많은 글들로 빼곡하고,

눈물들로 얼룩지고 무거워져서

함께 들자고 건네는 순간,
그 종이마저 찢어져버릴까봐 여전히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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