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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Nov 22. 2022

알고 보니 내가 춤신춤왕...? 일리는 없지만

흥많끼없의 댄스 수업 체험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스윙 댄스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알고 보니 시작한 지는 꽤 되었고 잘 맞는지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스윙 댄스 썰을 풀면서 나나 다른 친구들에게 추천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서 친밀함이 묻어나는 동작을 하는 스윙 댄스는 유교걸인 나에게는 섣불리 시작하기 힘든 분야였다. 그래도 스윙 댄스의 재미에 푹 빠진 친구를 보면서 춤을 배우고 싶어졌다. 유튜브로 아이돌 영상을 자주 보니 방송 댄스가 제격이었다. 사실 예전부터 춤을 춰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학창 시절에 무대 위 아이돌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들의 에너지를 화면 너머로 전달받아 제대로 응답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내가 본 것을 머리에 입력할 수는 있는데 출력할 때 오류가 나는지 화면 속에 그들과는 다른 몸짓을 보여주고는 했다. 전국노래자랑 무대 앞줄에서 흥에 겨워 덩실덩실하는 어르신들과 비슷한 춤사위였다. 



춤을 배우러 간다고 하니 사람들 반응이 예상외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춤을 잘 추는지 물었다. 모르니깐 배우는 건데 실력을 확인하는 게 의아했다. 사람들은 뭔가를 배울 때 아예 재능이 없거나 접한 경험이 없으면 잘 시도하지 않는 듯했다. 내 춤 실력을 알면서도 배우는 일 자체는 창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후기나 알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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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글렀으니 복장으로나마 느낌을 내고 싶어서 평소에 입지 않는 스타일의 옷을 골랐다. 통이 넓은 배기팬츠에 딱 달라붙는 반팔을 입었다.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에 흡족해하며 수업 장소로 향했다. 미천한 춤 실력을 고려해 개인 강습을 선택했는데 선생님과 나 둘뿐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긴장되었다. 앞 시간 수업이 끝나고 연습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연습실은 두 면이 거울로 이루어진 방이었다. 안무 영상에서 자주 보던 구조였다. 선생님이 블루투스 스피커에 핸드폰을 연결하는 동안 짐을 정리하고 옷 매음 새를 다듬었다. 진짜로 댄스의 세계로 입문한 느낌이었다. 댄스도 일종의 운동이기에 앞서 오분 정도 스트레칭했다. 꽤 격한 동작에 관절과 근육이 소리를 치고 나도 소리를 치고 싶었으나 헬스장이 아니어서 호흡만 깊게 들이쉬고 내쉴 뿐이었다. 이거라도 참고 해야 부상이 생기지 않을 거 같아서 이를 꽉 깨물고 스트레칭을 이어갔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선생님이 진도 부분을 보여줬다. 수업 신청할 때 골랐던 ITZY의 Sneakers 하이라이트 30초 부분이었다. 안무를 보면서 이제야 실감했다. 내가 진짜 춤을 배우러 왔구나. 근데 이걸 오늘 안에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내 얼굴을 본 선생님이 가능하다며 격려해주었다. 나 진짜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줄 때는 굉장히 율동처럼 간단해 보였지만 막상 따라 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예능이었다면 효과음으로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음이 따라올 동작이었다. 삐걱삐걱 끼익끼익. 고장 난 1세대 로봇 같은 동작으로 선생님을 따라 했다. 내 모습을 볼 여유는 없었다. 거울 속에 있는 선생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어떻게 해서든 배우려고 노력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한 동작을 하면 그전에 했던 동작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에서 다음 동작을 불러오는 속도보다 노래 템포는 배로 빨랐기 때문에 이거 다음에는 이거, 저거 다음에는 저거라는 식에 암기는 불가능했다. 그냥 몸에 익기를 바라면서 동작을 따라 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아무 생각 없이 누르는 것처럼 다음 동작을 머리가 아니라 몸에 기억시켰다. 생각은 사치였다. 막막했던 수업 내용도 반복에 반복을 더하니 절반 분량까지 외울 수 있었다. 근데 어떻게 외웠는지는 알 수 없었다. 15초 정도의 분량이고 심지어 완벽하게 추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이렇게 완곡의 의의를 두고 추는 것도 숨차 죽겠는데 여기에 표정 연기며 노래까지 부르는 아이돌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누군가는 아직도 딴따라라고 하지만 보통의 열정과 노력으로는 해내지 못할 직업이었다. 원래도 존경의 눈으로 봤지만 직접 겪어보니 존경심이 배로 늘었다. 완성도 있는 무대를 위해서 수만 번의 연습을 해왔을 그들이 상상이 돼 나도 모르게 자극이 되었다. 열심히 살아야지.  



