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에게서 가장 먼 거리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가장 먼 거리를 느낀 날이 있었다.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홀로 우산도 없는 폭우를 경험하며
의도하지 않은 그런 날들이 잦아졌다.
조금더 비약하자면
Netflix 보다 내 인생이 더 버라이어티해서
그런 것들을 볼 시간이 없었다.
지금의 내 삶 자체가 너무나 버라이어티하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내 나름대로
나는 내가 너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플때도
직장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날엔
화장실에서 변기물을 여러 번 내리며
실컷 울다 눈물을 닦고 나와서
태연하게 또 웃었다.
웃고 웃었다.
그런 날들을 반복했었다.
끔찍한 시간들 속에서 그 날들을 반복했다.
그 반복은 직장 뿐 아니라
집에서도 반복했다.
방에서 하염없이 조용히 울었다.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울었다.
그래도 안되는 날은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러닝크루라는 신생어가 생기기 전에
내가 우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밖에서 흐느끼며 뛰고 또 뛰었다.
왕복 2시간을 그렇게 뛰고 울었다.
숨이 가빠져서 어쩔 수 없이 깊이 내쉬는 한숨은
살기위한 한숨이었고,
속이 터져나갈 것 같은 나의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한 숨 이었다.
내가 가장 아프고 힘들 때, 부모님은 어느날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 때문에 온 가족이 우울해졌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래? 우리도 너때문에 온 가족이 우울증 걸리겠다."
라는 말을 내게 남겼다.
그 한마디는
다른 어떤 상황보다도 나를 깊이 고립시켰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여전히 혼란스럽다.
부모님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것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고립되고
그렇게 더 침묵하고
그렇게 더 말을 아끼게 되고
그렇게 더 혼자가 되고
그렇게 더 고립되고 침잠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혼란스러웠다.
아, 가족이라고, 부모라고 모두 다 나의 편이 아니구나
그 사실을 깨닫게 되고는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마음 아픈날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사라져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도 있겠구나_ 라고....
여전히
아직도
지금도
그 갈등에 오늘하루도 고민하고 있다.
뫼비우스의 띄 같은 하루를
이렇게 또 보낸다.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과연
나에게도, 우리가족에게도 과연 해피엔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