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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립 Feb 23. 2022

철학 여행을 위한 티켓 발권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어렸을 때 집에 『돼지가 철학에 빠진 날』이라는 책이 있었다. 돼지도 읽을 수 있는 철학이라는 컨셉으로 나온 철학 입문서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듯하다. 초등학교 때 멋도 모르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몇 페이지 보고 내려놓았고, 중학교 때도 책장을 폈다가 초등학교 때보다는 몇 페이지 더 읽고 내려놓았다. 이후로도 꽤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고, 어린 내 기억으로도 여러 철학 이론을 상당히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항상 멈춘 곳은 플라톤의 이데아였고, 나는 고대 그리스 이후로 성장하지 못한 철학적 사고 속에서 자라왔다. 이후 대학에서 철학 입문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재미있기로 유명한 교수님의 수업은 당연히 내가 미처 신청을 누르기도 전에 마감이 되어 버렸다. 남은 교수님들은 재미도 없지만, 과제도 많고, 성적도 짜게 준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실 웬만하면 성적을 어떻게 주느니, 수업 방식이 어떻느니 등과 상관없이 과목 이름만 맘에 들면 수업을 듣곤 했기 때문에 들으려면 충분히 들을 수 있었지만, ‘철학 입문’이란 나에게 그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않았나보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상식처럼 이야기하는 데카르트의 정반합이라든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지순한 관계와 같은 철학적 지식과 가십에 무지하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에게 없거나 부족한 것을 열망한다고, 나도 나의 철학적 무지를 깨닫는 순간마다 “나도 이제 철학 공부할거야!” 라는 다짐을 했더랬다. 다만 철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는 정말 감이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려고 프로이트의 저작을 모조리 읽어보았지만,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채로 나는 프로이트가 써 놓은 변태 같은 설명에만 집중했을 뿐이었다. 내가 들어본 철학자만 해도 수십 명이며, 그 한 명 한 명이 한 권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을 수없이 써냈는데, 그걸 내가 다 씹어먹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매해 ‘철학 공부’를 올해의 목표로 세워두고, 연말이면 내년 목표로 미루곤 했다. 그러던 중 서점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보았다.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었고, 대충 펼쳐 보았을 때 나쁘지 않은 느낌이어서 적어두었는데, 알고 보니 베스트셀러였다. 또 그 와중에 리커버로 너무 귀여운 책이 나와버리니, 새해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선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와, 내가 ‘500페이지’ 짜리의 ‘철학’ 책을 다 읽다니!” 였다. 그리고 두꺼운 철학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작가의 입담 덕이었다. 철학이라는 고고해 보이는 영역을 마치 에세이 쓰듯 가볍게 풀어놓고,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딸이나 반려견을 통해 설명해 주기도 하며, 마치 정말 한 학문에 심취한 (긍정적 의미의) 오타쿠가 옆에 앉아, “야, 이거 진짜 재밌지 않아? 이게 이렇게 되는 건데 말이야, 이야, 이걸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냐?” 라며 수다를 떠는 듯하다. 심지어 피식거리는 웃음이 나오는 지점도 있으니,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조슈아는 내 작은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얘가 철학 책을 읽는 게 맞나, 하는 표정으로 날 돌아보기도 했다.


사실 아무리 쉽게 풀어내도 철학은 철학이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나 광활한 우주 속 인간의 존재를 고찰하는 것은 머리 아픈 일이다. 책을 읽으며 와닿는 문장에 줄을 쳐 놓았는데, 500페이지를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니 이 문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이 사상가의 중심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도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국 하나씩 다시 따라 적고, 무엇을 설명하다 이런 멋진 문장이 나왔는지 앞뒤를 다시 읽느라 오히려 이제야 진이 빠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마치 격렬한 운동 뒤에 땀을 흘리며 느끼는 쾌락처럼 즐거운 기분이 드는 것은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채로 넘어가며 ‘사고’라는 측면에서 참으로 대충 살아왔던 내가 무언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실제로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하품하는 내 모습이 뻔히 보이면서도 이 사상가의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며 독서 목록에 하나씩 적어넣는다는 것이 새해에는 조금이나마 달라진 나를 보는 듯해서일 것이다.


저자가 소개한 철학 혹은 사상가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해보자면, 나는 아마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에 대하여 그 피해자(?)를 인터뷰한다고 하면 인터뷰어가 가장 맘에 들어 할 인터뷰이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 생각의 근거가 될 자료를 조사하고, 고민하고, 내가 판단하기에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순간의 감정으로 대부분의 것을 결정한다. 대학도, 전공도, 대학원 진학도, 취업도, 퇴사도 언제 결정할지를 정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었지만, 결정 자체는 항상 순식간이다. 나는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질문을 하지 않는 편이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없으니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깊숙이 처리하지 못하고 따라서 나에게 들어온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정보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청소년기부터 대학원 때까지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은 언제나 “질문 있는 사람?” 이라며 선생님이 나를 바라볼 때였다.