노래를 재생하느라 왔다 갔다 하는 선생님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선생님과 자리를 바꿔서 수업하자고 했다. 원래는 내가 문 쪽에 있었고 선생님이 안쪽에 있었다. 자리를 바꿔서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그러자 춤을 출 수가 없었다. 내 왼쪽에 있던 선생님이 오른쪽으로 갔을 뿐인데 신발 신은 강아지처럼 뚝딱거렸다. 멋쩍게 웃으며 원래 위치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헷갈리는 부분을 반복해서 배우고 이제는 노래에 맞춰볼 시간이었다. 들을 때는 마냥 신나는 노래였는데 여기에 맞춰 춤을 추려니 속도가 빠르게 느껴졌다. 초심자에게는 버거운 속도였다. 0.5배속으로 몇 번 하니 1배속으로도 얼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역시 반복만이 살길이었다. 원 속도에서 배운 걸 해나갈 수 있게 되자 디테일을 잡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저 30초짜리 안무를 틀리지 않고 출 수 있기를 바라야만 했다. 어느 정도 순서는 외운 것 같아 노래에 맞춰서 영상을 남기기로 했다. 동영상을 다시 볼 용기가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은 찍어두기로 했다. 틀리지 않고 췄을 때 음악이 끝나고 절로 박수가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상들을 다시 봤다. 처음에는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던 영상을 계속해서 보니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다. 이 어려운 춤을 베이스도 없이 한 번에 배우다니. 나 자신이 너무나도 대견했다. 동영상을 찍기 전에는 아무한테도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갑자기 생겨난 뿌듯함에 이 당차고 웃긴 영상을 남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동영상을 보여주면 평소에는 왜 이런 옷을 입지 않냐며 놀라다가 정말로 뚝딱거리는 모습에 또 이내 웃어버렸다. 영상 마지막 부분까지 다 보고 나면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 마디씩 했다. 아는 분은 자기도 흥미가 생겨서 배운다고 해놓고는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수업을 가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서 집에서 연습 중이라고 한다. 왜 방구석 스맨파를 찍고 있는 건지 안타까웠다. 부모님께도 동영상을 보여드렸는데 깔깔깔 웃으셨다. 어린이나 학생도 아닌데 춤을 배우러 갔다는 게 민망하기도 했지만 뭐 어떤가. 오디션에 나갈 것도 아니고. 농담으로 춤에는 재능이 없어서 아이돌 데뷔는 이번 생에는 무리고 그냥 곱게 회사나 다녀야지 했다가... 바로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니니깐 강습도 다닐 수 있다면서 회사나 똑바로 다니라는 그런 말. 엄마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닌가? 내가 은연중에 진심을 담아서 말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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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상상러로써 자주 하는 상상이 있었다. 춤을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춤신춤왕이고 평소에는 티를 내지 않다가 장기자랑에 못 이기는 척 나가서 무대를 휩쓸어버리는 상상.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한 것보다 훨씬 댄스 강습은 재미있었다. 눈 한 번 딱 감고 시도해봐서 다행이었다. 이제 ‘Sneakers’가 길거리에서 들리거나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되면 이전과는 다르게 반응한다. 머릿속으로 동작을 떠올리면서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상체를 살짝살짝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티 나게 씰룩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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