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폴레 샌드위치 언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한국 사람들은 유독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면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로 인사를 나누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다음에 식사 같이 하시죠”로 마음을 건넨다.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골 먹었다'고 하고,
챔피언이 된 선수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라고 외친다.
‘먹다’라는 말이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故 이어령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나의 고단하고 힘든 시절에
새롭게 배운 다양한 따뜻한 언어들이 있었는데
바로 ‘밥 먹자’ 였다.
" oo 아, 밥 먹자.”
“ 밥은 먹었어?”
“ 밥은 꼭 먹어야지. 밥 먹자.”
하이힐을 신고 지하철에서 전력질주하며
인파에 밀려 겨우 내 발로 스스로 내린 적도 몇 번 없던 내게,
이 짧은 말 몇 마디는
어느 날은 울컥하게 만들었고, 또 어떤 날엔 고마운 위로가 되었다.
사건 이후 직장에서의 나의 생활은 수군거리는 사람들과
내가 등장하면 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로 인해
직원식당을 가기가 어려워졌다.
"눈물 젖은 빵"이라는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내가 그런 눈물 젖은 빵을 먹게 될지는 몰랐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식당에 가기 어려웠다.
내가 등장하면 수군대는 사람들 속에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었고,
불편한 이야기들과 눈치가 보이는 상황에서
먹먹한 마음을 채우려는 듯 볼이 터질 듯 한 입 가득 넣고,
슬픔을 그렇게 먹먹하게 꿀꺽 삼켜야 할
아무렇지도 않은 식사를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날 부터는 식권으로
회사 1층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구매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난 후
나는 다양한 종류의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매번 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샌드위치를 구매해야 하는 나의 깊은 사정을 알지 못하는 카페 직원들께서는
나를 ‘치폴레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직원으로 알고 있었다.
자주 가다 보니 나는 어느새
‘치폴레 샌드위치 언니’가 되어 있었다.
“치폴레 샌드위치랑 스프라이트 맞으시죠?”
점심시간의 붐비는 틈 속에서도, 직원은 내 주문을 기억하고
“10~15분 뒤에 오시면 바로 드릴게요”라고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 샌드위치를 사는 일조차도 괴로웠다.
불 꺼진 사무실에서 처량하게 혼자 먹는 샌드위치는 유난히 차가웠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점심을 먹지 않고,
점심시간에 미리 주문한 샌드위치를 퇴근길에 픽업했다.
그리고 그 샌드위치는
어느 날은 늘 배고파하던 대학원 동료들에게 나눠주었고,
어느 날은 집 냉장고에 그대로 넣어뒀다.
어느날 어머니는 이렇게 잔소리를 하셨다.
“아니 가뜩이나 냉장고도 복잡하고
가득찬데 이 샌드위치는 도대체 어디서 왜 가져오는거니?” 라는 말과 함께..
사실 너무 배고픈 매일이었는데,
매일 점심시간 불 꺼진 사무실에서
차가운 치폴레 샌드위치를 먹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며칠씩 쌓여있는
냉장고 속 차가운 치폴레 샌드위치는
어머니의 잔소리로.. 저 말은 하지 못한 채
목이 메여오는 울음을 삼키며. 내 방에서 방문을 닫고 홀로 억지로 먹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눈물 젖은 빵'의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