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울지마, 배고파.

2021. 6.29. 화

by 횸흄

우리 반 까불이는 행동만 보자면 아주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격 수업일에 등교하기, 출석 확인 후 화장실에서 한 시간 머물기, 혼자 세게 넘어지는 행동하기, 의자 뒤로 까딱까딱하기, 숙제 전혀 안 하기, 원격 수업 밀리기, 실시간 수업 시간에 유튜브 보기, 알림장 안 써서 교과서와 준비물 안 가져오기 등등. 그런데 이 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한 가지 포착한 '마음이 따뜻하다.'라는 점 때문에 나는 이 아이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워하기는 커녕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듯 처음엔 거슬리는 행동을 너무 많이 해서 비난하던 아이들도 차츰 이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따뜻한 면을 알아채어 환대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물론 여전히 행동은 그대로이다. 하루 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닌 버릇이라 고치는 데에는 하늘에 벼락이 내리는 수준의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저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 수시로 잔소리하는 역할을 할 뿐.


지난 주 금요일 등교하는 날도 아이는 여전했다. 학교오면 제일 먼저 살피는 것이 급식표인데 그날 급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반찬을 받지 않으려고 한 아이와 실갱이를 했다. 그런데 배식을 하는 아이가 하필이면 그때 기분이 나빴고, 평소에도 좀 행동이 남다른 편이라 쫓아가며 멸치볶음을 뿌려버려 제3의 학생 책상과 자리에 멸치비가 내렸다. 다행히 피해를 당한 아이에게 부탁하니 너그럽게 자기가 자리를 정리했고, 급식을 피한 아이도 미안한 마음에 함께 도왔다. 그런데, 멸치비를 뿌린 아이만은 혼자 눈물이 그렁그렁 분에 못 이기듯 심통이나서 미안함도 후회도 반성도 모두 거부하고 있었다.

"넌 밥만 먹잖아? 넌 안 먹고 싶은 건 절대 받지 않잖아? 그런데 꼭 그랬어야 했어?"

"..."

"까불이가 잘못한 게 분명한데 네가 너무 심하게 해서 네 잘못이 더 드러나버렸어. ㅇㅇ에게 미안하지 않아?"

"(도리도리)"

"그럼 미안하다고 생각해야해. 이 상황에선 미안하다고 느껴야 해. "

이런 일방적 대화를 조곤조곤 나누느라 이 아이는 밥도 받지 못했다. 식욕도 없을 것이며, 평소 행동대로라면 억지로 먹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먹지 않겠다는 아이를 집으로 보내려는데 까불이가 다가온다. 저 때문에 친구가 눈이 벌겋게 밥도 안 먹고 있으니 걱정이 되었는지 한 마디 한다.


"내가 편식해서 미안해. 울지마. 울면 배고파."


이 장면에서 울지 않고 버티기란 너무 힘들다. 지금도 뭉클하다. 앞뒤 재지 않고 그냥 안아줬다. 너무 말이 예쁘다고.

이 날 하루의 양식은 그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감동이 사그라들지 않아 아이 어머니께 문자를 드렸다. 마음이 너무 따뜻한 아이라고, 칭찬 많이 해 주시라고. (칭찬의 기술이 부족해서 말미엔 행동이 조금만 세련되면 좋겠다는 안 해도 될 말도 덧붙여서...) 까불이의 한 마디에 분해하던 아이에게도 묘하게 변화가 일었다. 표정이 좀더 부드러워진 것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이렇게 주변을 부드럽게 한다. 말의 온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를 통해 또한번 배웠다.


그리고 어제오늘 줌수업 시간. 두 아이 모두 여느 날과 같다. 까불이는 어제도 원격 수업을 듣지 않아 독촉해야 했고, 수업 시간엔 도대체 어딜 그렇게 보는 건지 몇 번이고 "수업에 집중하는 거라고 믿을게."라는 말을 던져야했다. 멸치비를 뿌린 아이는 어제오늘 좀더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그 아이를 대해도 되는 걸까? 고민되기도 하지만 사실 6학년이나 된 아이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킬 힘이 내게는 없다. 난 그저, 그래도 올해가 다른 해보다 좀더 나은 한 해였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말과 행동에 공을 들이는 것을 우리 아들이 보면 얼마나 서운할까? 자기 자식한테는 잘 되지 않아 이날 집에 가서 이날의 일을 들려줬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하루 이틀에 되는 일도 아니고 변수도 너무나 많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아이의 모든 행동을 부모의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 너희들도 이제는 너희의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란다. 그런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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