이런 내 모습을 소크라테스가 봤다면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소로가 옆에서 동조했을 것이며, 보부아르와 몽테뉴가 함께 손가락질 했을 것이다. 나이를 먹고,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지금까지는 상상한 적도 없던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나는 고찰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지금까지는 깊은 고민 없이 되는대로 선택한 길들이 나쁘지 않게 풀려 왔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까지는 누군가가 시키는 무언가를 해 왔으나, 깊이 생각하기 싫어하면서도 또 내 곤조는 지켜야 하는 제멋대로의 성질머리 때문에 내 맘대로 사는 삶을 살겠다며 뛰쳐 나왔으니, 이제는 더더욱 수없이 많은 질문과 생각을 해야 할 시점이다. 대신 그들이 말한 것처럼 서두르지 않겠다. 어찌 보면 뒤처진 만큼 조급증이 들 수도 있지만, 내일보다 더 일찍 시작한 것이니 나는 지금까지 모른 척해 왔던 나를 이해하고자,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 길을 닦고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와 내가 배울 이들에게 질문을 하겠다.


또한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고통을 예상했을 때 우리의 삶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조금 더 안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으며, 그 순간순간의 작고 사소한 것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삶을 영원히 되풀이하더라도 나의 고통과 기쁨을 만끽하며 그 모든 순간을 소중히 다루게 되고, 그로써 나의 불안과 고통을 잠재우고 더 쾌락적인 삶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여러 사상가를 설명하며 그들 간의 어떤 이론적인 충돌이 있을 때도 있으니, 그들의 말에 의해서만 나의 삶의 태도나 방향을 정하기란 쉽지 않다. 또 그러한 결정의 방식을 그들이 기꺼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사려 깊은 책들을 보며 그랬듯이, 이들의 이야기 역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하나의 조언이자 충고로서 받아들이고 ‘나’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것이 조금 더 바람직한 방법이겠지. 이 결론을 내리면서도 ‘하지만 생각은 귀찮은걸...’ 이라는 생각부터 떠올리는 나지만, 요만큼씩이라도 나아가고자 한다면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또 인간일 것이다.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마르쿠스의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타고난 비관주의를 억누르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이었다. (p.30)

- “아침에 잠에서 깨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 오늘 네가 만날 사람들은 주제넘고 배은망덕하고 오만하고 시샘이 많고 무례할 것이다.”

마르쿠스는 골치 아픈 사람에게서 영향력을 빼앗으라고 제안한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자격을 빼앗을 것. 다른 사람은 나를 해칠 수 없다. (p.35)


2. 소크라테스

-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p.43)

- 모든 질문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외침이다. (p.49)

- 좋은 철학은 느린 철학이다. (p.57)

- 철학도 분명 도착지에 관심이 있지만, 여행을 서두르지 않을 뿐이다. (p.69)

- 좋은 질문은 그렇다. 사람을 단단히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프레임을 다시 짜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해답을 차게 할 뿐만 아니라 해답을 찾는 행위 그 자체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좋은 질문은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침묵을 끌어내기도 한다. (p.71)


3. 장 자크 루소

- 걷는 데에는 인류 문명의 인위적 요소가 전혀 필요치 않다. 가축도, 사륜마차도, 길도 필요 없다. 산책자는 자유롭고,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다. 순수한 자기 사랑이다. (p.91)

- 상상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p.99)


4. 데이비드 소로

- 가끔 우리는 의미를 너무 빨리 창출한다. 어쩌면 머그컵처럼 보이는 저 물체는 완전히 다른 것일 수 있다. 물건과 사람을 너무 빨리 정의 내리면 그것들의 유일무이함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소로는 그러한 경향을 경계했다. “보편 법칙을 너무 성급하게 끌어내지 말 것.” 소로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특수한 사례를 더 명확하게 들여다볼 것.” 눈앞에 보이는 것을 바로 규정하지 않고 기다리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p.120)

- 무엇인가가 진정으로 목격되려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바라봐져야만 한다. … “관찰이 흥미로워지려면, 즉 중요한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주관적이어야 한다.” (p.121)

-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p.128)

- 얄팍한 것은 깊이가 부족한 것이다. 피상적인 것은 깊이가 분산된 것이다. 무한한 세상에서는 자신의 몫이 얇지만 매우 넓게 퍼져 나간다. (p.137)

- 우리는 응시할 때보다 훑어볼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p.138)


5. 쇼펜하우어

- 관념론자들은 세계는 존재하지만 우리 정신의 구성물로서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때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우리의 인식 능력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p.154~155)

- 오늘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 관계는 끊임없는 궤도 수정을 요하며, 매우 노련한 조종사조차 가끔씩 가시에 찔린다. (p.162)

