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뭐든 일기

[생활 일기]출간 계약 후 1년

다정하게 마중나가는 첫 걸음에 호의를 당부하며

by 횸흄

어떤 우울한 날이었다. 척추협착 수술을 받으신 엄마는 수술을 받고도 나아지지 않고 짜증만 늘어가고, 여전히 사춘기인 듯 내 속을 아프게 하는 큰 아들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남편은 이 둘과 모두 트러블을 만들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잘못이 더 크겠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남편의 태도 역시 내 기준에선 똑같이 불만이었다. 오직 아직 초등학생인 야무진 둘째 아들만이 내게 위로가 되던, 그런 날 중에도 더 힘들었던 날이었다.


보통은 그런 때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그날 밤도 아마 둘중 하나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아니면 중드를 보려고 했거나. 평소 이메일을 거의 열어보지 않는데, 스팸메일이 아닌 메일이 와 있어 놀랐기에 오직 메일이 왔던 그 순간만 기억에 남을 뿐 휴대폰으로 확인했는지 노트북으로 했는지도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러니 내가 책을 읽으려 했는지 글을 쓰려 했는지 중드를 보려 했는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무튼, 메일이 왔다. 메일을 확인하고 브런치에 와서 보니 모르는 새 브런치 알림도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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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제안은 소파에 구겨져 앉아있던 나의 몸을 펼쳐놓았고, 두근대는 심장은 고요한 밤에 누가 들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답장을 써야 하는데, 손이 좀 떨렸던 것 같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싶게 그때의 감정에서 나를 건져올려준 소식이었다. 드디어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구나 교만한 마음도 조금 들었지만 그보단 설렘이 가장 컸다. 긍정의 답장을 보내고 이후 줌으로 미팅을 하고 계약을 하기까지 저 메일을 보내주신 편집자님의 성품에 많이 의지했었다. 조금은 부당하다고 느낀 점도 있고, 서먹함을 느끼기도 하고, 어리둥절함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딱 한 번 실제로 만난 편집자님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더 믿었던 것 같다.


작년 11월의 연락과 만남, 계약 이후엔 그저 나는 쓰기만 하면 됐다. 쓰고, 고치고, 공부하고, 다시 쓰고, 또 고치고 아마 스무 번은 더 고쳤을 거다. 8월에 더 이상은 못 쓰겠다 싶도록 온 에너지를 다 쏟아서 쓰고는 최종 원고를 발송했다. 안타깝게도 최종 원고를 받는 것까지만 편집자님과 함께 할 수 있었다. 퇴사를 하신다니 축하를 드리고는 싶지만 그래도 내 책은 마무리를 해 주시고 하시지... 좀 버려진 기분도 들었다. 새로운 편집자님은 좀더 직급이 높으신 분 같았지만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해서 사람 한 길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요즘은 이렇게 책을 내는 건가? 그러던 차에 지난 달부터 출간이 급물살을 탔다. 감수를 확인하고, 편집을 확인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일들이 잦아졌다. 보면 볼수록 원고는 고칠 것들이 생겼다. 이래서 퇴고가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단순한 맞춤법 오류나 비문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들까지 또 여러 번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냥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일은 차원이 달랐다. 글에도 책임이 따르지만 여차하면 삭제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책은 내가 잘못 쓰면 그에 따른 책임을 크게 져야 한다. 그래서 감수에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저 내 감상이나 일과를 쓰는 일이 아니라 지식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자체적으로도 내가 쓴 내용에 대하여 출처를 다시 확인하고 따따불로 체크를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혼자 생각하기론 난 저자도 저자이지만, 편집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쓴다는 게 너무 지긋지긋하게 힘든 일이라는 것도. 진이 빠진다는 건 이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전에 한 번 대충 쓴 일기(일기라는 게 원래 대충 쓰는 거니까)를 책으로 만든 적이 있어서 이번에 더 심혈을 기울인 측면도 있다. 이건 분명 다른 장르이니까 그때와 같아선 안 된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글 쓰는 건 즐거운데 책이 되는 건 두려우니, 기고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건 지금도 그렇다. 누가 나한테 기고를 요청하면 참말 잘 할 것인데 말이다. 마감일은 제가 확실하게 지킵니다!


