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일기] 나라는 사람의 쓸모

by 횸흄

일하지 않는 삶을 꿈꾸며 육아휴직에 들어섰건만 나는 어느 새 일 비슷한 일들을 벌인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북클럽의 스텝으로, 동네 아이들의 스몰해빗을 만들어주기 위한 운영자로, 그리고 동네 엄마들에게 그림책의 매력을 알려주는 낭독모임리더로 누가 시키지도 않고 보상이 따르지도 않는 그런 일들을 벌이고 있다. 그 일들이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동력은 내 마음 안에 그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하기 싫어'지면 그만둘 수 있기에 도리어 '하고 싶다'는 마음을 그냥 쫓아내지 않는다고 할까? 더구나 이 활동들이 나에게 어떤 보람을 주기도 하고 나라는 사람의 쓸모에 대해 효능감을 주기도 한다.


북클럽 매니저는 나와 함께 책을 선정하면서 결국은 자기가 읽고 싶었던 책에 대한 확신을 내가 더해주는 것 뿐인데도 '샘 없이는 안 된다.'는 말을 수시로 뱉는다. 그 말의 무게는 좀 가볍지만 그 안에 진심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손사레를 굳이 치지 않고 도움을 바랄 때 언제든 손을 내밀고 있다. 소극적 형태이지만 반 년 넘게 지속한 일이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매니저는 나에게 주제와 책 선정의 초안을 알려주고 그때부터 폭발적인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다음 시즌 주제와 책을 확정한다. 사정이 되는 때에는 함께 서점에 들러서 책을 둘러보는데 온라인 서점에 적을 더 두고 있는 소비자로서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는 그 순간은 퍽 소중하다. 그 재미를 위해서라도 이 일을 지속해야하는데 그것은 이 북클럽의 지속여부에 달렸으므로 내 손밖의 일이다. 기회가 있는 한 즐기기로 한 일이다.


스몰해빗은 내가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활동이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 내 아이의 작은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한 목적이 더 강했다. 나 역시 어떤 그룹으로 묶인다면 실천력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으니 이 활동은 육아휴직 중이라는 현재 나의 상태에 매우 적합하다. 다행히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만족도가 높아서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목적이 잘 달성되는 중이다. 현재 21일째 이어가고 있으며 네이버밴드의 미션인증을 활용하고 있다. 스몰 해빗의 주제는 스몰해야 하고, 인증 역시 최소한으로 해야 지속되기가 쉬워 그냥 사진 한 장만 올리는 것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인지라 가끔은 쇼맨십을 발휘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어려서 그것조차도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 이럴 때 아이들의 성취감이 높아지고 습관화가 이루어져서 운영자로서 마음이 뿌듯하다. 하나의 습관을 만드는 데에 21일이 걸린다고 하는데, 이미 습관은 만들어진 듯 아이는 내가 없어도 미션을 실천한다. 지금 우리는 즐기는 중이다.


휴직을 하면서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큰 아이를 키울 땐 그림책이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했다면 지금은 그림책의 효용성에 대하여 관심이 높아졌다. 그림책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윤택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내 안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림책 테라피, 그림책 낭독, 그림책 활동 등 영역을 좀더 넓혀서 살펴보는 중이다. 무급 휴직 중인 사람이 값비싼 수업을 들을 수는 없고 주변 기관의 무료 강좌들에 열심히 참여하다가 마침 좋은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아들의 어린이집 단톡방에서 '그림책 낭독 모임'을 모집해보았다. 처음엔 너무 반응이 없어서 내가 발을 잘못 내밀었나보다 하고 실망했지만 그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만히 기다리니 문을 똑똑 두드린다. 그다음엔 그냥 난 문을 열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현재 7주간 일곱 번의 모임을 했다. 이름하여 '낭랑한 그림책'. 내가 주제를 주면 그 주제에 맞는 그림책을 그냥 한두 권 씩 돌아가며 읽어주면 끝이다. 예전에 그림책 전문가가 운영한 유료 모임에 참여했던 경험이 동기가 되었다. 가장 보람이 있는 건 처음엔 전집 속에서 책을 골라오던 분들이 차츰 전집 바깥으로 벗어나는 모습을 볼 때였다. 짬짬이 첨언을 하고 리뷰 페이퍼를 매주 발행하여 부담스럽지 않게 그림책에 대한 깨알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 내 몫이다. 원래는 6개월 휴직이라 조만간 접어야 할 모임이었는데 나의 휴직 연장으로 이 모임 역시 연장되었다.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멤버들도 확장되고 있다. 드나듬이 자유로운 그런 모임이고 싶어서 주변에서 권유한 마을 공동체 사업 같은 것도 신청하지 않았다. 오로지 즐거움만으로 지속되는 그런 모임이고 싶었다.

낭랑한 그림책.jpg

앞에서 일을 벌였다고 했지만 실은 모두가 즐거움을 수반한 활동이라 일을 일이라 느끼지 않고 있다. 선생을 그만두는 날을 매일 꿈꾸는데 선생을 그만두고 나서도 왠지 나는 이렇게 선생 노릇을 하고 있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어 쓴웃음이 나기도 하다만, 제도권 안의 선생과는 다른 맛이 있는 요런 선생 노릇이 내 입맛엔 더 잘 맞는 듯 하다. 그렇다고 나를 거쳐간 많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의 무게가 강할수록 선생의 즐거움은 줄어든다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이런 내가 신나 보였는지 어느 날엔가 남편이 학교를 그만두고 이런 일을 하면 더 잘 하겠다며 처음으로 교사가 아닌 나의 직업을 거론했다. 나는 프레드릭처럼 말했다. "나도 알아."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그게 문제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일보다 끝내는 일이 더 어려운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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