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1. 자유와 방종 사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휴, 철없다.’ 였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에 들었던 생각은 ‘부러워 죽겠네.’ 였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숭배했다. 어려서부터 확고한 꿈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버텨내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예인들이 그랬고, 어딘가 한가로워 보이는 브이로그 속 액세서리 제작자들이 그랬고, 어디선가 번뜩이는 영감을 받아 그림이나 음악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들이 그랬다.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서울대생의 기사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 때에도 자신의 뜻을 관철한 그에게 존경심이 들기도 했고, 갑자기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고 뷰티 유튜브를 시작한 후배의 용기에 감탄하기도 했다.
누가 정해두었는지는 몰라도 보통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따르지 않고, 내 삶을 사는 것이 일종의 인생의 모토이지만, 실제로 내가 그렇게 살아본 것은 무계획으로 퇴사를 한 것뿐이었다. 여전히 가족들은 그래서 너 뭐 할거냐며 닦달하고, 나 스스로도 앞으로 뭘 해야겠다는 계획을 조금씩 세워가면서도 ‘쉰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다른 회사를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조급한 불안이 올라오는 와중에 반짝이게 닦여진 길을 벗어나는 여정의 위험성을 점점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양다솔 작가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요란하고 화려한 착장으로 학교와 길거리를 누비고, 설 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있으며, 나처럼 아무런 준비와 계획 없이 회사를 그만 둔 후에는 채소를 키우고 그 채소로 맛있는 밥을 지어먹으며 엄마와 싸우고 엄마를 돌본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작가라고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그의 글은 어쩐지 안정적이다. 절대 좋은 말만 써놓은 것도 아니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눈꼴 시린 과도한 긍정성도 없는데, “이 사람이라면 결국 이러다 잘 먹고 잘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하지 못한 선택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해 버린 작가에게 괜한 질투심으로 나이 먹고 철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하고 싶으면서도, 그게 결국 부러움에 져 버린 못난 내 모습이라는 것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자유란 늦잠을 자거나 폭음을 하고 방탕한 삶을 살며 나와 타인의 안녕을 해치는 제멋대로의 행동이 아닌, 작가와 같이 내가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선택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비난이나 뒷담화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 엄마와 책임
양다솔 작가의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부모님과 가졌던 따뜻한 시간들,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와 다투고 용서하고 이해하려고 하다가도 다시 소리를 지르는, 그럼에도 그 모든 장면이 담긴 책을 어머니에게 헌사하게 하는 마음이 그려져 있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본가를 나올 때 엄마가 그랬다. “너 우리랑 살기 싫어서 일찍 결혼하는 거 아니야?”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어디서 누구랑 무엇을 하는지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이야기해야 주말에 마음 편히 나갈 수 있는 집이 답답했고,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와 찌들어 있을 때 웃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엄마를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을 하고 혼자 집에 들어가다가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어떻게 하루종일 일하다가 아빠가 돈도 많이 못 벌어다 주고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그렇게 맨날 싸우는 집에 가서 집안일도 하고 초등학교도 안 간 우리를 돌본 거야?” 나는 결국 또 다시 엄마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전에 나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던 상담사가 들었다면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요.” 라며 또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를 용서한 것도 아니지만, 어렸을 적 내 성격을 형성한 어떤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만으로 지금 나의 문제를 다 엄마 탓으로 돌릴 수도 없으니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을지 모른다. 내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을 엄마가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 했냐며 울고 서운해 할 엄마가 떠올라 미안하기도 하고, 완전히 지쳐버린 날 나와 조슈아가 함께 저녁을 먹으러 찾아가니 술이 얼근한 채로 “그래도 너희들 보니까 힘이 나네. 너무 좋다~”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던 엄마를 보니 울컥하기도 하고.
엄마는 복잡한 존재다. 나랑 비슷한데 그래서 화가 나거나 안쓰럽기도 하고, 또 나랑 너무 달라서 답답하고 성질이 뻗치는데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내가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양다솔 작가도 그런 듯하다. 나와 우리 엄마의 서사와는 또 다른 그들만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테지만, 엄마는 품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작가는 끊임없이 어머니와 싸우고 화해하고 낄낄대며 놀다가 팩 하고 무시해버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나보다. 그것이 작가가 찾은 엄마와의 관계의 정답인지, 아니면 그도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인 건지, 아니면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결국 내가 누군가와 갈등 한 번 겪지 않고 오래 갈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오래 갈 수밖에 없는 누군가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싸워봐야 하는 것처럼, 작가의 방법을 따라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3. 그래서,
당장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하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조급증과 불안보다는 당장 나를 대접할 수 있는 삶,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쩐지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작가도 알고 있을 테다.
