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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키 Feb 21. 2024

이 생각 저 생각 딴 생각

인생 후반전을 시작해

2024년으로 해가 바뀌기 무섭게 연달아 힘든 일들이 겹쳐 몸이 아팠다. 새날 액땜하는 거라며 스스로 위로 하자는 마음에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올 때는 확 바뀌었을 나를 상상했지만 적응의 동물은 현실과 타협하기 바빴다. 고3이 된 아들과 진로에 대해 서로 의견이 엇갈려 언성을 높이고 ‘학원의 노예는 그만!’이라는 호기로운 선언이 무색하게도 보강날짜 잡겠다며 아이들을 다그쳤다. 

 매일 반복되는 언행 불일치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찝찝한 기분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행 중에 썼던 일기장을 펼쳤다. 

 발리에서 돌아오자마자 최고의 직업이라는 주제로 데일리 리더 발표가 있어서 틈틈이 조사를 시작했다. 직업으로만 검색을 시작했고 어떤 직업을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자료를 모았다. 

 ‘최고의 직업?! 유튜버? 컴퓨터 사이런스? 데이터분석?’

 그러다가 발리에서의 4남매가 떠올랐다.

 “부끄러워. 귀찮아. 아무거나.” 

 세 단어로 나를 상실감에 빠지게 했던 녀석들, 아이들의 무기력을 지켜보다가 생각이 꼬리를 물어 밤새 남편을 붙들고 나눈 긴 대화도 기억해 냈다.

 “나는 아이들 공부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 보는 눈을 좀 키우면 좋겠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난 당신이 매일 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가끔은 답답해 보여.” 

 퇴근 후 양손 가득히 아이들 간식을 사서 들어오는 남편을 향해 공부 흐름이 끊어지는 게 싫어 야리던 나의 시선을 마음에 두었나 보다. 

 어떻게 키워야 옳은 걸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내 아이들은 과연 도전을 멈추지 않고 살아 낼 수 있을까? 

 한 번도 의심하지 못했던 방향들이 고개를 들었고 생각은 점점 부풀어 갔다. 걱정 많고 생각 많은 나를 보며 보태는 남편의 잔소리는 언제나 옳았다. 나는 아이들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자유롭지 못하다.

긴 여행 끝에 명절 연휴까지 겹치니 나도 아이들도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늘어지는 몸뚱어리는 ’침대 밖은 위험해‘ 외쳐대고 있었다. 하루는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늦은 저녁이 되면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식탁에 앉아 무심하게 가버린 하루를 원망했다. 

 “연휴에 800문제를 풀어오라니 너무 하시는 것 아니에요?”

 “학원 가기 싫은데 그만 다니면 안 돼요?”

 희야는 오늘도 고장 난 라디오가 되어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벌써 9시가 넘었어. 나 글쓰기랑 영어 챌린지도 해서 올려야 하는데.”

 각자 발등 위에 떨어진 불씨를 끄며 하소연만 오갔다. 일단 나부터 정신을 차리지! 싶어서 서둘러 노트북을 켰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이들은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할 일 끝내고 하는 거냐는 물음에는 시선을 돌렸다. 잔소리가 하고 싶어 근질거렸지만, 오늘만은 아이들 마음이 이해가 됐다. 나도 이렇게 루틴 잡기 힘든데 흥미도 없는 공부와 학원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그 상황이 얼마나 답답할까. 따뜻한 코코아를 타서 아이들을 불렀다. 

“달달한 코코아 한 잔 마시고 내일부터는 파이팅해 보자.”

 평소와 다른 엄마의 행동에 아이들 표정은 놀란 토끼가 되었고, 코코아 한 잔에 녹는 아이들을 보니 살얼음 같던 집에 온기가 돌았다. 

          

엄마의 의무라면

 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와 부엌으로 향하는데 아들 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똑.똑. 범 엄마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으며 이수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며칠째 맞추더니 오늘은 작정하고 끝낸 것이다.

“오늘 몇 시에 학원가니?”

“11시요”

“거의 끝난 거지? 어서 마무리하고 자”

“네. 10시에 깨워 주세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줌을 켰다. 며칠 전 진로로 다툼 한 후 첫 대화였다. 발표 준비를 위해 찾았던 자료에 의하면 범이는 적성에 딱 맞는 일을 찾았을 때 최고의 몰입을 할 수 있는 적합 이론가에 속했다. 그러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게 탐색할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하는 것이 내가 엄마로서 도와야 할 부분이었다.

 46년 만에 처음으로 나도 내가 뭘 잘하는지 들여다보며 가슴이 설레는 경험을 했다.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해 온라인에서 ’옷‘ 판매를 시작했을 때 들었던 생각,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스타일 가이드로 코칭을 했을 때의 떨림을 잊을 수 없다. 현재는 이 길을 걸어가기 위해 ‘이미지 컨설턴트 양성자 과정’을 공부 중이다. 

 지난 1년 동안 나를 성장시킨 것 중 하나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마음이었다. 마인드 셋을 통해 나의 본질을 파악하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고 겁내지 않기. 작은 성취감의 행복을 알려주고 용기 낼 수 있게 힘써야 하는 엄마인 나에게 부여하는 새로운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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