- 이 세계는 실제로 고통이자 엄청난 오류이지만, 그 고통이 일시적으로 유예될 때가 있다. 짧은 즐거움의 순간들. (p.163)

- 진정한 듣기를 위해서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 음악은 감정을 전달하지 않는다. 음악은 감정의 본질을, 내용 없는 그릇을 전달한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구체적인 슬픔이나 구체적인 즐거움이 아닌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와 즐거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느낀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감정에서 추출한 정수”라고 표현한다. (p.169)

- “가장 최근에 쓰인 것이 늘 더 정확하다는 생각, 나중에 쓰인 것이 전에 쓰인 것보다 더 개선된 것이라는 생각, 모든 변화는 곧 진보라는 생각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 (p.178)

-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 “책은 자기 생각이 고갈되었을 때만 읽어야 한다.” …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p.179)


6. 에피쿠로스

-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p.197)

- 우리는 산더미처럼 쌓인 고통 맨 위에 사소한 즐거움을 올려놓고는 왜 행복하지 않은지 궁금해한다. (p.198)

- 좋은 것이 주어지면 즐긴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 나서지는 않는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 나타나길 기대하지 않는 사람 앞에 나타난다. … 그 물건들은 그저 우연히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물건이 생기면 롭은 감사해한다. (p.204)

- “난 충분히 좋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봐요. 이런 것들이 삶에서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게 해줘요. 게다가 충분한 걸로는 부족한 사람에게는 뭐든 충분하지 않을 걸요.” … 우리는 얼마큼이어야 충분한지를 모른다.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p.213)


7. 시몬 베유

-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은 삶의 속도와 반비례하여 줄어든다. (p.219)

- 베유에게 관심은 용기나 정의와 다르지 않은, 똑같이 사심 없는 동기가 요구되는 미덕이었다. (p.227)

- 진정한 관심이라면 그저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인정하고 공경해야 한다. (p.229)

- 우리가 종종 너무 서둘러 판단을 내리듯이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는 데도 너무 성급하다. 어떤 대상이나 생각에 너무 빨리 혹하고, 그 대가를 치른다. … 그래서 베유는 알지 못하는 상태, 생각하지 않는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p.235)

- 나는 집중하고 있었지만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다. 나는 발견하기도 전에 내가 무엇을 찾는지 알았다. 나 자신의 욕망에 몰두해 있었다. 그건 언제나 위험하다. (p.237)

- 관심은 질보다 양을 파악하기가 더 쉽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가장 쉬운 것을 평가한다. (p.247)


8. 간디

-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싸우느냐가 중요하다. (p.261)

- “네겐 노력할 권리가 있지만, 반드시 그 노력의 결실을 취할 권리는 없다. 절대로 보상받기 위해 행동에 나서지 말 것이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 《바가바드기타》는 노력과 결과를 분리하라고 가르친다. 모든 시도에는 100퍼센트의 노력을, 그 결과에는 정확히 0퍼센트의 노력만을 기울일 것. (p.279~280)

- “불순한 수단은 불순한 결과를 낳는다. 정확히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법이다.” (p.285)

- 간디가 말한 깨끗한 생각은 “베일을 쓴 폭력”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의미했다. 어떤 사람 앞에서 평화롭게 행동하더라도 그 밑에 폭력적인 생각이 깔려 있으면 그것은 깨끗한 게 아니다. … “그 누구에게도 성질을 내지 말 것.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p.293)

- “끝난 것처럼 보이는 논쟁이 어쩌면 그저 다른 갈등 상황의 시작일 수도 있다.” (p.294)

- 갈등의 양측은 전체 파이가 아닌 진실의 일부만을 지닌다. 파이의 조각을 거래하는 것보다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p.297)


9. 공자

- 공자는 변함없는 헌신을 요구하지만 생각 없는 헌신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연로한 부모가 도를 벗어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모를 되돌려놓아야 하지만 그럴 때에는 사려 깊고 공손해야 한다. 효는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p.314)

- 이 세상에는 반사적인 친절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인 친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하다. (p.323)


10. 세이 쇼나곤

- 가끔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움직일 것.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할 것. 일단 붓을 들고 붓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볼 것. (p.337)

- 평범한 즐거움과 달리 진정한 기쁨에는 놀라움, 예상치 못한 전율이 있다. 또한 진정한 기쁨은 평범한 즐거움과 달리 쓰디쓴 뒷맛을 남기지 않는다. 진정한 기쁨은 오는 줄도 몰랐던 것이기에 사라져도 그립지 않다. … 쇼나곤이 진정한 기쁨이라 선언하는 것은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알맞아야 한다. 분위기와 계절에 어울려야 한다. 본질에 들어맞아야 한다. (p.339)

- 쇼나곤은 삶이 수만 가지 작은 기쁨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p.340)