작가는 내가 언급한 부분 외에도 (혹은 그 속에서) 가난이나 폭력과 같은 이야기도 함께 해 주었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적어주었지만, 그것까지 하나씩 다 고민하다 보면 워드 파일의 한도를 채워버릴 것 같아 크게 두 가지 주제로만 일기인지 독후감인지 그냥 넋두리인지 모를 글을 써 보았다. 사실 지금 이것도 한참 내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다가 깜빡 정신을 차리고 내 일기는 다른 폴더에 넣어 놓고 몇 번씩 다시 쓴 것이다.
내가 생각지도 못 한 길을 걸어왔지만, 또 일면에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양다솔 작가에게 오래도록 안녕했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다.
- 일을 안 한다는, 돈을 안 번다는, 직장이 없다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 말고 모든 것이 평안했다. 마치 절벽 위에 텐트를 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고 평화롭고 아찔하고 몹시 아름다웠다. 절벽에서 보이는 절경처럼. (p.18)
- 불교의 법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곳에서 싫은 상대를 만난다면 그는 원수가 아니라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불보살, 즉 은인으로 불렀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습관에 지배받는지 살펴보아야 했다. 내가 행동을 바꿔야 한다면 누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여야 했다.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지?’에서 ‘나는 왜 이 행동을 하고 싶지?’로 질문이 바뀌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렸다. (p.31)
- 맛있고 배부르게 먹고 나면 남은 오후를 버텨낼 힘이 조금 생겼다. 나는 대접을 받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서 말이다. (p.43)
-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기 싫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오로지 ‘살고 싶은 하루’가 있을 뿐이었다. 회사에서의 내 모습을 보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풍요가 우리 집에는 있었다. … 빨래 한 장 개본 적 없고 밥상 한번 차려본 적 없어도 자신의 삶을 멀리 내다보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뻗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내가 한없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p.44~45)
✔ 멀티태스킹이 안 돼, 정성스레 식사를 차릴 때에는 일을 못 하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뚝딱일 때에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냉동실에 가득 채워둔 단백질을 하루에 하나씩 꺼내 끼니를 준비할 때 나는 큰 기쁨을 느끼는데, 네 상황에 집안일만 할 거냐는 책망은 우울하다. 모자란 솜씨로 닭이며 돼지를 손질하고 나물을 다듬는 것도 나의 능력이자 소중한 특기인데 말이다.
- 그러나 나에겐 엄마밖에 없었고, 엄마에겐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대표해서 서로를 증오했다. (p.88)
- 나는 다만, 너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들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죽을 만큼 노력했어. 엄마가 말했다. 나의 가난, 나의 출신성분, 나의 외모, 나의 학력, 내가 당연한 듯 져야 했던 의무들 말이야. 다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정말이지 너로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p.92)
- 비극은 쉬웠다. 비극은 이야기 자체가 아닌 앵글에 있었다. (p.109)
- 어쨌든 나의 실존에 대해 나만큼 관심이 있는 존재가 어디엔가 있다는 것, 주저앉아 뽁뽁이를 붙이는 긴 시간을 자랑처럼 늘어놓고 칭찬받을 데가 있는 것으로 괜찮았다. (p.179)
- 우리는 세상의 무수한 것을 스쳐 가지만 그중에 아주 일부만 몸에 담는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많은 선택과 구분이 진행되어왔다. 그런데 또 그것은 어느 날 우습게 바뀔 수도 있었다. 푸념처럼 뱉어버린 선언과 함께, 지금까지의 생과는 전혀 다른 오늘을 살아볼 수도 있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오늘을 열어볼 수 있었다. 여전히, 새로운 삶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내 입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도 매일매일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우리는 더 멀리 유랑하고 있었다. (p.220~221)
- 우리의 언어에는 주어와 목적어만 있었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담기에는 너무나 작고 투박한 그릇이었다. 그들이 특별히 못되어서가 아니었다. 언어는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른 언어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칭찬을 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는데, 그런 날이면 나는 울고 말았다. 나를 평생 알아온 사람들이 마치 나를 처음 만난 사람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p.231)
- 어쩌면 지금을 비롯한 많은 순간에 나는 진짜로 머무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p.289)
- 요즘 같은 시대에도 하루종일 연락이 오지 않는 날이 나에게는 종종 있다.
그런 날이면 마치 손님 없는 가게의 주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보니 어떤 작은 가게의 주인이었는데, 하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더럽게도 손님이 없는 가게였던 것이다. 그래서 장사를 접어야 하나 고민할 때쯤 한번씩 손님이 미친 듯이 몰려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게 되는 것이다. 손님이 없는 작은 가게. 아무런 부사 없이도 그 문장은 나에게 매우 쓸쓸하게 들린다. (p.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