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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Feb 11. 2022

[올림픽일기] 올림픽은 왜 할까?

하계 올림픽에 비하면 동계 올림픽의 인기는 우리나라에서 썩 있는 편은 아니었다. 동계 올림픽이 인기를 끈 것은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따면서부터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쇼트트랙에 목숨을 건 듯 했고, 양궁이 그렇듯 쇼트트랙은 금메달을 따야만 하는 종목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우리나라도 왕년에 금메달을 따기 위해 얍삽한 경기를 했던 적이 있으며 문화 수준이 올라가면서부터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국민도 생기고, 너무 그들에게 국가의 무게를 실어주지 말자는 여론도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우리나라와 같이 쇼트트랙에 목숨을 거는 나라들이 생겼고 이제는 그들의 경기가 우리의 경기보다 더 지저분해져서 우리도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일까? 물론 우리는 강대국이 아니라 심판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지만.


어제 차준환의 피겨 연기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네이선 첸의 팬이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네이선 첸은 연기를 끝냈고 차준환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5위라고 했다. 정말 대단하다. 잠을 깨고 제대로 TV를 보며 피겨 연기보다 그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를 것 같은 경기 직후 인터뷰가 더 아름답다고 느꼈다. 차준환, 밝아서 좋았는데 생각도 너무 괜찮은데? 경황이 없는 선수들은 대체로 질문과 거의 무관한 말을 내뱉는데 차준환 역시 그랬다. 그런데 그 말의 요지는 분명 알 수 있었다. 즐기려고 노력했고 아쉬움이 있지만 최선을 다해서 대체로 만족한다는 내용이었다. 금메달은 그런 선수의 마음에 주어야 할 것 같다. 물론 네이선 첸의 연기는 너무 아름다웠고 그가 뿜뿜 뿜어내는 남성적 에너지와 자신감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난 그의 마음에도 차준환의 마음과 같은 그런 아름다운 마음이 분명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선수의 표정을 보면 느낄 수 있다. 타인이 만들어준 무게 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더 큰 사람으로 보였다. 국가와 국민의 무게에 짓눌린 경기를 한 사람의 표정은 순위와 무관하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저 사람 괜찮을까?


차준환 같은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건 무척 자랑스럽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중국 대표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그들과 똑같이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때 우리에게 억울한 심정이 있었던 나라와 선수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여기고 중국도 언젠간 문화수준이 높아져 금메달이 전부가 아닌 때가 올 것이라 좀 기다려주는 멋도 필요하지 않을까? 몇 날 며칠을 쇼트트랙 경기만 가지고 싸우는 양쪽 모두가 좀 부끄럽다. 


그러면서 문득 궁금하다. 올림픽은 왜 하는 걸까? 고대 그리스의 전통을 단순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고, 쿠베르탱이 말한 올림픽의 정신은 국가간 금메달 전쟁으로 사라진 지가 오래인데 굳이 왜 하는 걸까? 지금 베이징 올림픽 같은 개최국이나 강대국의 국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면 더더욱 그 의미가 없어 보이고, 선수들의 기량을 겨루기 위해서라면 종목별 선수권 대회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올림픽을 왜 이렇게까지 이어가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세계 평화'나 '정정당당'에 금 가는 분란만 더 만드는 것 같은데 이제 그만 하면 안 되려나? 경기 결과의 영광과 실패 모두 개인의 것으로 하고 국가는 뒤로 물러나야 하는 게 시대에 맞는 스포츠 정신 아닐까? 모든 무게를 국가와 국민의 힘으로 좌우하는 게 옳은 걸까? 올림픽을 하려거든 나라를 빼고 선수 개인으로만 출전을 하고 순위를 결정하면 좋겠다. 굳이 국가별 메달 순위 따위는 하지 말고. 


쇼트트랙 경기를 보고 나면 기분이 언짢다. 반칙과 실격이 너무 많은 경기이다 보니 경기가 끝나고 난 후에 상대팀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스피드 스케이팅과 같이 몸을 부딪히지 않는 경기는 끝나고 나면 서로 엉덩이를 두드려주던데 지던 이기던 그건 결국 자신의 몫이라 인정하기 쉬운 이유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너무 보기 좋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때부터 몸 하나 부딪히지 않고 느긋하게 볼 수 있는 컬링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컬링이 팀킴 덕분에 인기가 치솟았지만 나 어릴 때는 컬링 얘기하는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 심지어 평창올림픽도 컬링 예매 했는데 우연히 컬링이 인기가 높아져 아주 핫한 경기를 본 셈이 되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원픽 경기는 컬링이었을 뿐이다. 경기를 보다 보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컬링 선수는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절대 쇼트트랙은 못 할 것 같다. 스트레스 많이 받아가면서 쇼트트랙이라는 경기를 하기로 결정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용감한데, 그 결과를 혼자가 아니라 국가의 무게로 짊어져야 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 같다. 그런 무게감이 빙상계의 수많은 구설수와 문제들을 낳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오늘도 쇼트트랙 경기가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경기를 시작하면 나는 내 몸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쇼트트랙 경기를 볼 것이다. 그제는 실제 경기는 안 보고 바로 이어지는 리플레이 영상만 봤다. 조마조마한 건 딱 질색이다. 그 안에서 뛰는 선수들이 정말 대단하다. 그 대단함만 응원하고 싶다. 평생 단 한 번의 경기도 아니고 그들이 뛰어야 할 무수한 경기 중의 하나라고 그렇게 여기면 좋겠다. 다친 손으로 결승까지 올라간 스스로를 무한히 칭찬하고, 예술적으로 빈 자리를 찾아간 그 순간을 만끽하면 좋겠다. 결과는 제발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기를 소심하게 바라본다. 오늘 안경 선배가 영국과 어떻게 경기할 것인가, 컬링 2차전도 방구석 1열에서 응원하며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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