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월범성> 천화의 말
---------스포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아오루이펑(敖瑞鵬 오서붕)은 나에게 개구쟁이 이미지만 가득한데 <백월범성>에서는 요계의 우두머리인 요신으로 등장하니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웠다. 선협물 보다는 차기 <녹정기> 위소보 역할에 정말 잘 어울리겠다 기대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순수하고 의협심이 강하지만 진중하지는 못한 소년의 이미지가 그에게 있었다. 그래서 그가 옴므파탈의 단골배역인 요신을 맡은 <백월범성>이 초반엔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왕허디나 뤄운시 정도는 되어야 요신의 느낌이 살 것 같았는데 개구쟁이 아오루이펑이라니! 솔직히 말하자면, 끝까지도 완전하게 몰입한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아오루이펑이 연기 변신에는 성공한 것으로는 보인다. 시종일관 진지한 드라마에서도 위화감없이 스며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아오루이펑이 연기한 범월은 6만 년 전 요신 정연의 신격을 물려받은 자이자, 또다른 요족인 냉천궁과 라이벌인 호월전의 주인이다. 요왕이 되기 전에는 요족인 백택족이었는데 멸족당한 데에 대한 복수를 위해 힘을 키워 호월전의 주인이 되었다. 호월전에는 그 외에도 두 명의 고수가 있었으니 이름은 천화와 장산이다. 두 요군은 자신의 부족에서 상처받았던 자신들을 거둬준 범월에게 어디 비할 바 없는 맹목적인 충심을 갖고 있다. 범월 역시 그들을 아끼는 것은 당연하다. 주종관계이지만 형제관계에 더 가까운 사이이다. 하지만 이 둘과의 인연은 끝까지 가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장산은 자신의 부족인 석족과 범월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천화 역시 마지막까지 범월을 위해 희생한다. 범월은 이 두 사람이 목숨까지 잃어가며 살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그를 살림으로서 세계를 구원하는 셈이 되니 헛된 희생은 아니다. 그들은 말했다. 자신들이 희생한 것은 자신들의 선택이이라고.
이 드라마를 보면 개인의 선택, 주체성을 수시로 강조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범월은 연인 백삭이 지닌 무념석의 힘으로 자신에게 내려진 독을 치료할 수 있지만, 연인을 희생하면서까지 살고자 하지 않는다. 백삭 역시 범월의 힘으로 좀더 쉽게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증소의 덕도 쉽게 볼 수도 있지만 이 모두를 거부한다. 자신의 힘으로 힘을 가진 자가 되길 원한다. 이는 냉천궁의 궁주 전우와 선계 난릉의 종주 금요가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힘을 앗아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선과 악이란, 그들의 신분과 환경에 따른 것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는 것에서 가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40회차를 보며 거듭 하였다. 다시 말해, 선이란 스스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가치이고 악이란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발판삼아 이루고자 하는 가치라는 차이 말이다. 천화가 자신의 피를 내어주고 만든 신궁과 화살을 범월에게 건네주는 것, 장산이 목숨을 희생하여 모두를 구하는 것, 증소가 기꺼이 자신을 해치며 악을 물리치려는 것, 백희가 백삭을 대신해 죽는 것 등 자기 자신의 선택에 의해 선을 행했다. 반면, 선계의 권력자가 되고 싶었던 금요가 신선들을 신녀에게 바치는 것, 냉천궁주 전우가 은존맥리의 부활을 이루고자 신격을 지닌 이들을 이용하는 것, 란주가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많은 이들의 영혼을 빼앗아가는 것 등은 다른 사람을 희생한 악행이다.
<백월범성>은 6만년 전 신족 성월, 요족 정연, 은족 맥리가 인간족인 백삭, 요왕인 범월, 신족인 증소로 부활하고 다시 본캐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어 40부가 꽉차게 선협물의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예전같으면 70부작도 너끈했는데 요즘 추세가 회차가 짧아지다보니 대신 밀도가 높아졌다. 우려했던 아오루이펑의 캐스팅은 나름 바이루와의 케미로 순조로웠고, 늘 그렇듯 바이루의 연기는 안정되었다. 조연들 역시 각각의 매력을 불태우는데, 한동은 언제 악역을 안 하려나 싶다가도 악역에 너무 잘 어울려서 또한번 감탄했다. 진짜 나쁜 놈인데 멋있어서 손가락질 하면서도 감탄하게 된다. 그가 <초한지>의 항우나, <의천도룡기>의 양소같은 사랑받는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 한 번쯤은 해 보면 좋겠다. 아니지, 이런 악역을 꾸준히 하는 걸 보면 한동의 악역 선택도 '제 선택'이겠거니 해야겠다.
드라마를 다 보고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청소년을 키우다보니 최근에는 그 아이의 선택을 지켜보는 일이 잦다. 어릴 땐 엄마의 선택과 아이의 선택의 차이가 별로 없었고, 아이의 선택이라봤자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선택에 큰 비중을 두며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청소년이 된 아이는 매사 자신의 선택대로 일을 진행하고 싶어한다. 통제욕구가 강한 에미를 만나 선택에 고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엄마가 아닌 입장에선 나 역시 개인의 선택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라 그런 아들의 요구가솔직히 너무 잘 이해가 된다. 단지 불안하기 때문에 그 선택을 자꾸 막는다. 다 늙어 더이상 선택 따윈 하고 싶지 않은 친정엄마에겐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선택대로 해야 후회가 적다. 사람 아니라 개도 그럴 것이다. 아들이 학교를 다니건 말건, 누구를 어떻게 대하건 결국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가장 옳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은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고, 그 정도는 판단할 수 있도록 키웠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내 믿음이 헛되더라도 이보다 더 나은 결론이 있긴 어렵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고, 친정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삶에 대해 선택을 하되 책임도 지는 것, 그게 결국은 선(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