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뭐든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횸흄 Oct 20. 2022

[문화일기] 나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

코로나를 겪은 이후부터는 외부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활발해졌다. 코로나 이전에 유년기를 맞았던 큰 아들은 이런저런 문화 생활을 많이 하면서 자랐는데 코로나 이후에 유년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은 극장 한 번 가기가 어려워 내내 미안하던 참이었다. 비교적 멀리 나간 것이 올초 마티스 전시였으니 그전까지는 동네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마티스 전시를 보던 아들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눈과 머리, 가슴으로 작품을 보는 나와 달리 아이는 온몸으로 작품을 감상했다. 그렇게 보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이 아이와 더 많은 전시회를 다녀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관에서 한국 작가 문신의 전시를 지인들과 함께 보았다. 누군가의 제안에 오랜만에 전시를 관람하고 덕수궁에 간다는 사실에만 들떠 '문신'이 사람의 이름인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타투를 감상할 마음을 가지고 갔다가 당황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작가를 나는 왜 그동안 이름조차 몰랐던 걸까?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함께 간 이들 중 최근 이건희 컬렉션을 알아본 이를 제외하곤 아무도 이 문신이 그 문신인 줄 몰랐다. 나만 타투를 떠올린 게 아니었다. 그렇게 백지의 상태로 당황스러움을 안고 들어간 전시장은 작은 감탄사들로 채워졌다. 이건희 컬렉션에서 소개된 <닭장>을 비롯한 회화들도 물론 매력적이었지만 목조각품과 청동조각품의 아름다움은 놀라웠다. 토테미즘 같기도 하고 우주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SF 영화에 등장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곡선의 대칭을 기반으로 변형을 기울인 작품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괜시리 심오해졌다. 작품마다 하나의 세계가 들어가 있는 듯했고,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우주로 보였다. 미술관을 나오며 밖에 설치된 작품을 보았을 땐 고은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아는만큼 보인다는 진리가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전시회를 다녀오고 머지 않아 아이와 포켓몬미디어전을 보러갔는데 그곳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도리어 같은 건물에 위치한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관람한 <네모난 오아시스전>이 10000배는 좋았다. 어린이 관람객을 염두에 둔 곳이라 사이사이 조작활동을 배치하여 꽤 진지한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이 전시를 무척 좋아했다. 다시 오자고 할 정도로. 그림책작가들은 모두가 작가이기 이전에 화가인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미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그것이 아이와 어른에 보편적으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아무런 설명없이 관람만 하는데도 마음이 충만해졌다. 단순하지만 빛나는 아이디어들, 주변의 무엇이든 캔버스 안에 담아 전달하는 유연함을 느꼈다. 매번 그만둔다 그만둔다 하면서도 계속 잡고 있는 선생이라는 직업에도 써먹을 아이디어들이 많아 사진을 찍어두면서도 혼자 피식 웃었다. 그래, 내일 당장 그만둘 값이라도 하는 만큼은 잘 해야하니까.

 그리고 며칠 전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전을 보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을 방문했다. 큰 아이가 유아일 때 제주도 이중섭기념관에서 본 이후로 원화 감상은 처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은 시간이 남아 먼저 들른 미술책방에서 더 일렁였다. 세상에 이렇게 반짝이는 사람들이 많구나! 자극을 받았다. 며칠 전 문신전을 감상하면서 마음 속으로 이중섭과 비교했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두 사람인데(물론 문신이 훨씬 더 오래 활동했지만) 우리는 이중섭만을 그 시대 대표 화가로 배웠다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문신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노릇이고 그때 전시를 보고 오니 문신의 작품이 이중섭만 못한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의아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화가의 리스트란 대한민국의 겪은 역사와 무관할 수 없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러 어느 정도는 수긍을 했다. 그러하기에 이번에 만날 이중섭전은 좀더 특별했다. 내심 "그래,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고!" 이런 마음도 없지 않았다.


1940년대부터 50년대까지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가 그린 그림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봤을 때는 도슨트와 함께 다녀 그의 슬프고 외로웠던 삶에 더 집중해서 작품을 봤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모조리 우울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본 바로는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외롭고 아픈 삶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수한 편지를 전하고 받고, 주변에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는 것이 작품들에게서 느껴졌다. 사랑을 가진 사람은 비록 평탄하진 않아도 불행하지는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그가 아내에게 보낸 엽서화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70장이 넘는 엽서화들, 그것을 그려 보내면서 호칭을 마사코에서 남덕으로 바꾸면서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세기의 사랑꾼으로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도리어 큰 화폭으로 그린 그림들이 더 낯설었다. 작은 엽서, 은지, 어디선가 났을 것만 같은 길고 얇은 종이들에 그려진 그림은 그가 가족 뿐만 아니라 얼마나 그림을 사랑하였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랑이란 환경을 따지지 않는 법이다. 역동적인 펜의 선과 거침없는 표현을 보며 그림은 이렇게 그리는 것이구나 자유로움을 느꼈다. 관람 전 내심 먹었던 두고보자는 마음은 "역시는 역시구나!"로 바뀌는 순간이다.

오늘은 아이를 데리고 우키요에를 보러 갈 예정이다. 최근 미술 관람을 하면서 받은 좋은 영감들을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물론 아이는 우키요에 작품 보다는 박물관 바깥의 전차와 4층의 도시모형영상관에 더 현혹되겠지만 무엇이든 아이가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우키요에를 보고 너는 서울을 보자꾸나! 미술이든 역사든 과학이든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계를 잠깐 보며 영감을 얻어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맛을 우리 같이 느껴보자꾸나!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일기] 짧은 여행, 춘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