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준다는 핑계로 문구를 자주 사는 편이다. 집으로도 배송받지만 학교로 받을 때도 많은데, 아무래도 문구를 사고픈 욕망을 정당화시켜줄 장소가 학교이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애들한테 푸는 거다. 나로선 문구를 사는 것과 더불어 아이들의 호감도 얻을 수 있으니 그리 나쁜 소비같진 않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과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일단 내 기준엔 '아직은 아니다"이다.
이번엔 '크리미한 형광펜'라는 게 궁금해서 사봤는데 역시 집에선 별 쓸모가 없어 학교로 신청한 참이다. 마침 그 택배가 와서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언박싱을 했다. 일단 다양한 파스텔톤의 색상에 우리들은 마음을 뺏겼고 아이들의 성화에 일단 분홍색을 쓰윽 그어봤다. 그런데 이건 그냥 색연필 아닌가 혼자서 실망하던 참인데 한 아이가
- 선생님 그거 꼭 애교살에 바르는 화장품 같아요.
아 색연필이 아니라 화장품? 다시 보니 분홍분홍한 색상과 질감이 진짜 그렇게 보였다.
- 오 정말 그렇네! 그런데 너 애교살이 뭔지 알아?
- 네 눈밑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이요.
- 어떻게 알았어?
- 언니가 화장할 때 봤어요.
곁에서 다른 아이들도 말을 거든다.
- 저도 알아요 애교살. 아이돌들도 거기에 화장 많이 해요.
- 선생님 저 그거 주세요!
- 근데, 이거 별로 형광펜 역할은 잘 못하는 것 같아.
- 그냥 애교살에 바르세요. 그게 더 낫겠어요!
- 이건 화장품 아니라서 얼굴에 바르면 큰일 나.
절대 애교살에 바르면 안 돼!
그런데 한참 전부터 우리 대화에 귀를 열어놓고 있던 교실 뒤편의 한 아이가 되묻는다. 평소 우리 반 테토녀 중의 한 명으로 불리는 운동을 잘하는 해맑은 아이이다. 사실 애교살 화장은 이 아이가 치장하면 정말 사랑스러울 것 같지만 그쪽과는 아직 인연이 멀다. 그 아이가 애교살 대화를 골똘히 듣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 아이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궁금한 걸 묻는다.
- 그런데 애교살은 뱃살 아니에요?
먹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너무 사랑스러운 말 아닌가?
- 암, 암. 니들 나이엔 뱃살이 애교살이지!
한참을 그 말이 너무 귀여워서 머릿속으로 몇 번을 되돌렸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듣자하니 아이돌들 크롭티 입었을 때 살짝 드러나는 배꼽 주위에 약간의 지방이 있는 상태를 말하는 요즘 말이라고 한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있는 말이라고 하니 감탄이 반감이 되었지만, 그 말을 한 아이의 순진한 얼굴을 떠올리니 다시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네가 말하는 뱃살은 그 뱃살이 아닐 거야! 그치? 아구아구 귀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