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3일 상실에 대한 것들
우울증을 얻으며, 증상이 심해지자
엉뚱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나의 죽음 이후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상상이었다.
조문 오는 조문객의 모습은 어떨지에 대한 상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날도 나는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응급실 대기 인원이 많아서,
그 분들속에 앉아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고 싶지 않아서 이 곳에 와있는데,
너무 아프다고, 제발 빨리 좀 치료해달라고,
아이고 아프다. 빨리 좀 살려달라 ! 라며,
새치기까지 하시며 들어가시는 지긋이 나이드신 분을 보니
더 혼란스러웠다. 이 곳에 줄 서 있는 내가 죄스럽기까지 했다. "
"살고 싶은 사람들 속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란"
접수 후 대기 인원이 많아서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밖으로 나갔다.
바로 옆은 장례식장이었다.
이름 모를 타인의 장례식장 앞에 앉아있게 되었다.
조화를 보며, 조문객을 보며, 조문객을 맞이하는 상주를 보며.
한 사람의 죽음과 삶에 대해 돌아가신 분의 삶이 어땠을지가
대충은 짐작이 되었다.
조문객들과 상주들은 생각보다 태연하고 많이 슬퍼하지 않았다.
조문을 와준 조문객에게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서 양 손을 흔들어주는 상주도 계셨다.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경험했다.
하지만,
파티가 끝나면 몰려오는 그 허무함처럼
집으로 돌아갔을 때
원래 있어야 할 그 사람의 자리가,
그 상대의 자리가 빈 자리로 없을 때의 그 마음과
‘밥 먹자’라고 불렀을 때 나와야 할 사람이 나오지 않고,
돌아와야 할 대답이 없을 때의 그 침묵이
아마도 더 슬플 것이라는 것은 분명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러지 않는 것을 연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내가 정말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슬퍼하거나,
내 존재가 사라진 것에 대하여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