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퇴사를 결정하기 직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두 시간째 서로의 회사 욕을 하던 때였다. 친구가 자기가 너무 힘들 때 읽었던 책이 있는데 너무 공감되고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많이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왜 안 줬냐며 입을 삐죽거리자, 친구는 ‘너 요즘 책 안 읽잖아.’ 라며 반박할 수 없는 핀잔을 주었다. 확실히 당시는 집에 빽빽이 쌓인 책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읽고 싶다는 흥미나 읽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도 언젠가 읽을 거라며 책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나서 실제로 이 책을 읽기까지, 친구에게 “야, 그 때 너가 말했던 그 책 뭐였지? 주위에 선물하고 다녔다고 한 책 있잖아.” 라는 연락을 한 일곱 번쯤 했고, 친구가 “야, 그냥 읽지 마!” 라며 짜증을 참는 이모티콘을 보냈을 때쯤 드디어 책을 샀다.
그리고 그렇게 산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나는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분노의 책장 넘기기를 시전하며 깊은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래, 나 회사 다닐 때 이런 사람들 꼭 있었지.’ 라고 생각했다가,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불안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욕심이 많고 칭찬에 목마른, 그래서 인정도 많이 받은 직원이었지만, 동시에 ‘무슨 저런 실수를 해? 뭔 생각을 하는데 일을 저딴 식으로 하는 거야?’ 라는 뒷담화도 많이 들은 무능력자일 때도 있었다. 함께 일하는 누군가가 나보다 능력이 부족하고 내가 다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또 어느 날에는 그 사람이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히려 내가 그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저 사람 좀 맞춰 줬더니 자꾸 귀찮게 연락하네. 날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라며 남모르게 피해왔던 사람이 알고 보니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었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린 것 같아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으며 글자에서 눈을 돌리고 싶으면서도,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요물이었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특히 회사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이 책을 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차라리 그때 읽었으면 조금 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자기반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할 수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괜히 더 공감가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 게 나았을 것이다.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특징은 그의 문체였다. 별다른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고 시니컬한 문장들. 하지만 그 냉소성과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허망함이라든가, 사회와 타인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어리석음과 불안함이라든가,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라든가, 여하튼 현실에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순간을 체감한다. 그의 문장은 거의 언제나 군더더기 없이 삭막하고 어두운 듯하지만, 또 이따금씩 찾아오는 찐득한 감정이 숨어있는 우리네의 노동 현실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원이 더 비싸다는 거. 월세가 싼 방에는 다 이유가 있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바쳐야 한다는 거. 디즈니 공주님 같은 찰랑찰랑 긴 머리로 대가 없는 호의를 받으면 사람들은 그만큼 맡겨놓은 거라도 있는 빚쟁이들처럼 호시탐탐 노리다가 뭐라도 트집 잡아 깎아내린다는 거. 그걸 빛나 언니한테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나는.” (p.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