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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키 Apr 04. 2024

나의 비밀 아궁이

주일이면 내가 나에게 주는 4시간의 자유시간이 있다. 사우나 가방을 챙기는 날 보며 남편은 아이들 밥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다녀오라며 배웅한다.

 “이모 안녕?”

 “현 왔어? 애들은 어쩌구?”

 “오늘은 자유야. 남편이 저녁까지 챙긴다고 쉬었다 오래”

 17년 차 단골손님인 내게 이곳은 편안한 안식처이다. 눈빛만 마주쳐도 내 마음을 알아채고 시원한 얼음 맥주와 땡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마요네즈 양념에 바싹하게 구운 문어를 내오는 센스 만점의 스넥 이모는 입구에서부터 나를 환영하며 자리를 마련해준다.

 2층 지압 이모에게 문자를 보낸 후 5분짜리 모래시계를 들고 이제 막 뜨거운 기가 가셨을 한증막으로 들어갔다. 정사각형 철문으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면 4m는 족히 넘는 높이의 넓은 공간에 거적을 둘러쓰고 빼곡히 앉아 땀을 빼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에 들어갈 때 예절은 들고 들어간 거적을 살며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처음 온 사람들이 뜨거운 열기에 놀라 던지듯 내려놓다가 핀잔을 듣는 경우를 종종 봤다. 처음에는 이런 광경을 목격할 때 상냥하지 못한 그 사람들이 불쾌했다. 한번은 두고 보다 “좋게 말씀하셔도 될 거 같은데요.” 하며 거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쌍욕을 얻어먹었던 경험이 내게도 있었다. 하여 터줏대감들이 많은 여성 전용 사우나에서는 눈치를 잘 보며 알아서 환경에 적응해야 오래오래 한증막을 즐길 수 있다는 나름의 개똥철학을 갖게 되었다.     

 5분짜리 모래시계가 두 번 돌아갈 때까지 나는 노폐물을 몽땅 빼내겠다고 작정하고는 육수를 한 바가지 흘리는 중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길래 마침 나가려는 옆자리 아주머니 한 분을 따라 일어섰다.

 “오늘 막 좋다. 문 잘 닫고 다녀라.” 

 큰 소리로 훈수하는 왕 할머니는 2층 식당 이모의 언니다. 파주에서 40년 동안 기사식당을 하며 자식을 키우고 지금은 그 자식 내외와 함께 일하신다. 그 연세에도 새벽 2시 30분이면 일어나 식당으로 출근하는 왕 할머니는 주말마다 아들 차를 타고 이곳에 오신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손도 크고 정도 많아 왕 할머니가 나타나면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나도 가끔 붙들려 막걸리를 두세 번 먹었는데 그때마다 몸 고는데 젊은 게 애를 왜 그렇게 많이 낳았냐고 핀잔이시다. 내가 좋아하는 감자전 접시를 밀어주는 왕 할머니의 손등에서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세월의 고단함을 본다. 하여 나는 내게 던지는 그 퉁명스러운 말투까지도 정이 느껴져서 좋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의 열기는 냉탕 입수와 동시에 차갑게 식는다. 지하수 물을 끌어 쓰니 겨울에는 머리가 쭈뼛 설 만큼 차가워 뜨거운 한증막과 딱 맞는 짝꿍이 된다. 다만 성인 두 명이 들어가면 맞춤이고 세 명이 들어가면 넘치는 크기가 문제인데, 먼저 들어간 사람이 눈치껏 빠져야 예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주머니 두 분이 들어오길래 나는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땀을 흘리고 돌아온 자리에는 시원한 얼음 맥주와 코끝을 자극하는 구운 문어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역시 스넥 이모가 짱이다. 매서운 눈썰미로 단골들의 마음을 읽는 그녀만의 센스는 20년 차 문지기로 시작해 젊은 청춘을 이곳에서 울고 웃으며 통달한 것이겠지. 젊어 과부가 된 이모는 슬하에 딸 하나가 있다. 4년 전 그 딸의 결혼식장에서 신부 측 혼주 자리에 앉아 있는 이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연이 이런 우연이 있을까? 그동안 들었던 사연 속 주인공 아가씨가 우리 아이들의 스키 강사였다니. 이후부터 이모와 나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관계가 생겼다. 가끔 사장님 몰래 티켓 몇 장을 서비스로 주며 윙크를 날리기도 하고 오늘처럼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날에는 낮술을 나누어 마시며 무심하게 져버린 이모의 청춘을 위로했다.      

 바닥도 따뜻하고 배도 부르니 눕고 싶다. 점점 찌고 있는 뱃살이 두려워 가져온 책을 집어 들었다. 이제 막 첫 책장을 넘기는데 문자가 온다. 

‘징~’

‘올라오세요’ 

 17년 전 처음 이곳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일주일 또는 2주에 한 번 지압을 받는다.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자 깡마른 몸, 수건을 두건처럼 둘러쓴 이모가 이불을 정리하다 말고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다. 대체 저 마른 몸 어디에서 힘이 나오는 걸까. 의문이다. 손을 쓰는 직업이니 고질병이 생길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다. 언젠가 체질인가 봐요, 말을 건넸더니 40대 초반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이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본인이 아프면 안 되었기에 매일 손가락 관절을 보호하는 운동과 셀프 마사지를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했다. 작은 골방에서 24년을 일해 온 이모의 꿈은 3년 뒤 은퇴하여 남편과 멋진 호텔에서 잠도 자보고 비싼 음식점에도 가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다. 분기마다 남편과 아들에게 넉넉하게 넣은 하얀 봉투를 건네며 기분 낼 줄도 알고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지도 잘 아는 이모였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써본 적이 없었다. 여행 한 번 다녀보지 못한 성실한 자영업자의 꿈은 눈물이 날 만큼 작고 소박했다. 이제 그 꿈은 3년도 남지 않았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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