-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린다. (p.341)

- 편리함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 즉 ‘편리세’가 있으며, 잃어버린 친밀함과 박탈당한 아름다움이 바로 그 비용이다.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우리는 기꺼이 편리세를 지불한다. (p.346)


11. 니체

-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난 후에야 과거를 돌이켜보며 서사를 매끄럽게 다듬고 패턴과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지그재그다. 여백도 있다. 과거의 자신을 막 모습을 드러낸 미래의 자신과 갈라주는 텍스트 사이의 빈 공간. 이 여백은 무언가가 누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백은 무언의 과도기이며, 우리 삶의 흐름이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다. (p.372)

- 나는 늘 철학이 명백한 근거와 냉정한 논리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 니체는 그 믿음을 분쇄해버린다. 충동과 비이성을 조용하게 찬양하는 목소리가 책 속에 스며 있다. 니체에게 감정은 방해가 되는 것도, 논리로 향하는 길의 우회로도 아니다. 감정은 목적지다. 고결한 사람은 비이성적이며, 누구보다 가장 숭고한 사람은 “자신의 충동 앞에 굴복하며, 최고의 순간에 그의 이성은 완전히 소멸된다.” (p.376)

- 영원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다. 만약 모든 것이 무한히 되풀이된다면, 인생에 가벼운 순간이나 사소한 순간은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모든 순간이 동일한 무게와 질량을 갖는다. “모든 행동은 똑같이 크고 작다.” (p.382)

- “내 삶의 그 어떤 것도 내게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들을 되풀이하고 싶게 만들진 못해.” (p.384)

-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무엇을 고통스러워하는가는 우리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p.384~385)

- 성공의 모습은 자기 운명을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공의 모습은 시시포스의 행복이다. (p.386)


12. 에픽테토스 (스토아철학)

- “바람에 수없이 시달리지 않은 나무는 땅에 튼튼하게 뿌리박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고난은 덕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다.” (p.401)

- 대부분이 자기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 이처럼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과 성과를 “무관한 것”이라 칭한다. 이런 무관한 것들은 우리의 인성이나 행복에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p.404)

-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다.” (p.409)

- 우리 생각과 행동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듯 우리 감정에 대한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감정은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결과이며, 이 판단은 틀린 경우가 많다. (p.410)

- 당연히 로렌스는 고통을 느꼈지만 그 고통은 날것의 감각, 반사적 반응에 그쳤다. 이 반응은 본격적인 감정으로 발달하지 않았다. 로렌스는 말 그대로 고통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몸이 경험한 것을 마음이 경험하고 증폭시키도록 두지 않았다. (p.412)

- 때때로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을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에 더욱 감사하게 되고, 덜 얽매이게 된다. (p.414)

-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다. (p.424)

-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 자리에서 즉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해라.” … 우리는 늘 빌릴 뿐, 절대로 소유하지 않는다. 해방감이 느껴진다. 잃어버릴 것이 없다면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할 것도 없다. (p.425)


13. 보부아르

- 보부아르는 “내 삶은 현실이 될 아름다운 이야기, 내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낼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게 바로 실존주의다. 따라야 할 각본도, 지문도 없다. 우리는 우리 삶이라는 이야기의 저자이자 감독이자 배우다. (p.450)

- ‘난 너를 위해 살지는 않지만 너 덕분에, 너를 통해서 살아.’ (p.465)

- “노년이 이전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패러디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 즉 개인과 집단에, 대의명분과 사회적·정치적·지적·창의적 작업에 헌신하는 것이다.” (p.468)

- “하루의 리듬과 내가 하루를 채우는 방식,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나의 하루는 언제나 비슷하다. 하지만 나에게 내 삶은 전혀 침체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습관을 지배했다. (p.470)

- 나는 이것이 노년의 최종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물길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넓히는 것.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임을 믿는 것. 카이로스의 지혜. 모든 것에는 알맞은 때가 있다. 심지어 물러나는 것에도. (p.474)


14. 몽테뉴

- “죽음은 우리가 타고난 조건이다. 우리의 일부다. 죽음에서 도망치는 건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다.” … 죽음은 우리 밖에 있는 ‘무엇’이 아니며 우리는 죽음의 희생자가 아니다. (p.493)

- 죽음의 해결책은 더 긴 삶이 아니다. … 죽음과 절망 모두 같은 약을 필요로 한다. 수용이다. (p.497)

- 개인적이지 않은 통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빌려온 진실은 빌려온 속옷만큼이나 잘 맞지 않으며 그만큼 기분 나쁜 것이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알거나, 아예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삶을 표준화된 시험처럼 살지 말고, 간디처럼 하나의 거대한 실험으로 여겨라. 이렇게 몸소 체험한 개인적 철학의 목표는 추상적 지식이 아니라 개인적 진실이다.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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