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의 가장 내밀한 루틴을 4남매 독박육아를 통해 배웠다.
쉼 없이 밀려오는 무지개 사춘기와 맞짱을 뜨다가 어느 날 문득 품격 없이 소리 지르는 나 자신에게 놀라 거울을 들여다봤다. 낯빛은 어둡고 화로 가득 찬 얼굴, 마녀가 이리 생겼겠지?
딸들이 “엄마, 소리 지를 때 마녀 같아”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현모양처, 우아, 품격. 내가 좋아하고 듣고 싶어 하는 단어들.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었던 나라는 여자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중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때쯤 어느 날 3교시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리더니 첫째, 범이의 담임 선생님 번호가 떴다.
“다름이 아니라 범이와 몇 명 남자아이들이 체육 시간에 강당에 있으라는 체육 선생님의 지시를 무시하고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했습니다. 교칙 위반으로 반성문을 쓰게 했고 댁에서도 부모님께서 잘 타일러 달라 말씀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통화하는 중이라 솟구치는 감정을 겨우 눌렀다. 전화를 끊고는 한참을 멍하니, 죽은 듯이 숨도 쉬지 못했다. 며칠 상간으로 학원에서도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기물파손이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를 붙잡고 울며불며 소리를 질렀다. 범이가 이유를 이야기했지만,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키가 170센티미터를 넘어가는 녀석을 때릴 수도 없어 바들바들 떨면서, 끝까지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젖 먹던 기운까지 모두 모으려 안간힘을 썼다. 이후 나는 눈에 띄게 외출이 줄었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운동도 그만두었다.
6개월이 넘도록 집에만 있었다. 겨우 일어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꼬리를 무는 잡념과 걱정, 어김없이 그 뒤를 따르는 화가 매일 반복 되었다. 내가 잘 못한 일도 아닌 일에 허리를 숙이고‘죄송하다’말 해야 하는 것이 죽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다. 밥도 잘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니 살이 6kg이나 빠졌다. 남편은 독하다며 나를 나무랐고 딸들은 눈치만 살폈다. 여전히 범이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나는 매일 누굴 위한 건지도 모를 행동을 하며 천만 가지가 넘는 무너질 이유를 찾아 나를 죽이고 있었다. 무너지는 나를 보며 식구들이 나보다 더 아프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다 문득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 덜컥 겁이 났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나답게 살고 싶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유치원 버스를 태우러 나가면서도 에나맬 녹색 부츠를 자신 있게 꺼내 신고 한 여름 핫핑크 어그도 개의치 않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거울 앞에 섰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일단 필라테스부터 등록했다. 남편출근, 4남매 등교의 분주한 아침 시간이 지나면 필라테스로 달려갔다. 밖으로 한 발, 겨우 걸음을 뗐다. 땀을 흘리고 돌아와 청소기를 돌리고 락스를 뿌려가며 화장실 청소까지 마무리하면 드디어 나만의 시간.
이제 옷장 앞에 선다. 오늘은 시크한 블랙이 좋겠어.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셀프 스타일링을 시작했다. 오늘은 작은 진주목걸이로 포인트를 줘야지, 어울리는 진주 반지도 슬쩍 손가락에 끼웠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같다.
‘아쉽다! 하이힐까지 신어줘야 기분이 확 사는데….’
발을 내려다보니 구색 없는 슬리퍼가 영 눈에 거슬린다. 신발장으로 달려가 잘빠진 블랙 스텔레토힐에 발을 밀어 넣었다. 방구석 패션쇼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내 영혼의 짝은 ‘미란다’다.
나의 10대, 친구보다 더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은 501 리바이스 청바지였다. 몇 달 동안 적은 용돈을 모아 샀지만, 부족할 때는 울고 떼를 써서라도 기어이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 또래 아이들이 열광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HOT, 신화보다 나는 쎄씨나 보그 같은 잡지를 더 사랑했다. 어릴 때부터 봐온 보그 편집장‘안나 윈투어’의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미란다’는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마다 나를 위로하는 아직도 내겐 소중한 존재다.
미란다가 입고 나온 프라다의 검은색 브이넥 드레스. 어떤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는 여유와 당당함! 턱을 추켜세우고 악센트를 주어 내뱉던 간결한 말투까지. 자신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게 하는 이 영화를 나는 스무 번도 넘게 보았다. ‘미란다’까지 소환하고 나서야 깜깜한 지하층까지 추락한 나를, 나는 지상으로 겨우 끌어낼 수 있었다.
차르르 실루엣을 따라 흐르는 블랙 원피스를 입고 사랑스러운 진주 세트까지 곁들어 맞춤으로 꾸민 후에야 나는 부엌으로 향한다. 하교 시간에 돌아온 아이들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눈치를 슬슬 살핀다.
나도 이렇게 차려입은 날이면 살림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 악센트로 힘을 실으며 말을 절제한다. 마치 미란다처럼!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선택한 나와의 약속이랄까. 정체성 혼란, 폭언이 나오려는 화를 참기 위해 찾은 나를 돌보는 방법. 내가 나를 표현하는 가장 엣지 있는 선택은 바로 방구석 패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