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뭐든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횸흄 Mar 03. 2022

[생각일기]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내가 기억하는 한 부모님은 사이가 늘 좋지 않았다. 서로에게 늘 화를 내고 있었다. 들은 바로 두 분 모두 자라는 동안 귀하고 곱게 자라 연세에 비해 한 분은 고등학교 중퇴, 한 분은 대학교 중퇴인 고학력자이기도 했다. 그 시절에 다이아몬드를 혼수로 했다고 하니 분명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 두 분 모두 어른이 될 무렵 가정에 어려움이 생겨 가세가 기울어 결혼 후에는 각자의 가족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살아야했다. 


어릴 때 귀하게 자란 두 사람은 양보와 희생을 하지 못했다. 40년이 넘는 삶을 살며 느끼기에 양보나 희생 등의 도덕적 가치는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배워야 지닐 수 있는 덕목이다. 그런데 각 집안의 장남과 장녀로 자라며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듣지 않고 원하는 바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새롭게 생겨난 수많은 장애물에 버텨낼 힘이 무척 박약했다.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란 덕에 우리 형제들은 도리어 철이 빨리 들었고 학창 시절엔 부모님이 좀 덜 배운 사람들이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불화하였을까 의문이 들곤 했다. 물론 당시에도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더 잘났다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초년에 고생을 많이 한 덕에 나와 동생은 꽤나 견딜심이 강해졌다. 동생은 좀더 강한 성품이 어릴 때부터 있었지만 나는 타고난 바로는 버틸 힘이 적은 성향이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회피하는 것이 편했고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삶을 희망했다. 하지만 내가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내 삶이 더 무난해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덤덤히 넘기는 능력이 길러졌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정도는 되지 못했지만 피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내 삶은 피폐해졌지만 내가 해결할 일을 남에게 의존하지는 않았다. 그럴만한 상대는 없었다. 아마 있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기댔으려나? 그러진 않았을 것 같다. 나의 문제를 남에게 전가하는 일 따위는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니 나에게 벌어진 일은 내 손으로 해결하고자 해왔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우고, 내 부모가 싼 똥까지 치워야 하는 삶이었다. 


어느 면으로는 가엾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초년의 풍족함이 의지의 박약을 가져왔고 그것이 말년의 불행을 만들었다면 그때의 풍족함은 삶의 독이 된 셈이다. 유년의 풍족한 기억을 마음의 식량으로 삼아 버텨온 것일 수도 있으니 달콤한 독이다. 그 독이 독이 되지 않게 해독제를 부지런히 만들어가며 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말년의 불행은 어찌 보면 자기 탓에 가깝다. 그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 그들은 스스로의 불행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과 실천력이 무척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사회 구조적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떤 불행은 본인의 단단함으로 피해갈 수도 있기도 하다. 초년의 풍족함이 안정된 직장들을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버리기도 했다. 부모와 달리 적성 따위는 급여의 필요에 따라 포기해버린 나와도 많이 다르다. 우리는 어쩌면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분명 나의 말년은 그들보다 나을 것이다. 나의 처지를 알기에 나의 적성과 흥미는 생활 전선 그 바깥에서 찔끔찔끔 누리는 중이지만 말년엔 분명 그들보다 평안할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되고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부모를 키워왔다. 철이 없이 감정만 내세우는 부모에게 여러 번 용기 내어 조언을 했고 그것들은 매번 반항으로 치부되었다. 또한 정면돌파보단 회피를 일삼는 그들을 보며 무책임함을 배웠다. 그렇게 살아선 곤란하다는 말은 더 이상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지만 그들을 보는 내 마음은 늘 불안불안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개선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보다 부모를 키우는 일은 훨씬 좌절감이 심했다. 그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 그중 한 사람은 죽는 날까지 내 삶에 기댈 것이다. 부모가 나를 키운 시간보다 내가 부모를 키운 시간이 더 길어질 즈음이 되니 나의 말년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의 그들보단 평화로울 것이라는 점이 위안이 될 테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너무 고단하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온다면, 어린 시절을 좀 힘들게 버텨온 사람이면 좋겠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타인의 삶을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사람을 부모로 두는 건 정말이지 큰 시련이니까. 그들의 노력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의 삶이 누군가에 큰 괴로움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남들 보기엔 평범한 노인이지만 자식으로서 자기의 부모를 존경하는 사람을 볼 때면 무척 부럽다. 자식에게 재산이나 명예를 물려주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버텨낸 점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스럽다는 말에 공감을 한다.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았으되 그 사랑의 고마움을 느낄 새 없이 그들이 준 삶의 무게에 짓눌려버렸다. 사랑은 주는 사람의 마음과 달리 주는 사람의 태도에 더 큰 영향을 받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하기에 나의 아이들에게 나는 내 사랑을 깃털처럼 가볍게 전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초년의 풍족함이 과하지 않도록 애쓸 것이다. 그러면 이 아이들에게 초년의 풍족함은 독이 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사랑은 무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키우는 만큼 아이는 자랄 것이며 따라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부모를 키우는 일보다는 덜 고단하다. 그래서 '아이를 선택할 수 있다면'과 같은 고민은 성립하지 않는 모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림픽일기] 올림픽은 왜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