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독후감 #6 : 사랑을 몰랐던 여인 -할머니 편-

받지 못한 사랑, 주지 못한 사랑

by ClaireH

1. 어린 시절, 드라마 같은 시작


내가 들은 그녀의 첫 장면은,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으로 시집을 온 순간이었다.

동네에서 잘 사는 집안으로 시집을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곧 새 시어머니가 들어오면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 새 시어머니는 본처의 자식을 못살게 굴었고, 결국 집을 떠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녀의 시아버지까지 병이 들어 집안은 새 시어머니 손에 넘어가 버렸다.


비련의 드라마 주인공 같은 이야기였다. 그 여자가 바로, 나의 친할머니였다.


2. 그녀가 남긴 그림자


어린 나이에 남편도 아닌 정략결혼으로 시집을 와서 시집살이까지 겪었던 그녀는, 그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우리 엄마에게도 전했다.

내 기억 속에서도 할머니는 늘 날카로웠다.


어렸을 때, 고속도로 갓길에서 화가 나 자갈을 발로 차며 할머니에게 덤빈 기억이 있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맞선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장녀였기 때문이다. 울기만 해도 시끄럽다고 타박했고, 이름도 남자 이름으로 지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에는 아들이 태어나야 하니까.”


그렇게 나는 남자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3. 콤플렉스


늘 제사 음식은 엄마 몫이었다,

늘 엄마 혼자서 주방에 남아 제사 음식을

차리곤 있었다. 큰 어머니는 둘째 아기를 돌본다는 이유로 자주 비우셨거나 , 종종 방문조차 하시지 않으셨다.

할머닌 엄마가 직장생활로 바쁘게 되어 육아를 부탁해도 손주인 우리들을 돌봐주지 않았다. 하지만 고모가 아들을 낳자 할머니는 빠짐없이 조카들을 돌봐주러 다니시곤 하셨다.


어느 날,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밥을 먹다가 내 눈이 마음에 안 드신다며,


“성형외과 가서 눈 좀 고쳐라. 눈이 왜 이렇게 못생겼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여름방학에 쌍꺼풀 수술을 하게 되었다. (상처는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땡큐 할미!)


4. 이민 전후, 더 날카로워진 시선


이민을 결정하고 아빠가 기러기 아빠가 되면서, 한국에 방문 때마다 할머니 집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아빠에게 일일이 보고를 했다.

화장실 변기에 휴지 버린 일, 한번 쓴 수건을 빨래통에 넣은 일, 화장을 한 일, 술을 마신 일, 늦게 들어온 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잔소리와 감시였다.


나는 그 스트레스를 아빠에게 쏟아냈고, 결국 할머니에게 까지 닿았다. 그 결과는 반은 성공적 이였다.


5. 마지막 사건


시간이 흘러 내가 첫 아이를 낳아 한국에 갔을 때, 할머니에게 예쁨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 예쁘네” 한마디에 감사했다.


큰 사건은 사촌 동생이 방황하던 시절 찾아왔다. 밤늦게 할머니 집에 있던 사촌에게 할머니가 큰소리로 잔소리를 하던 중, 엄마가 걱정스레 몇 마디 물었는데 할머니는 오히려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러면 얘 자살해! 자살하면 어쩔 거야?!”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자살이라뇨? 할머니, 그게 지금 하실 말이에요?!”


그날 밤의 소동은 충격이었고,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나간 부모님은 오피스텔을 구해 할머니 몰래 우리 세 식구 그 집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그게 내가 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많이 원망하며 지냈었다.

늘 그녀는 화를 내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엄마와 나를

향해 비수 꽂은 말들을 많이 했다.

엄마는 그런 그녀를 감당하기 조차 힘드셨다.

그런 엄마를 보여 나도 당연히 그녀에게 좋은 감정을

갖기란 힘들었을 것 같다.

그녀를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솔직히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조부모님의 사랑이 없어서 크게 내 삶에 문제가 되고

사랑을 덜 받아서 부족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 이유도 없이 존재만으로도 미움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 일찍 알게 되었고,

어릴 적 내 추억 속에 그녀가 마녀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자리 잡혔던 것에 그저 아쉬움이 따를 뿐이다.


아쉽다 혹시라도 그녀는 사랑 주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닐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주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6. 그녀에게 전하지 못한 말


할머니, 다음 생에는 제 손녀로 태어나 주세요.

아니면 제 자식으로요.

당신은 사랑을 받지 못해 주는 법을 몰랐을 뿐,

당신의 세월이 야속합니다.

저는 당신을 탓하지 않습니다.

다시 만난다면 제가 그 사랑, 가득 드릴게요.


-오늘의 교훈-


사랑하지 못했던 시절을 ,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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