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원소속인 경기도의 초등학교는 이미 몇 해 전부터 12월 말이나 1월 초에 방학을 하여 3월 초에 개학을 하는 것이 자리잡아 당연한데, 서울의 학교들은 여전히 봄방학의 개념이 남아 있다. 이미 그것을 아들들을 서울에서 키우며 알고 있었지만 근무지에서 경험하니 좀 낯설었다. 30분 거리의 동네에선 올해부터 봄방학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아직 그 트렌드가 우리 동네까지는 넘어오진 않은 모양이다. 엄마의 입장에선 중간에 개학하는 게 수월한데, 담임의 입장이 되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에는 도움이 되는 것도 같다.
개학을 했건만 아이들은 겨울잠에서 덜 깬 곰들마냥 느릿느릿하고, 집과 학교의 구분이 아직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저 놀려고만 한다. 아니 쉬려고만 한다. 자꾸만 나에게 딜을 시도하고, 나는 그것을 철벽방어 하는 게 우리들끼리의 일상이다. 평상시엔 틈만 나면 체육만 원하던 아이들이 자율활동 쿠폰으로 낮잠을 선택했을 정도이다. 그런 와중에도 재빠르게 겨울 연못에서 뛰어 올라 팔딱팔딱 다니는 바지런한 개구리들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다움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갑자기 나에게 한 가지 신고를 한다.
- 선생님, 애들이 방학을 하고 오더니 욕이 늘었어요!
- 욕이? 누가?
- 여기저기요! 방학 동안 집에서 욕하던 게 버릇이 됐나봐요!
- 그럼 안 되지! 아니 누가 무슨 욕을 하는 거야? 말해 봐!
순간 어떤 욕을 전달받을 지 긴장되었다. 우리 반 애들에게 욕다운 욕을 못 들어봤지만, 그래도 5학년 겨울 방학은 급성장기이지 않는가? 방학동안 어떻게 흑화되었을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 그래 무슨 욕을 해?
- 하! 꺼지래요! 여기도 꺼지래고, 저기도 꺼지래고. 애들이 자꾸 꺼지라고 해요!
- 아, 꺼지라고....그래! 꺼지라고 하면 안 되지.
자, 친구한테 꺼지라고 한 사람 손들어 봐요! 친구가 촛불도 아닌데, 왜 꺼지라고 해요? 그냥 가라고 하세요. 알았죠? 꺼지라는 나쁜 말이 너무 하고 싶으면, 촛불~! 이라고 하세요.
긴장이 풀려서 애드립을 친 게 문제였다. 꺼지라는 말은 몰래 조용히 하기라도 했지, 이제 대놓고 촛불 촛불 거리는 통에 교실이 촛불 잔치였다. 아이고 머리야, 누구를 탓하랴?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는데도 아이들이 들썩여 맨 앞에서 자리에 앉지 않은 한 아이에게 앉으라고 했더니, 그게 골이 났나 보다. 대뜸 나를 부른다.
- 선생님!
- 왜?
- 촛불!
잠시 일동 얼음!
땡!
- 야, 선 넘었다.
류의 말들이 나오자 아이가 사과한다.
- 죄송해요....
- 내가 할 말이 없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아이들과 이별을 하는 때에 돌아가며 한 해의 소회를 밝히는 중에 이 아이의 차례가 왔다.
- 사실 5학년 올라올 땐 반 배정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너무 재밌게 지냈어요.
- 그래, 넌 재밌었구나?
- 아니 선생님! 제가 버섯도 따다주고, 영어샘한테 받은 사탕도 주고, 편지도 줬는데요..
- 어, 그리고 욕도 줬지...
- 아~~
일동 깔깔깔! 다시 촛불 잔치!
겨우 조용히 시키고 돌려보냈다.
이렇게 다 큰 유치원생들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내년에 선생님이 맡으면 좋은 학년을 물어봤을 때, 복도에서라도 만날 수 있게 6학년을 해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너무 내려가지 말라는 요구도 있었고, 선생님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귀여운 1,2학년을 하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엄근진은 진작에 몸에 맞지 않아 버렸고, 아이들과 이렇게 농담 따먹기 하고 노는 것에 나름 재미를 느끼는 터라 래포 형성이 잘 되어 아직은 다행히 큰 문제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어떤 불특정 민원을 염려하는 것을 보면, 이 사회의 교육이 어딘가 잘못 되긴 잘못 된 듯 하다. 그냥 우리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