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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훤림 Mar 06. 2024

딸은 의전원, 엄마는 박사: 극복 모녀의 도전 스토리

1. 내가 된다고 했잖아



   나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열흘 간의 해외 연수 중이었고 열다섯 명 정도의 일행이 긴 테이블에 다 같이 둘러앉아 있었다. 연수단만 있었던 게 아니라 연수지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회사 소개를 했던 현지의 기업인들과 함께 있는 자리였다. 따라서 식사는 연수의 연장선에서 진행된 것으로서 연수 주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시간이었다. 


   주고받는 대화를 통역하시는 분을 통해 들으면서 막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를 받아 한입 물었을 때였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국에 사는 딸은 엄마가 캐나다 연수 중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연수 일정을 마친 시간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일인가 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식을 외국에 보낸 엄마들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에 전화가 오면 우리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엄마들은 늘 걱정을 달고 사는 법이다. 사고가 났나? 어디가 아픈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기다리던 좋은 소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나는 벨소리 때문에 대화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염려로 일단 전화를 끊고 일어났다. 사람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리를 옮기려고 움직였다. 하필 맨 안쪽에 앉아있어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성질이 급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딸이 다시 전화를 걸어 할 수 없이 또 끊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행을 벗어나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걸었다.  

   

“으허어엉 엉엉, 왜 전화를 안 받아?”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전화를 안 받으니까 그러지. 엉엉.”


“엄마 연수 중인 거 알잖아. 지금 잠깐 나왔어. 울지 말고…, 무슨 일인데?”


“흑흑, 나 됐어. 합, 격, 했다고.”


“응? 뭐라고?”


“의전원 합격했다고!”  

   

   내내 기다리고 바라던 소식이었다. 딸이 전화를 받자마자 거의 통곡하는 것에 가깝게 울어대어서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가슴이 아주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런데 큰일은 큰일이었지만, 좋은 큰일이었다. 잠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나서 딸에게 말했다. 


“야, 간 떨어질 뻔했잖아. 합격했는데 왜 울어?”


“흑흑. 내가 된다고 했잖아. 이제 사람들한테 다 말해. 나한테 안 된다고 말했던 사람들한테 다 말하라고. 내가 해냈다고.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던 거, 절대 못 한다고 했던 미국 의대에 내가 합격했다고 말해!”


“알았어. 잘했어. 축하해. 훌륭해. 대단해. 그런데 이제 그만 울고, 우리 나중에 또 통화하자.”


“그게 다야? 벌써 전화를 끊는다고?”


“나 연수 중이야. 너도 전화 걸어야 할 데 많잖아. 아빠랑, 앤드리아랑, 친구들한테 전화해야지.”


“맞다. 알았어. 이따가 밤에 숙소에 가서 또 통화해.”


“그래. 우리 딸 결국 해냈다. 만세다, 만세야!”      


   흥분한 딸에게 연수 중이라고 하면서 전화를 얼른 끊고 자리로 돌아갔지만, 나는 대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참지 못하고 우리 딸이 의전원에 합격했다고 자랑하고 말았다. 연수 분위기를 깨는 일이었지만, 나도 결국 딸처럼 눈꼬리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감격해서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일행들에게 축하를 받았고, 지도교수님한테는 그 자리에서 바로 축하금까지 받았다. 너무 가슴이 벅차서 온 세상에다 대고 우리 딸의 합격 소식을 떠들고 싶었다.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내가 된다고 했잖아’라고 하는 딸의 말에는 사실 오래 묵은 서러움이 담겨있었다. 통곡에 가깝도록 울면서 자기한테 못해낼 것이라고 했던 사람들에게 자기가 해냈다는 말을 전하라고 한 것은 뻐기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되지도 않을 일을 염두에 두지 말고 가능한 일을 하라면서 주제에 맞게 살라고 하던 부정적인 말들이 오랜 상처가 되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또는 상처받고 좌절할까 걱정이 되어서 해주는 말이라고 했다. 또 우리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면서 생각해주니까 조언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경제적인 여유라도 충분하다면 모르지만, 그런 형편도 아닌 까닭에 일찍 포기하는 게 낫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그 합리적이고 일견 타당한 얘기들은 다른 면에서 보면 참 잔인한 것이었다. 꿈 따위는 사치스러운 얘기이니 진즉 포기하고, 유별나게 튀지 말고 주어진 대로 세상의 톱니바퀴 아래에서 너를 잘 맞추라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데에는 우리 사회가 경직된 탓도 있다. 우리 사회는 사실상 역전도 반전도 쉽지 않다. 개천에서 용나는 것은 옛말이 되었고, 뒤늦게 꽃피우는 일 같은 것은 인정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코스를 밟아야 한다. 코스는 다 정해져 있다. 중학교 때부터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이 아니면 의대는 꿈꾸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충분한 선행학습이 필수다. 중학교 때의 탁월한 성적으로 특목고에 진학하는 것이 명문대 입시에 유리하다. 그 모든 노력을 다해 서울대에 진학했다면 모든 면에서 쳐준다. 하다 못해 연예인도 좋은 대학을 나오면 출발이 좋다. 노래하고 연기하는 데에 별 소용이 없어도 대학 간판이 어느 정도는 신분으로 느껴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2년에 발표한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 배분의 공정성 연구’에 따르면 의대생의 35%가 최상류층에 속한다고 전한다.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진학률이 높고, 특히 명문대 진학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결과다. 굳이 연구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자녀의 성적과 부모의 경제력은 연관성이 크다. 이 현상은 이미 고착화된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이며 다시 계급사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조건에 처해있다고 해서 꿈을 이루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남보다 더 많거나 높다고 해서 무조건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좋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분명 아주 힘들고 고단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해보겠다면야 ‘너는 못 하니까 포기해’라는 말보다 고난과 역경을 겪겠지만, ‘한번 해봐’라고 응원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딸은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 두었던 말을 감정적으로 완전히 고조된 그 순간 폭발적으로 쏟아낸 것이다.     


“나한테 안 된다고 말했던 사람들한테 다 말하라고. 내가 해냈다고.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던 거, 절대 못 한다고 했던 미국 의대에 내가 합격했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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