그렇다, 나는 정말 마감일을 잘 지키는 저자였다. 원고를 보내는 일도 원하는 날짜에 맞춰서! 시안과 교안의 피드백도 마감보다 빨리! 그래서인지 편집자의 답장에는 늘 빠른 답변이 감사하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그것이라도 해 드려야지, 내 책에 공을 들여주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며 책이 마무리 될 즈음엔 겸손함이 인생 최절정에 이른다. 내 인생에 이렇게 겸손한 마음일 때가 있었던가? 아, 아들이 속썩일 때? 겸손했다. 인정한다. 아무튼, 내 문제로는 이 때가 가장 겸손한 순간이다. 그렇게 오늘도 운동도 빠져가며 기한을 맞추려고 교정을 했다. 이제 글에 대해서는 내 능력에서는 더이상 손을 보기 어려운 것 같다. 글이 이상하다고 한다면 그건 현재 내 능력의 한계라고 볼 수 있겠다. 이제는 다른 걱정이 앞선다.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이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글에 대한 책임감 뿐만이 아니었다. 글은 신나게 쓰고 아무도 안 읽어도 서운해하고 말 일이지만, 책은 아무도 안 읽으면 아무도 안 팔린다는 뜻이니 그것은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뜻이 된다. 글은 서운함이 폭발해 삭제라도 할 수 있지만, 책은 마음이 바뀌었다고 모두 거둬들일 수있는 게 아니다. 책을 상품이라고 믿고 싶지 않지만 나의 두 손에 자신들의 자원을 투자한 출판사 입장에선 이윤을 꼭 남겨야 하는 상품이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어 판매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인플루언서도 아니고(요즘은 그래서 인플루언서들에게 출간제안을 하는 경우가 꽤 많다고 한다.), 자유로운 몸도 아니다. 이러한 사정을 출판사에 말씀드리곤 괜히 미안했다. 잡아주시는 스케줄에 최대한 응해드리는 수밖에. 그런 건 또 잘하니까!


책을 출간하고 싶은 분들을 말리고 싶어서 쓰는 글이 아니다. 생각보다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것만 말하고픈 것이다. 그런데, 책이 될 글을 쓰는 그 모든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아마, 출간 제의부터 마지막 원고를 발송하던 때까지 글을 쓰던 그 시간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다른 저자들도 바로 그 맛에 글을 책으로 빚는 게 아닐까? 나의 경우 세 군데 출판사에 투고를 한 적도 있었지만 출간 제의를 받기 전까진 그저 브런치에 올린 글을 누구 하나라도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간에 대해서는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POD로 내 볼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브런치에 올려도 별로 안 읽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달리는 댓글들은 정말 자양강장제가 따로 없었다. 그 소수를 위해서 혹은 그 소수가 조금이라도 더 다수가 되기를 바라며 그냥 나는 썼고, 누군가는 읽었고 그 읽은 사람들 중에 편집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번 달에는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설레고 두렵다. 나의 이 무던한 경험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면 좋겠는데,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실패 사례가 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생각하며 이 글을 맺는다. 글에 대해서는 정말 영혼을 갈아서 넣었다고 자부한다. 비전문가는 비전문가답게 최선을 다해 자기의 글이 읽히도록 쓴다. 그렇게 나는 우치다 다쓰루 책의 제목처럼 [목표는 천하무적]이라고 마음 속으로 외쳐본다. (무적은 적을 다 쓰러뜨린다는 뜻이 아니라 애시당초 적이 없는 상태랍니다.) 그대들을 다정하게 마중나갈 테니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와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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