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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Mar 29. 2022

[건강일기] 취사병 우습게 보지 않겠다.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모처럼 가사노동을 전담했다. 그간에는 내가 출근하는 동안에는 엄마가, 퇴근 후에는 남편과 나누어 가사노동을 했었는데, 2월 말에 엄마가 쓰러지는 일이 있었고 다행히 내가 휴직을 신청한 터라 가사노동의 공백 때문에 생기는 혼란은 없었다. 오랜만이었지만 낯선 일은 아니었고, 내 가족을 위해 모처럼 봉사를 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 그동안 꾸준히 챙기고자 노력했던 '나만의 시간'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도 크지 않았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안 그래도 읽고 쓰는 일에 조금은 회의가 느껴지던 참이라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다. 다행히 일을 쉬는 동안 손목의 통증이 줄어가고 있었기에 그간 손목 통증의 원인을 '일' 때문이었구나 생각하며 열심히 한달 가까이를 살았다. 


엄마는 증상이 완화되어 이제 더이상 내가 식사를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고 설거지나 빨래 등 간단한 집안일을 다시 맡게 되었다. 이제는 읽고 쓰는 일에 대한 갈증도 다시 생겨나 잃어버린 나의 시간을 하루 빨리 되찾고자 욕심을 부리다보니 최근 '1일 1권'의 독서를 하게 되는 경지에까지 이르러 경계하는 참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온몸이 간질간질 하도록 행복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운명은 한 인간에게 행복만을 주지는 않는 법, 잊었던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일' 때문이 아니었단 말인가?


어릴 적 동네 엄마들과 아이들을 두고 '지랄 총량의 법칙'을 거론하던 때가 떠올랐다. '총량의 법칙'은 통증에도 적용되는 듯 했다. 기존의 손목 통증에 더해 무릎 통증까지 추가되어 잠을 자다가도 자꾸만 깨곤 한다. 기존의 통증이 되살아남과 동시에 낯선 통증을 맞는 나날을 보내다보니 '통증 총량의 법칙'을 믿게 되면서 '지난 달에 갔던 통증이 잊지도 않고 친구까지 데리고 왔네'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혼자 던지곤 한다. 그에 더해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무릎과 손, 둘중 하나를 고르라면 손을 고르겠노라고 비장하게 결론을 내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한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가사노동을 하는 이의 통증이 오직 당사자 한 사람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증이라는 게 그 원인이 아니라 결과가 보이는 문제이다보니 철저하게 개인의 영역이다. 당사자에겐 끊어지는 고통이라도 보는 이에겐 그저 불편함 정도로 보이곤 한다. 더구나 내가 최근에 무슨 중노동을 한 것도 아니요, 세차게 운동을 한 것도 아니요, 그저 전에 없이 몰입 가사 노동을 한 것 뿐이니 주변의 돌봄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자칫 통증을 호소하다가는 '운동 부족'이라느니 '엄살'이라는 반응이 올 수도 있어 철저하게 내 안으로 통증을 숨긴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충분한 공감을 받지 못하다니 억울하지만 그동안 나 역시 집안일을 너무 가볍게 봤다.


버스를 타며 창밖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구경하면서 불현듯 취사병이 떠올랐다. 겨우 5인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내 관절도 한 달이면 이 지경인데 아무리 젊다지만 수 백의 끼니를 책임지는 큰 솥과 국자를 사용해야 하는 손목과 무릎은 어쩐단 말인가? 취사병을 마치 출퇴근 없는 공익근무요원처럼 봤던 나의 모자란 인식에 꿀밤을 때렸다. 취사병 우습게 보지 말아야지, 취사병의 그 집약적 신체 사용을 무림 고수의 수련 장면처럼 여겨야지! 우리의 관절은 너희로 인해 소모되었으되 그 통증을 청구하지 않겠나니 부디 가사와 취사의 막중함을 알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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