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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키 Feb 13. 2024

비우는 것보다 힘든 건 떠나는 거라

먹고살자고 생존 여행 4

마음의 쉼을 찾았던 우붓, 상상 속의 발리가 ‘딱 이거지!’ 했던 길리섬에 이어 지금 가장 핫하다는 짱구로 넘어왔다. 거리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서퍼들로 활기가 넘쳤다. 여기 동해 아니냐는 남편의 농담처럼 편안한 휴식의 시간 덕분에 나는 휴양지 짱구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걸음마다 차고 넘치는 카페, 해변의 낭만이 가득한 디자이너 부티크 숍, 전 세계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현지 레스토랑까지 구석구석 자신만의 색깔과 매력을 확실히 드러내 지루할 틈 없이 걸었다. 강렬한 석양이 물드는 시간, 비치클럽에서는 바다와 하늘이 동시에 담기니 눈이 황홀경이다. 우리는 퍼센트 모양의 로고가 이색적인 소위 ‘응 커피’ 카페에서 진한 풍미를 자랑하는 말차 소프트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혔다. 

 철두철미 계획형인 나는 떠나기 전, 발리에 관한 책 두 권을 독파하고 유튜브를 보고 또 보며 14일간의 발리 여행을 일 단위로 준비해 두었다. 도착한 후 일주일은 모든 일정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며칠뿐이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 귓가에 ‘엄마! 엄마!’ 환청이 들릴 지경이었다. 모든 순간이 다 좋았던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아무 의욕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남편과 상의한 후 아이들에게 미션을 주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성범이가 선택해 볼래?”

 “나연이는 디저트 카페 찾아볼까?”

 “태희야, 그랩 불러보자!”

 아이들은 갑자기 왜 이러냐는 눈빛을 보내고 온몸으로 귀찮다는 사인을 보내면서도 각자 휴대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믿고 기다렸다. 그런 언니 오빠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막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빠! 나는 내 차례에 맥도널드 먹어도 돼요?” 

 우리는 막내의 귀여운 진심 덕분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가끔 이런저런 일들로 당황했지만 해변들은 아름다운 석양을 즐기기에 좋았고 발리로 몰려드는 외국인들의 다양한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채로운 음식점에서 즐긴 여유는 선물 같았다.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을 맞추는 흉내도 제대로 냈다. 눈만 돌리면 매력으로 넘치는 발리를 마음껏 누비며 매일 사랑했다. 일어나 바이크를 타고 서핑하기 좋은 파도의 시간을 기다리며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 코코넛을 마시는 여유 있는 아침. 한바탕 바다와 거세게 힘겨루기 하고 바라보는 드넓은 바다로 펼쳐지는 해 질 녘 노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돌아갈 날짜가 다가오니 하루하루가 아쉬워 애가 타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손가락을 꼽으며 돌아갈 날만 기다렸다. 이 순간을 즐길 줄 모르는 아이들이 안타까웠지만 경험치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 받아들이고 하나씩 가르치며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컴백 홈 갓생을 꿈꾼다!

 처음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관광이 아니라 쉼이 있는 힐링이 목적이었다. 하여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의 일정은 넣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마지막 날 가족회의 결과 발리 남부 해변 일일 투어는 하기로 정했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여행 캐리어는 호텔에 맡겨둔 채 투어 차량에 올랐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2시간을 달려 남부로 이동했다. 남부에는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파당파당 비치’가 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보았던 해안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변. 절벽의 커다란 돌 틈,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공간을 내려가면 천국을 연상케 하는 해변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밖에도 70미터 높이의 해안 절벽에 세워진 힌두 사원, 합창과 군무로 이루어진 케착 댄스도 감상할 수 있다. 이동하는 틈틈이 가이드는 친절한 설명과 추억이 될 인생샷도 찍어주었다. 마지막으로 해변을 바라보며 저렴한 가격으로 짐바란 해산물을 맛볼 수 있었는데 4남매가 가장 기다리던 순서였다. 아름다운 비치에서 저녁 식사까지 기분 좋게 마무리하니 벌써 공항으로 이동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주했던 바다였는데 술기운이 올라와서였을까 마지막 날이라 그랬던 걸까 가슴이 뭉클했다. 눈가가 촉촉이 젖은 나를 보며 남편은 손을 꼭 잡고 다시 오자며 이마에 입 맞췄다.

 내가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 중 하나였던 발리. 그래서 기회가 찾아왔을 때 큰 고민 없이 선택했다. ‘비우는 것보다 힘든 건 떠나는 거라’는 영화 대사가 나에게 떠날 용기를 줬던 것처럼 발리는 수만 가지 이유로 나를 축복했다.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이치를 가르쳐 주었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은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해 주었다.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준 발리 굿바이! 다시 돌아올 날을 꿈꾸며 우리의 추억 앨범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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