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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Nov 11. 2022

[중드일기] 설산비호외전? 다 섞였네~

중드 <설산비호> <비호외전>, 소설 [설산비호]

식탁 위에 한 자리 차지하는 소설 [천룡팔부]세트를 일 년 내내 보던 작은 아들이 묻는다. "이효민씨, 철용팔부는 언제 읽으실 거죵? 읽지도 않을 책을 왜 산 거죵?" 뜨끔해라. 10권을 읽으려면 얼마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지 네가 몰라서 그래....더구나 드라마도 같이 봐야하거든....모두 다 핑계같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그래서 한 권짜리 소설 [설산비호]와 중드들을 먼저 시작하며 아들의 질책을 외면했다.


김용의 소설 [설산비호]는 중국 교과서에 실린 책이다. 무협 소설이 교과서에 실리다니, 중국에서 무협 소설과 김용의 입지가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왜 하필 [설산비호]인가 생각하니 일단은 짧고 '액자식'이라는 소설적 장치와 '도대체 호비는 왜 사람들을 모은 것인가?'에서 시작하는 추리적 요소가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소설은 전귀농 사후 천룡문 제자들을 비롯하여 세 집단이 보물이 담긴 철합을 노리며 다투다가 옥필봉에 사람들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여러 화자들의 입을 빌려 과거 호일도와 묘인봉의 대결, 전귀농의 죽음, 그 앞 세대의 이야기등이 이어지며 과거의 은원관계가 드러나게 된다. 묘인봉을 아버지의 원수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딸인 묘약란을 사모하는 마음을 지닌 호비가 묘인봉의 대결 중에 소설은 끝이나니 흔히 우리가 열린 결말이라고 부르는 스타일이다. 과연 우리가 소설을 읽으며 재밌다고 여기는 부분들이 많이 포함되었다.

소설을 읽으며 최근 방영한 <비호외전>을 봤다. 인물은 같은데 내용이 너무 다르다. 소설 [비호외전]도 세부 내용이 [설산비호]와 어긋난다고 하니 감안하고 봤지만 같은 시대 같은 인물을 쓰는데 왜 내용이 다른가? 옛날엔 검색 기능이 없어서 자기가 쓴 내용을 다시 확인하기 어려워서 그런건가? 의아했다. 소설 [비호외전]은 절판이라 확인할 수도 없다. 그래, <비호외전>은 [설산비호]와 거리가 멀다고 치자! 그런데 <설산비호>는 왜지? 결론적으로 소설 [설산비호]와 중드 <설산비호>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고 차라리 중드끼리인 <설산비호>와 <비호외전>이 더 닮은 점이 많다. 두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인 원자의는 [설산비호]에서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아마 [비호외전]에서 등장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설산비호>를 만든 사람은 [설산비호] 대신 [비호외전]을 읽고 <설산비호>라고 드라마를 만든 것이 되는데 왜 그런 거야??? 이건 김두한의 자서전을 읽고 '김좌진'이라고 제목을 붙여서 영화로 만드는 것과 같잖아??


제목이 [설산비호]인데 주인공 호비의 비중이 적다는 것은 반전이다. 백설공주가 아닌 일곱난쟁이가 주인공인 <백설공주> 같달까? 드라마 <설산비호>와  <비호외전>에서는 호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보면 볼수록 <설산비호>에서는 악역인 전귀농이 주인공 같다. 호비의 아버지 호일도와 묘약란의 아버지 묘인봉의 대결에서 둘을 모두 없애려했던 악역인데 <비호외전>에서도 그렇지만 순정파이기도 해서 씬스틸러이다. 드라마의 후반으로 갈수록 존재감이 강해지니 이것은 <설산비호>인가 <천룡문전귀농>인가! 아무튼 같이 보는데도 각각 다른 세 작품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 작품 모두 재미가 있었다.


앞서 소설 [설산비호]의 여러 장치들이 재미를 더한다고 하였는데 드라마 <설산비호>는 여배우들의 캐스팅이 무척 좋았다. 원자의의 성숙미, 남란의 여성미, 묘약란의 발랄함이 잘 느껴졌다. 반면, 남자 배우들은 원래 설정을 너무 잘 따른 걸까? 악역 전귀농에 비해 명색이 주인공인 호비와 묘인봉은 개방파도 울고갈 정도로 거지꼴을 하여 감정 몰입이 전혀 안 된다.  서브 남주인 묘인봉은 아내를 전귀농에게 뺏기는 역할인데 <비호외전>에서는 임우신이 묘인봉 역할이라 그를 버리고 떠난 남란을 나도 같이 원망하며 보았건만 <설산비호>에서는 남란에게 이입을 하며 나라도 떠났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호비도 마찬가지다. <비호외전>에선 진준걸이 호일도와 호비 1인 2역을 하며 호일도일 때에는 남성적으로 분장하고 호비일 때는 변발로 수수하게 분장하여 소년의 성장담을 느끼게 한데 반해 섭원의 분장은 해석이 불가능하다.

이런 지경이니 <설산비호>는 자꾸 내 눈길을 벗어났다. 후반에 전귀농에게 묘약란이 연골산이라는 독약을 먹이려고 하는 부분이나 철화회라는 반청조직의 움직임 부분에서는 좀 집중해서 봤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쉬움이 많다. 철화회의 수장인 진가락과 건륭제의 총애를 받는 복강안의 관계나 쌍둥이같은 외모 설정 등 각본에서는 여러 노력을 많이 기울인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캐스팅이나 연출력이 아쉽다. 좋은 배우들을 좀더 잘 살렸으면 어땠을까? 단순히 오래된 드라마라 그런 것 같지는 않게 묘하게 어긋나 있다.


반면 <비호외전>은 원작은 읽지 못했지만 외전의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호비가 성장하는 과정담 말이다. 배우의 퀄리티는 <설산비호>가 <비호외전>에 못지 않지만 <비호외전>의 감독이 좀더 디테일에 강하고 아름다움을 크게 그릴 줄 아는 살마 같달까? 아무튼 올 가을을 이 세 작품으로 잘 보냈다. 원작 [설산비호]를 살려 천룡문의 후대인들과 보수대사 등이 출연하는 작품을 보고 싶은데 올해 <비호외전>이 나왔으니 당분간 드라마로는 어렵겠다. 영화를 기웃거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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