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 프레드릭 배크만
◆ 줄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삶의 대부분의 것들은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퉁명스러운 오베는 일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신도 자살을 하려고 준비한다. 하지만 자식뻘의 쾌활하고 쉽게 흥분하는 이란 임산부 파르바네와 그 가족이 옆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오베의 계획들이 무너진다. 파르바네의 가족은 물론, 오래도록 단절한 채 지내왔던 이웃 아니타와 루네, 그리고 길고양이를 도우며 오베의 자살은 계속 미뤄진다. 이들과의 관계에서 점차 마음을 열고 따뜻해진 오베가 처음으로 자살을 할 수 있는 때가 온 순간, 오베는 강도의 공격을 받아 죽을 위기를 넘긴다. 마음을 다잡은 오베는 이후 약 4년을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다 조용한 죽음을 맞는다.
◆ 상실을 통한 세계의 확장
사실 처음 몇 장을 읽고는 “그만 읽을까,” 라는 고민을 했다. 그래서 이번 완독도 한 세 번쯤 시도한 후에 한 것이었다. 초반에 나오는 오베의 완고하고 불친절한 모습에 내 마음까지 애플 스토어의 직원이 된 듯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젯밤 소설을 다 읽은 후, 이 책이 책장에 몇 년이나 꽂혀 있었음에도 읽지 않았던 나를 원망했다.
죽음과 관련한 글을 쓸 때 내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나의 죽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다. 그 상실감이 너무 두려워 나는 죽음이라는 이미지나 단어만 봐도 숨이 막혀 올 때가 있다. 처음 오베의 아내의 죽음을 공시하였을 때, 한동안 그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이후에도 오베가 아내에게 “보고싶어.”라고 속삭이는 순간마다, 소냐의 묘석이 책의 거친 종이에 묻어있기라도 한 듯 그 네 글자를 자꾸 쓰다듬고는 했다.
오베에게 소냐는 세상에 색깔을 가져온 존재였다. 삶을 일깨우고, 사랑을 일깨우고, 책과 노래와 오베가 알지 못했던 모든 세계를 가져온 존재였다. 오베는 소냐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쉼없이 중얼거리면서도 결국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소냐는 그저 그의 삶이었다. 그가 경험하는 모든 일상과 감각은 소냐와 함께 공유하기 위함이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오베가 싸울 때 외에는 말이 없는 무뚝뚝한 이라고 했겠지만, 소냐의 옆에서 오베는 쉼없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 조잘거리는 다섯 살 아이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 소냐가 떠나고 오베가 자살을 생각한 것도 어쩌면 오베에게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세계는 끝났으니까. 끝나버린 세계를 살아갈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서 오베는 파르바네의 출현을 일종의 방해요소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국에 그는 소냐에게 불평하던 옆집의 뚱보 지미의 도움을 받고,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불량 청소년 아드리안과 미르사드의 삶을 보살피고, 수년 간 발길을 끊었던 루네를 미소짓게 만들고, 주차요금 1크로나를 내지 못하겠다고 호통을 치면서도 옆집 아이에게 “제일 좋은” 아이패드를 줘야 한다며 8천 크로나를 넘게 지불하며, 그의 손에 머리를 기댄 고양이 옆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파르바네의 좋게 보면 구김없는 관심, 나쁘게 보면 무개념한 오지랖에서 기인했다.
쉽게 생각하자면 소냐가 파르바네를 보낸 것이 아니냐, 소냐가 고양이로 환생한 게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만, 소냐의 존재를 그런 영적인 설명으로 붙잡아 두고 싶지는 않다. 그녀는 죽었고, 그녀가 오베에게 미칠 수 있는 직접적인 영향은 그 순간 끝났다. 대신 오베는 소냐의 상실로 인해 변화할 수 있었다. 소냐가 있을 때 오베의 세계는 소냐 그 자체였고, 마을에 함께 사는 ‘타인’과의 관계는 대부분 소냐를 통해 이루어졌다. 소냐의 아픔을 위해 울 수 없었던 오베는 화를 내는 것밖에 할 수 었었고, 혼자 하얀 셔츠를 입은 이들과 싸워야만 했다. 소냐가 사라진 후에 오베의 세계는 오베의 것이 되었다. 타인이 아닌 ‘이웃’과의 소통을 직접 해나가야 했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그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회사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어디에든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냐를 위해 울 수 없었던 오베는 고통과 괴로움을 민원과 분노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쓰다듬어 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이의 상실 후에 혼자 살아나갈 자신이 없지만, 그의 상실로 인해 내가 주변시야로만 곁눈질했던 세계를 직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믿어야 할 것 같다.
어젯밤에는 낮에 마신 커피 때문인지, 낮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잠이 오지 않아 조슈아를 먼저 재우고 이 책을 마저 읽었다. 잠깐만 보다가 덮으려고 했는데 작가의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고 위트 있는 문장 때문에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침대로 가 조슈아의 잠든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내가 안기면 내 콧구멍이 조슈아의 가슴에 파묻혀 숨쉬기가 힘들어, 잠자리에서는 그렇게 진하게 안을 때가 거의 없는데, 인상을 팍 쓰고 잠든 조슈아를 바라보려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안기면 팔을 들어 날 안아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조슈아는 제 몸통을 껴안은 내 팔을 일종의 구조물처럼 그 위에 팔을 올려놓은 채 계속 쿨쿨 잠들어 있었다. (예전에는 잠결에도 나를 안아줬었는데, 이제 내 존재만으로는 그의 렘수면을 이끌 수 없나보다.) 눈을 감고 조슈아의 심장 소리를 한참 듣다가, 팔이 저려서 결국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소처럼 등을 돌려 누워 자세를 잡고는, 이 책의 주제가 상실 후의 삶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먼저 순수한 사랑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봐. (p.55)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p.57)
→ 오베에게 아내는 그의 색깔이었다. 오베의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당신의 단어였다. 오베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고집과 함께 사랑을 배웠다.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p.83)
▷“날 속이면 안 돼요, 여보.” 그녀가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커다란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p.153)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단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화창한 오후. 이제 막 꽃들이 만개한 정원의 향기. 카페에서 보내는 일요일. 어쩌면 손자들. 사람은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소냐가 곁을 떠났을 때 오베 또한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걸 멈췄을 뿐이었다.
슬픔이란 이상한 것이다. (p.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