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학년에는 '실과'라는 과목이 있다. 애매한 과목이다. 과학이라고 하기엔 얕고, 사회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도덕인가 싶다가 요즘엔 흔히 말하는 '자기계발'이 아닌가 하고 혼자서 실과 과목에 대한 정체성을 규정하며 가르친다.
자기계발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 그 배우는 내용이 자기계발 요소로 손색이 없다. 가령, 5학년 실과 시간에는 시간 관리에 대해 배운다. 시간 관리란 자기 계발이나 경영의 기본이 아닌가?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 성공의 기원]에서 '1만시간의 법칙'을 소개했고, 독서 습관을 만든다고 아침마다 '아침독서 10분'을 운영하는 붐이 인 이래로 현재까지도 많은 학급에서 아침독서를 하고 있으니 시간 관리란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한 자기계발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 않은가? 시간 관리 뿐만 아니라 용돈 관리, 옷차림, 식사 예절까지 가르치니 아무리 봐도 교과명도 '자기계발'로 바꿔도 좋을 것 같다. 실과라는 이름은 왠지 제한적인 느낌이 든다.
시간 관리에 대해 공부하던 참이었다. 학교보다 학원 스케쥴에 더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시간 관리란 정말 유용한 항목이다. 관리에 대해 가르치기 전 우선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알아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니 샤워가 단연 많았다. 물론 그 와중에 하품이요 기지개요, 짜증이요....할많하않...
다 차치하고 샤워를 하는 걸로 시작하며, 샤워에 걸리는 시간을 통상 20분으로 잡고 설명을 하려는 찰나였다. 고개를 돌려 칠판에 글씨를 쓰려다 눈이 똥그래지며 의아해하는 남자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말았다. 쓰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아이들을 바라보고 그 표정에 답해주었다.
-아, 남자들은 20분이 안 걸리는구나?
-네! 저희는 10분이면 충분해요!
역시 그랬구나! 하지만 이 역시도 20분을 의식해서 부른 시간일 뿐이라는 건 금방 밝혀졌다. 크지 않은 웅성거림이 들렸다.
- 10분? 5분 아니야?
- 맞아 5분이면 충분하지!
점점 동의의 목소리들이 커진다.
-그래? 5분이면 충분해? 우리 아들들은 아니던데? 아무튼 그럼 우리 평균적으로 10분 잡을까?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한다.
- 선생님 솔직히 급할 땐 3분 컷 가능합니다.
- 저도요, 저도요!
- 샤워시작하고 닦는 것까지 3분도 넉넉합니다.
- 에이 그건 좀 아니다
한바탕 웃는 남자애들과 달리 경악을 금치 못하는 여학생들.
- 비눗칠은 제대로 헹구는 거냐?
- 물만 뿌리는 거 아니냐?
- 그게 샤워냐?
- 여자들은 샤워할 때 물낭비가 너무 심해!
이러다가 혐오로 이어질까 싶어, 여자들은 머리카락이 길기 때문이라고 중재해주었다.
-그럼 율이는 1분이면 가능한거 아니야?
빡빡이 머리를 한 녀석을 가리키며 한 아이가 웃으라고 던진 말이다.
그런데 율이는
- 가능해!
라고 태연히 말한다. 덕분에 분위기는 다시 가벼워지며 웃어 넘겼다.
집에 와서 아들들에게 이 일화를 들려주니 평소 샤워 시간이 10분이 너끈히 넘는 두 아들들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똑같이 말한다.
- 근데 5분 가능해!
- 3분도 가능은 하지!
- 근데 1분은..... 안 하는 게 낫지 않아?
아주 오래 전에 1학년을 가르칠 때, 가족 소개를 하던 중 한 아이가
- 우리 아빠가 이번 주에 출장을 가서 이틀 동안 집에 안 와서 보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니 이어서 한 아이가
- 우리 아빠는 건설회사에 다녀서 집에 일주일에 한 번 올 때도 있어요.
말하며 갑작스럽게 아빠 외박 배틀이 붙었는데 한 아이가 우습다는 듯이
- 우리 아빠는 지금 3주째 안들어오 오고 있어.
- 아빠가 멀리 계시구나?
- 아니요.
영문을 모르지만 더 캐물어선 안되었다. 마침 3주 공격에 모두 입을 꾹 다물어야 했으니 다음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가정 불화의 문제였는데 아직 어린 아이들은 숨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몰랐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다.
이 경우는 나와 그 아이에게만 가슴 아픈 배틀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렇게 말도 안되는 걸로 배틀이 펼쳐지곤 한다. 한 번 붙은 배틀은 과열되어 '샤워 1분' 또는 '외박 3주'와 같은 막강한 상대가 등장해야만 평정이 되니 그 소란스러움은 수업의 방향과 무관하게 난리통이 된다. 그래서 항시 배틀이 펼쳐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하지만 호시탐탐 말꼬리 잡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나의 얕은 주의 따윈 안중에도 없으리라. 그래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배틀은 일면 반갑기도 하니 내 속을 모르겠네? 그나저나내일은 또 무슨 배틀이 벌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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