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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Dec 08. 2022

[중드일기] 천룡팔부 소설 VS 2021 VS 2003

한창 중국사에 빠져들고 있던 1년 전 쯤에 무협 소설도 하나 소장해보고 싶어서 [천룡팔부] 세트를 구매했다. 책장엔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식탁 구석에 1년째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의 어느 날 밥을 먹던 작은 아들의 질책이 있었다. 

"이효민씨, 도대체 저 천룡팔부는 언제 읽을 거죠? 읽지도 않을 걸 왜 샀죠?"

제 딴엔 아무 생각없이 보이는 대로 말한 것이겠지만 내게는 따끔한 말이었다. 이녀석 대리국 단씨의 후손인가 말로 일양지를 쏘는 것 같아......


그러고도 한참이 지났고  <천룡팔부 2021>을 보기 시작할 때 소설을 하나씩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 게 현재 2권이니 아들이 말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셈이다. 이 녀석은 이 책을 볼 때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니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 한다. 

"드디어 읽는군요!"


<천룡팔부 2021>은 작중 주인공인 교봉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포스터의 메인에 있으니 그럴만도 하고 어느 회차까지 본 바로도 교봉이 작품의 중심에 있다. 중국판 포스터에서는 쓰리탑이 대등하게 그려져 있지만 지금까지 본 바로는 교봉이 등장하지 않는 회차에서도 교봉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크다. 

거란족 소씨이지만 한족 교씨로 자라 '북교봉 남모용'이라 불릴 정도로 무림의 고수가 되고 송나라의 국방을 위해 힘쓴 개방의 방주인 교봉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겪는 성장담이 교봉 스토리의 중심축인데, 양우녕의 외모가 교봉과 썩 잘 어울린다. 과거 <상양부>에서 곱디 고운 자담을 연기했을 때는 세상 안 어울렸는데 개방파에는 너무 잘 어울리니 다시 생각해도 <상양부>의 캐스팅은 옳지 않았다.


  아쉬운 건 단예인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안정된 연기력이 첫 인상의 아쉬움을 달래준다만 그래도 2003의 임지령이 자꾸만 떠올라 보는 내내 아쉬워했다. 소설은 2권까지 내도록 단예의 이야기만 그려진다. <천룡팔부 2021>은 교봉이 문을 열었지만 주로 단예의 스토리(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이복남매들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와 교봉의 방황기, 가끔 나오는 허죽의 시동걸기 전의 모습이 초반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소설에서는 아직 교봉도 허죽도 만나지 못해 단예 원탑인데 드라마는 진도가 쭉쭉 나가니 제동이 필요했다. 물론 단예와 왕어언이 등장할 때마다 임지령과 유역비가 자꾸 보고싶어진 까닭도 있다. 그렇게 <천룡팔부2021>은 25화에서 멈추고 <천룡팔부 2003>을 시작했다. 


 <천룡팔부 2021>은 교봉의 등장은 인상적이었고, 단예는 좀 아쉬웠고, 허죽은 반가웠는데 세 사람을 비롯하여 조연들까지도 모두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펼치고 있어 전반적으로 볼 만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천룡팔부 2003>은 그런 분석이 필요없다. 인물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등장할 때 마다 숨이 잠시 멎을 정도로 너무 캐릭터와 잘 어울려서 2021년 버전이 새삼 그저 그런 작품으로 느껴진다.  아직 아주 역할의 류타오는 등장하지도 않은 상태인데 벌써부터 2003년 버전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진다. 2021년을 보면서 단예와 더불어 아쉬웠던 역할이 아주 역할이었는데 류타오라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기 때문이다. 

<천룡팔부 2003>은 교봉의 부모가 갓난 교봉을 안고 안문관을 지나는 이야기에서부터 지나간다. 2021년 버전에는 이 장면이 강민의 모략으로 교봉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 때 나오는 사연이고, 소설에서는 아직 교봉의 교자도 나오지 않았다.  교봉 등장 전 소원산으로 1인 2역을 한 호군의 연기력이야 말해 뭐할까? 게다가 외모도 양우녕에 못지 않게 개방파의 느낌이 물씬 난다. 어디 호군 뿐인가? 이제는 안구 정화 타임이다. 임지령은 2003년에도 아직 저렇게 풋풋하다니 호군보다는 유역비와 나이차가 더 적게 느껴질 정도이다. 유역비는 앳된 시절부터 절세가인이었다. 최근 <몽화록>에서 본 느낌과는 달랐지만 이 모습은 이 모습대로 그 모습은 그 모습대로 아름답다. 왕어언의 역할에도 잘 맞는 캐스팅이다. 2021년의 목완청도 나쁘진 않았는데 도포를 벗는 순간의 숨이 멎는 효과는 장흔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강민 역의 종려시 역시 마찬가지이다. 강민이 등장할 때 그 미모에 개방파가 들썩이는데 2021년에는 미모에 들썩인다기 보다는 요염함에 들썩여 보였고, 2003년 버전에서야말로 미모 자체로 들썩인다 할 수 있다. 이제 고작 2부밖에 보지 못했는데 아주까지 등장하면 아주 푹 빠질 것만 같다. 류타오가 변장을 어떻게 소화해낼까 기대가 된다. 


예전에 어떤 교수님이 말씀하신 일화가 생각난다. 대학에 근무하면서 동료 음대 교수의 콘서트에 가곤 했는데 갈 때마다 기분 좋게 듣고 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조수미 콘서트를 다녀오고 나서는 동료 교수의 노래를 듣기가 힘들어졌단다. 더 나은 것을 보고 들은 후에는 그전에 잘 듣고 보던 것도 비교대상이 생겨 괜히 볼품없어 보인다는 말씀이셨다. 지금 딱 내가 그 기분이다. 2021년 버전에 대단히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볼 만하다고 평하며 보고 있었는데 2003년을 보고 나니 2021년은 좀 부족해보인다. 실수로 2013년 버전을 켰을 때가 있었는데 주연배우들이 등장을 해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 '이건 뭔가 잘못 됐'다며 채널을 수정했다. 2003년이 월등이 좋고, 2021년이 볼 만하고, 2013년은 미안하지만 건너 뛰어도 좋을 것 같다. 


소설 이야기를 많이 빼놓은 것 같은데 읽을수록 김용이라는 작가에게 존경심이 생긴다. 가령 2021년 버전에서 단예을 감금한 악관만영(과거 대리국의 태자였던 단연경)은 대리국 황제인 보정제와 무술 대결을 하는데, 소설에서는 보정제의 부탁을 받은 천룡사 황미대사와 악관만영의 바둑 대국으로 진행되는 장면을 비교했을 때 소설의 장면이 훨씬 멋이 있다. 다른 무협지를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각 문파의 무공 등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한 것 같아 알아먹지 못하는 사자성어들의 향연이지만 왠지 알고 싶어진다. 요샛말로 클라스가 느껴진다.


소설과 발맞추어 2003년 버전과 소설을 함께 읽어나가다가 소설에서 교봉의 사연과 허죽의 활약이 등장할 때쯤 2021년 버전과 2003년을 함께 볼 예정이다. 비교를 당하는 두 작품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두 작품 모두 놓치고 싶지 않다. 이것도 애정이니 나의 애정을 받아주겠니, 천룡팔부? [천룡팔부]를 이렇게 또 파고 있으니 아들에게 더이상 질책은 받지 않겠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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