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일기] 마음, 얼마면 되나요?

by 횸흄

원빈이 묻는다, 네 마음을 얻으려면 "얼마면 돼?". 송혜교가 되묻는다,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돈이 많은 사람도 돈이 없는 사람도 잘 모르긴 매한가지인 마음의 가격, 나 역시 늘 어려운 영역이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마음을 돈으로 표현해야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축의금, 조의금, 사례금 등등.


얼마 전 외가쪽 단톡방에 대장 이모의 카톡이 떴다. 삼촌이 낙상해서 크게 다쳤으나 코로나19로 문병은 어려우니 위로금을 각자 보내드리자. 독립 가정을 꾸리지 않은 삼촌이 다치기까지하니 십여 명의 조카들 중 염려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위로금으로 그것을 표현하자니 도대체 얼마를 보내드려야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마음 같아서야 백만원, 2백만원 시원하게 입금해드리고 싶지만 그러기 어려운 게 보통 사람의 현실이다. 잠시 후 대장 이모가 현명하게 다시 톡을 보낸다. "저마다의 사정이 다르지만 10만원씩만 보내드리자." 열셋의 조카들은 주춤하던 입금 창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입금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으리라.


하지만 이런 교통 정리를 해 줄 사람이 없이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도 결혼 축의금, 장례 조의금은 일반적으로 정리된 금액이 있어 모를 경우 검색을 통해서 시세를 알아볼 수 있고 관계가 가깝거나 먼 경우에는 최대한 혹은 최소한의 예의를 표현하면 되니 고민이 적은 편인데, 멀다고 하기엔 가깝고 가깝다기엔 애매한 관계에 대해 이런저런 마음을 돈으로 표현해야 할 때엔 적잖은 고민이 된다. 그러다 결국은 왜 마음을 돈으로 표현해야 하는 거지?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시가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편리하면서도 씁쓸하다. 이런 문화는 빨리 없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푸념을 하기도 한다. 마음을 쓰는 데에도 부족한 사람이 돈이라는 도구로 마음을 쓰려니 더 불편하다. 그래서 도대체 지금 이 축하의 마음이 "얼마면 돼?" 원빈 흉내를 내는 것이다.


마음에 시세가 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현실이다. 몇년 전 휴직을 오래 한 후 복직하자마자 동료의 결혼식이 있어 축의금을 해야 했다. '교류가 없는 동료'에 준하는 축의금을 했지만 내가 휴직한 사이 시세 변동이 있어서 내가 건넨 금액이 부족했음을 뒤늦게 알아 낯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교류가 없던 동료가 이를 계기로 교류(뒷말)가 생기는 건 아닌지 염려했을 정도이다. 경조사비에 대한 회의가 있는 편인지라, 나는 경조사를 주변에 최소한으로 알리는 편이다. 좋은 일도 그렇고 나쁜 일도 그렇다. 한동안 소원했던 관계였던 사람이 뒤늦게 소식을 알고 서운함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편이 채무를 해결하듯 오곤 피곤함을 표현하는 경우보다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생전 연락이 없고 현재의 연관성도 없는데 자신이 경사를 알리는 이의 심정을 때로 이해하지 못한다. 전화번호도 다 사라진 그 사람이 '어떻게 알고 나한테까지' 청첩 문자를 보냈는지 놀란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장례식도 결혼식도 가족 이외의 손님은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장례식의 경우 우리나라 정서가 아직은 망자를 외롭게 보내는 것에 마음이 쓰여서 그런다는 이유를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결혼식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물론 나도 일반적인 결혼식을 했다. 그건 내 의지라기 보단 내 부모의 의지였다. 역시 채무 결산을 위한 것이겠지? 그것도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빚을 청산하고 시픈 마음? 하지만 빚을 청산하려는 마음이 결혼식이나 기타 등등의 축하연에 중심이 되어야 하는 마음은 아니지 않는가? 그 돈들에 축하의 마음은 얼마나 들어있을까? 그럼 돈을 적게 보낸 사람의 마음은 적고, 돈을 많이 보낸 사람의 마음은 큰 걸까? 정말 돈 가는 데에 마음 가는 걸까? YES or NO가 너무 어려운 문제이다. 정말 때에 따라 다른 문제.


우리는 언제부터 마음을 돈으로 표현하게 되었을까? 돈으로 표현하는 마음은 선명해서 오해의 여지가 사라진 걸까? 가서 축하하고 애도해야 하는데 대신 돈만 보내면 되어서 서로에게 좋은 건가? 그런데 돈이 아니면 무엇으로 마음을 표현하면 좋을까? 말과 글과 포옹으론 안 되는 걸까? 때때로 돈으로 표현된 마음으로 사이가 나빠지기도 한다. 축의금을 적게 내서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고, 축의금을 냈는데 감사 인사를 건네지 않아 마음이 상한 경우도 있다. 그러니 돈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심지어 매우 골치 아프고 심한 경우 축하의 마음은 뒷전으로 가 버린다. 원빈처럼 남의 마음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경우엔 뺨 맞거나 고소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돈으로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명절이 다가오고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수십 년째 '현금'이다. 어린이날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 역시 '현금'이다. 내 부모도 그렇고 내 아들도 그렇다. 아들이 현금으로 주는 선물을 굳이 선물로 환산하여 네가 준 돈으로 '이걸' 샀다고 꼭 보여주는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건가? 편지 한 장 없이 현금을 주는 게 마음인가 싶어 강제로라도 편지를 받고, 현금을 거부하며 약국에 가서 비타민 음료라도 사오게 하는 나는 비효율적인 사람인 걸까? 마음이 거의 없는 상대에게 마음이 있는 척 보내는 선물로는 현금이 괜찮은 대안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건 마음이라기 보다는 비즈니스! 선물을 고르는 상대를 상상하는 일, 상대가 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할 지 고민하는 일에 고마움을 느끼고 싶은데 요즘은 그런 상대를 만나기도 힘들고, 내가 그런 상대가 되기도 어렵다. 명절과 입학 시즌을 앞두고 마음을 돈으로 표현하는 데에 잠시의 망설임을 느끼며 이 글을 쓰지만, 결국 나는 '얼마'를 그들에게 지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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